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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스터츠의 내면강화 - 흔들리면서도 나아갈 당신을 위한 30가지 마음 훈련
필 스터츠 지음, 박다솜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3월
평점 :
내게 <필 스터츠의 내면강화>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행동 철학서로 읽혔다. 정신과 의사로서 오랜 세월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 하는 내담자들을 상담하면서, 그는 그 모든 심리 치료의 기반이 되는 심리적 툴(tool)을 만들어 냈다.
스터츠의 행동 철학은, 융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융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우리를 억압하고 부정하려는 자아를 ‘그림자’로 명명하고, 우리는 그림자를 통합하여 좀더 온전하고 완전한 개체로 나아가기 위한 개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무의식을 억압과 부정의 대상이 아닌 수용과 통합의 대상으로서 강조하는데, 내가 보기에 스터츠는 이러한 융의 심리학적 개념을 적극 활용하되, 그의 개인화 과정의 실천적 방안으로서 행동, 즉 작은 헌신을 강조한 것으로 보였다.
스터츠는 융의 그림자 개념을 자신만의 행동학적 철학에 강하게 심어놓았다. 융의 그림자 개념은, 스터츠의 철학 안에서 고통, 갈등, 상실, 왜곡된 자기애, 물질에의 숭상, 불만과 질투, 인정욕구, 실패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고통과 갈등, 상실과 실패 속에서 고차원적인 자아를 위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통해서 작고 반복적인 헌신을 위한 에너지를 얻은 후, 마침내 실천과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융은 내면의 다양한 요소인 자아와 그림자,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으로 개인화가 이루어진다고 본 반면, 스터츠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내면적 통합이 행동으로 실천될 때만 지속성을 가지고 삶을 성장시킬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진정한 사랑 찾기, 의미 찾기를 통한 선의의 발견 같은 행위는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행동을 통해 외부 세계로 발산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개인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연대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한층 더 거시적인 차원의 고차원적인 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행동 철학이 유난히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건 그가 일반적인 통념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그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상실과 갈등의 가치를 탐구한 부분이었다. 상실과 고통은 우리에게 대체로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괴로움 때문에 기피의 대상인 실패가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듯, 우리는 우리에게 고통과 소모를 가져오는 어려운 경험인 상실과 갈등 속에서 한층 성장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상실과 갈등 그 자체에 매몰되어 저차원적인 자아에 함몰되는(좌절, 분노, 공격성표출)을 단계를 넘어서 우리가 힘겨운 체험 속에서도 고차원적인 세상에 머물겠다는 의지적 선언인 ‘적극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저자에게는 또다른 의미의 실천이 된다는 것이다. 상실의 경험을 통해서 그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을 떨치고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며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되고, 단지 의미 찾기를 내면화함에 그치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한 대상에게 적극적 사랑을 보냄으로써 그의 행동학은 실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적 선언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관계성의 터닝 포인트를 불러올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행동학의 기반인 작은 헌신은 일회성이 아니고 반복적인 행위이어야 하기에, 반복되는 선의 속에서 당연히 관계의 회복과 감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리란 예상에 나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매번 내게 공격적인 존재에게 적극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사람은 본래 굉장히 상호적인 존재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충분히 비난할 상황에서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상대에게 이득이 되는 제안을 하는 일을 시도했을 때, 트러블 상황에서 불화가 생기지 않고 매끄럽게 불편한 상황을 빠져나갔던 경험이 떠올랐다. 어쩌면 스터츠의 행동학이 말하는 적극적 사랑의 실천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싸우지 않고 갈등을 현명히 해결하고 나면, 상대의 해악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적극적 사랑의 실천>이란 결국 상대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를 실천하는 나 자신을 위한 처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도 나는 고차원적인 선의 속에 머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자기애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터츠의 내면 강화는, 앉아서 불평만 터트리며 스스로를 갉아먹던 왜곡된 자기애에서 나를 구원해준 책이다. 나는 지금 집 문제로 갈등 상황에 있으며,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채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이 상황이 못내 힘겨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에 존재하는 법을, 그리고 이 순간의 행복과 소중함을 좀 더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를 원망하는 걸 그치고 그 갈등 상황이, 최근 내가 겪은 일련의 상실이 내게 준 의미 찾기에 몰두하며 독서하는 동안 깊은 마음의 평안이 내게 찾아왔다. 상대가 누구이며, 사랑 받을 가치가 있든 말든 따지지 않고 적극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어쩌면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처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었다. 나처럼 마음의 힘을 키우고 싶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