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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부끄러웠지만 나를 살린 노래
— 복길, 《펑펑》을 읽고
《펑펑》은 케이팝 노래와 그 노래를 둘러싼 사유의 결로 이루어진 에세이다. 저자 복길은 케이팝을 단순히 화려한 무대나 팬덤의 열광으로만 보지 않는다. 어떤 노래가 한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붙잡는지, 좋아한다는 감정 안에 얼마나 많은 수치심과 애정, 죄책감과 해방감이 함께 들어 있는지 들여다본다. 그래서 이 책은 케이팝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케이팝을 통해 자기 삶을 견디고 해석해온 사람들에 관한 책처럼 보인다.
출판사에서 좋아하는 케이팝 곡과 그 사유를 함께 적어달라는 요청을 특별미션의 형식으로 제공한 것을 봤을 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BTS 슈가·진·정국의 〈So Far Away〉를 떠올렸다. 좋아하는 노래는 많다. 오래 들은 노래도 많고, 어느 시절의 나를 데려오는 노래도 많다. 그러나 “나를 살린 케이팝”에 가까운 곡을 고르라면 내게는 이 노래가 먼저 온다.
흥미롭게도 나는 BTS를 처음부터 ‘보는 아이돌’로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BTS라는 그룹을 거의 몰랐다. 퍼포먼스로 유명한 아이돌이라는 것도, 거대한 팬덤을 가진 그룹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처음 내게 도착한 것은 화면이 아니라 소리였다. 나직하게 체념한 듯, 동시에 스스로를 타박하고 몰아세우는 것 같은 슈가의 날카로운 랩이 먼저 귀에 걸렸다. 그리고 그 위로 소년미가 남아 있는 진과 정국의 미성이 반복해서 밀려왔다. 제목처럼 멀리서, 그러나 이상하게 너무 가까운 곳에서 부르는 목소리 같았다. 그다음에야 가사가 심장에 박혔다.
그 시절의 나는 많이 고립되어 있었다. 우울이 깊었고, 내가 내 편 하나 없이 가계부채를 갚는 ATM기처럼 살고 있다는 감각에 짓눌렸다. 나는 사람이라기보다 기능처럼 느껴졌다. 돈을 벌고, 갚고, 버티고, 다시 돈을 벌고, 또 갚는 존재. 집도 싫었고, 내 삶도 싫었다.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실제로 뛰쳐나가지는 못했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는 사람은 몸 안에 감옥을 만든다. 그때 〈So Far Away〉는 나를 억지로 위로하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라고 쉽게 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꿈이 없고,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먼저 알아보았다. 사람은 때로 희망보다 먼저 이해를 원한다. “네가 힘든 게 이상한 게 아니야”라는 감각을 얻고 나서야 겨우 다음 숨을 쉰다. 내게 이 노래는 그런 음악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케이팝은 ‘듣는 음악’이어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이 노래를 떠올렸다. 내게 〈So Far Away〉는 분명 듣는 음악이었다. 나는 무대보다 먼저 목소리를 들었고, 얼굴보다 먼저 감정을 들었고, 팬덤보다 먼저 한 사람의 절박한 독백을 들었다. 그 뒤에야 이 노래를 부른 이들이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서가 중요했다. 내게 BTS는 먼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숨 쉬던 사람에게 도착한 목소리였다.
그즈음 나는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다. 집이 싫고 삶이 싫어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실제로 내가 택한 것은 완전한 도피가 아니라 사랑 쪽으로 조금씩 몸을 돌리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받고, 나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아주 조금씩 되찾았다. 그리고 그 회복의 한쪽에 BTS가 있었다. 노래를 듣고, 무대를 찾아보고, 웃는 얼굴들을 보고, 팬들이 나누는 말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다시 사람 쪽으로 돌아왔다.
물론 케이팝이 내 인생을 단번에 구원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말은 너무 쉽고, 내 고통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음악은 사람을 한 번에 구하지는 못해도 하루를 넘기게 한다. 오늘 밤을 넘기게 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눈뜨게 하고, 아주 희미하게나마 “나에게도 아직 꿈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내게 〈So Far Away〉는 나를 끌어올린 손이라기보다, 내 옆에 함께 주저앉아준 노래였다.
하지만 케이팝을 사랑한다는 일은 내게 늘 깨끗하고 편안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나는 BTS가 좋았고, 그들의 노래에 실제로 위로받았지만,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돌 그룹 이름이 ‘방탄소년단’이라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이름이 주는 낯섦과 과장됨,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따라붙는 유치함의 시선, 나이 든 여성이 보이그룹을 좋아한다는 데 따라오는 민망함 같은 것이 있었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어쩐지 설명이 필요한 마음. 내게 BTS와 케이팝은 한동안 길티 플레저였다.
《펑펑》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 부끄러움과 사랑을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케이팝을 좋아하는 마음 안에 있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그 사랑이 때때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해명과 죄책감도 함께 본다. 내가 좋아한 대상이 흔들릴 때, 그 대상을 사랑했던 나 자신까지 의심하게 되는 마음. 이 사랑은 맹목이었을까. 내가 좋아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가벼운 사람이 되는 걸까. 좋아하는 마음은 왜 자꾸 증명되어야 할까. 이 책은 그런 질문들을 피하지 않는다.
나는 케이팝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케이팝을 둘러싼 어떤 문화 앞에서는 자주 멈칫했다. 특히 살아 있는 아이돌을 팬픽 속 동성애 서사의 인물로 소비하는 문화에는 오래도록 불편한 감각이 있었다. 물론 팬픽이반 문화가 단순히 미성숙한 놀이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복길이 짚듯, 그것은 10대 여성들이 기존의 이성애 규범을 비틀고, 남성 아이돌의 관계를 빌려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탐색한 독특한 하위문화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금지된 상상을 통해 자기 안의 욕망을 처음 만나는 언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그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팬픽 속 인물은 허구처럼 소비되지만, 그 이름과 얼굴과 몸은 현실의 누군가에게서 온다. 더구나 소속사와 산업은 때로 그 모호한 욕망을 모르지 않는 듯했다. 멤버 간의 친밀함, 질투처럼 보이는 장면, 의미심장한 스킨십과 떡밥들은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팬덤은 그것을 다시 콘텐츠와 소비로 되돌려주었다. 그 영리한 순환을 볼 때마다 나는 케이팝의 사랑이 얼마나 다정한 동시에 얼마나 계산적일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케이팝은 단순히 순수한 사랑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살린 음악이었고, 동시에 내가 부끄러워하고 변명하고 거리 두려 했던 대상이었다. 좋아하지만 불편하고, 불편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하는 것. 《펑펑》은 바로 그 복잡한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게 만든다. 케이팝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완벽한 대상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업성과 진심, 위로와 소비,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세계 안에서도 끝내 내 마음을 움직인 무언가를 인정하는 일인지 모른다.
내가 케이팝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잃어버린 감정을 다시 배웠다. 좋아하는 법, 기다리는 법, 응원하는 법, 울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법, 누군가의 목소리에 기대어 하루를 건너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완전히 죽은 사람이 아니다. 사랑이 남아 있다면, 아주 작게라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게 〈So Far Away〉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바닥에 있던 시절,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마음의 한쪽을 건드린 음악이었다. 나는 그 노래를 통해 BTS를 좋아하게 되었고, BTS를 좋아하며 조금씩 나를 덜 미워하게 되었다. 《펑펑》을 읽으며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도 아마 그것이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어떤 노래를 사랑했는가. 왜 그 사랑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놓지 못했는가. 그리고 왜 그 사랑 때문에, 아주 가끔은, 살아갈 수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