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노화 - 이시형의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은 운명이지만, 생활은 운명을 다루는 방식이다


- 이시형, 『행복노화』를 읽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같은 90대의 몸을 지닌 두 사람을 생각했다.


한 사람은 저자인 이시형 박사다.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노년을 하나의 실천적 지혜로 바꾸어 독자 앞에 내놓는다. 그의 문장은 노년의 몸에서도 정신이 얼마나 또렷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나이 들었다는 사실이 곧 사유의 종말은 아니며, 노화가 곧 인간의 폐기처분선고는 아니라는 것을 그의 존재 자체가 증언한다.


다른 한 사람은 내 시아버님이다. 역시 90대이지만, 파킨슨병으로 근손실이 심해져 누워 계시고, 섬망 증세와 중증 치매를 겪고 계신다. 같은 세월을 살았으나 두 노년의 풍경은 너무 다르다. 한쪽에는 아직 언어와 판단과 사회적 역할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는 몸의 붕괴와 인지의 어둠이 있다. 이 대비 앞에서 나는 오래 멈추었다. 노화란 정말 무엇인가. 단지 오래 산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삶의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물론 이 질문을 함부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파킨슨병과 치매, 섬망과 근손실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복합적인 질환이다. 병든 노년을 “관리를 못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늙고 아픈 몸을 다시 한 번 모욕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유전, 질병, 환경, 경제력, 돌봄의 조건, 우연한 사고, 의료 접근성, 살아온 노동의 강도까지 모두 몸에 관여한다. 그러므로 시아버님의 노년을 실패한 노년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한 인간이 통과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생의 말년일 뿐이다.


그럼에도 『행복노화』가 내게 깊이 와닿은 이유는, 노화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그 속도와 방향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화를 병으로만 보지 않는다. 노화는 누구나 통과하는 생명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똑같이 펼쳐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일찍 지치고, 어떤 사람은 오래도록 배우고 쓰고 일한다. 어떤 몸은 질병 앞에서 빠르게 무너지고, 어떤 몸은 예비력을 가지고 버틴다. 그 차이는 단지 유전자의 차이만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의 차이이기도 하다.


특히 후성유전의 관점은 내게 매우 유용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과거에는 유전자가 인간의 노화와 질병을 거의 결정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책은 유전적 요인 못지않게 식습관,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인간관계, 환경이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타고난 유전자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어떤 유전자가 켜지고 어떤 위험이 줄어드는지는 오늘의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이 말은 노화가 숙명이라는 체념에서 우리를 조금 구해낸다. 몸은 이미 주어진 운명이지만, 생활은 그 운명을 다루는 방식이다.


나는 여기서 내 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의 과체중은 단순히 의지가 부족해서 생긴 결과가 아니라 대사와 환경과 습관이 뒤엉킨 신호에 가깝다. 나는 오랫동안 몸을 도덕 점수표처럼 읽어왔다. 날씬한 몸은 성실하고, 살찐 몸은 게으르며, 병든 몸은 관리를 못 한 몸이라고 쉽게 판단했다. 하지만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과거의 노년이 굶주림과 추위, 전쟁과 피난, 산업화와 과로가 새겨진 몸이라면, 오늘의 중년과 예비 노년은 과잉과 피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초가공식품과 운동 부족이 새겨진 몸이다. 몸은 도덕 점수표가 아니다. 몸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기록이다.


건강한 노화란 몸을 미워하며 벌주는 일이 아니라, 몸을 다시 읽고 조율하는 일이어야 한다. 당과 정제 탄수화물, 초가공식품을 줄이는 일은 단지 살을 빼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내 몸의 대사를 다시 안정시키고, 노화를 촉진하는 생활의 흐름을 조금씩 되돌리는 일이다. 운동 역시 젊음을 과시하기 위한 고통이 아니라, 노년의 예비력을 만드는 일이다. 수면은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의 토대이고, 스트레스 관리는 사치가 아니라 뇌와 몸을 지키는 방어선이다.


책에서 말하는 예비력의 개념도 인상 깊었다. 인간은 평소 가진 힘을 모두 쓰며 사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 대비한 여분의 힘을 남겨둔다. 젊을 때는 그 여분이 넉넉해 무리해도 금방 회복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예비력은 줄어든다. 그래서 노화 관리는 젊어 보이려는 발버둥이 아니라, 아플 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하는 일이다. 근육, 수면, 식사, 관계, 경제적 안정, 사명감은 모두 노년을 장식하는 요소가 아니라 생의 완충지대다.


이 책은 행복노화의 조건으로 건강, 장수, 경제적 여유, 좋은 인간관계, 사회성 혹은 사명감을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 삶의 방식도 생각했다. 내게 좋은 관계란 반드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이는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좋은 인간관계만큼이나 좋은 고양이 관계를 가질 사람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애호가 아니다. 밥을 챙기고, 아픈 몸을 살피고, 이름을 불러주고, 작은 변화에 마음을 기울이는 일은 나를 고립시키기보다 오히려 삶 쪽으로 붙들어준다. 생명을 돌보는 일은 인간을 덜 늙게 한다. 적어도 마음이 굳어버리는 속도를 늦춘다.


나는 노화가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몸은 변한다. 체력은 줄고, 회복은 느려지고, 예전처럼 무리할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러나 내가 아직 도전할 수 있고, 나를 관리할 수 있으며,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할 수 있다고 믿는 한, 나는 완전히 늙은 것이 아니다. 젊음은 나이의 소유가 아니라 재시도의 능력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공부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면, 그 몸에 맞는 전략을 다시 짜면 된다. 늙음은 가능성의 종료가 아니라 전략의 변경이다.


시아버님의 노년과 이시형 박사의 노년은 내게 삶의 두 끝을 보여준다. 한쪽은 우리가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 마주할 수 있는 취약성이고, 다른 한쪽은 노년에도 가능한 품격과 지성의 증거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려워만 하는 것도, 모든 것을 의지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늘의 생활을 조금씩 바꾸는 일이다. 당을 줄이고, 초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잠을 회복하고, 몸을 움직이고,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공부하고, 돌보는 관계를 지키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예의다.


『행복노화』는 늙지 않는 법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늙어간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되, 그 과정을 방치하지 말라고 말하는 책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선택할 수 없고, 이미 살아온 시대를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오늘의 식사, 오늘의 걸음, 오늘의 잠, 오늘의 마음가짐은 선택할 수 있다. 몸은 운명이지만, 생활은 운명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늙음을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노화는 병이 아니다. 다만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생의 가장 오래된 요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