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에게 (청소년판) - 숨이 막힐 때 주문처럼 특서 청소년문학 47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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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결을 읽게 되는 소설

— 김선영, 『내일은 내일에게』를 읽고


나는 저자의 북토크에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저자의 저작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상하게 저자라는 사람 자체가 좋았다. 말의 온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묘한 신뢰가 생겼다. 언젠가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일은 내일에게』를 읽으며 그때의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소설은 간만에 만난, 정말 글다운 청소년소설이었다.


청소년소설이라고 해서 아이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다루지 않는다. 상처를 예쁘게 포장하지도 않고, 어른을 악역이나 구원자로 나눠 평면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이 소설은 다만 사람의 결을 오래 들여다본다. 연두의 일상은 작품의 흐름을 따라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결말까지도 그는 다시 학교에 가고, 자고 일어나고, 밥을 먹고, 다시 하루를 산다. 그러나 그 “다시”가 가볍지 않다. 삶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마음을 안고도 다음 날로 넘어가며 이어지는 것임을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준다.


『내일은 내일에게』속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크지 않다.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세상을 뒤집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굶지 않고, 버려질까 두려워하지 않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자기 나이에 맞게 철없이 살고 싶어 할 뿐이다. “나도 어리광 부리며 철없이 살고 싶다. 내 나이에 걸맞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바란 것은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아이로 살아도 되는 하루였다.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인상깊게 남은 감각 중 하나는 “거세된 욕구의 합리화”였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없어서 담담한 것이 아니다. 좋은 집, 따뜻한 말, 안전한 자리, 울어도 되는 권리. 그런 것을 원하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순간 “나는 괜찮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다. 욕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욕구를 가져도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배운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아이들의 담담함은 성숙함이라기보다, 너무 이르게 익힌 생존법처럼 읽혔다.


그 생존법은 때로 폭발한다. 연두가 터지는 장면이 그랬다. 연두의 분노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너무 오랜 시간 억눌려 있던 아이가 처음으로 학대와 폭력의 부당함을 말로, 몸으로, 물건으로 밀어 올리는 장면이었다. 상처 입은 사람은 곱게 아픔을 호소하지 못한다. 어떤 날은 울고, 어떤 날은 던지고, 어떤 날은 가장 아픈 말을 골라 상대에게 꽂아 넣는다. 이 소설이 좋은 것은 연두를 착한 피해자로만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두는 상처받았지만, 동시에 상처를 되돌려주는 아이이기도 하다. 그 모순까지 포함해서 연두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연두도, 그 주변의 아이들도 상대적으로 방어적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친절을 베푸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냉정함이라기보다 오래된 자기보호에 가깝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내주었다가 다칠까 봐 먼저 얼어붙는 것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 아무 마음도 없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많은데 그 마음이 들키면 다시 버려질까 봐 먼저 문을 닫는 사람의 말처럼 읽혔다. 방어는 마음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마음이 너무 많이 다쳤다는 흔적일 때가 있다.


이 작품이 깊은 이유는 아이들만 복합적으로 그리는 데 있지 않다. 어른들 역시 평면적이지 않다. 이 소설 속 어른들은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다. 무심해서 상처를 남기는 어른이 있고, 폭력적이고 거칠지만 끝내 아이를 버리지 않는 어른이 있으며, 아이의 삶을 대신 구원하지는 못해도 조심스럽게 쌀을 건네고 미래를 기다려주는 어른이 있다.


연두의 엄마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거칠고, 폭력적이며,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결코 이상적인 보호자가 아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는 전 남편의 딸을 끝내 버리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좋은 엄마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이 상처를 주었지만, 나쁜 인간이라고만 부르기에는 인간적이다. 현실의 어떤 관계는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거칠고, 폭력이라고만 부르기엔 너무 오래 버텨낸 시간이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모호한 인간의 결을 놓치지 않는다.


반대로 쌀을 건네는 카페 이상의 주인 아저씨 같은 인물은 이 소설의 따뜻함을 만든다. 그는 구원자처럼 과장되지 않는다.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도 못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다만 알아차리고, 선을 넘지 않으며, 필요한 만큼만 손을 내민다. 아이의 가난을 폭로하지 않고, 아이의 자존심을 짓밟지 않으며, 도움을 굴욕으로 만들지 않는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때로 거창한 선의가 아니라,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는 조심스러운 친절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인물은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죽음도 여러 번 등장한다. 객사한 노숙자의 죽음, 길고양이 네로의 죽음, 가족의 죽음. 특히 네로가 차에 치이는 장면은 마음이 아팠다. 아이에게 보여서는 안 될 세계의 잔혹함이 또 한 번 아이 앞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러나 소설은 그 죽음을 완전히 방치하지 않는다. 이상 아저씨는 네로의 숨이 잦아들 때까지 몸을 쓸어준다. 세계는 잔인하지만, 그 잔인함 앞에서 끝까지 손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일은 내일에게』의 따뜻함은 바로 그런 데 있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불편한 존재를 어떻게 치워버리는지도 보여준다. 노숙인의 텐트, 길고양이, 가난한 아이, 불안정한 가족. 우리는 자주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찾기보다 눈앞에서 불편한 존재를 제거하려 한다. 불편함을 위험이라고 부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처럼 보이는 사람을 치운다. 그 앞에서 아이가 묻는 “아무 피해를 안 주는데도요?”라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정말 피해를 주었는가. 다만 우리가 보기 싫었을 뿐인가. 이 소설은 청소년의 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정함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이 책은 냉소로 끝나지 않는다. 유겸과 연두의 편지가 그랬다. 유겸은 왕따의 기억을, 연두는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품고 있다. 둘의 상처는 같지 않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고통을 완전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본다. 같은 상처라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처인데도 “그래도 살고 싶었다”는 마음이 같아서 통하는 것이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상처가 있다. 그리고 어떤 상처들은 서로 닮지 않았어도, 생존의 언어 안에서 서로를 알아본다.


이 소설이 끝내 붙잡고 있는 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다. 연두의 삶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가족의 상처도, 가난도, 불안도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어른은 연두의 미래를 기다려준다. “그 아이의 미래를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라는 문장은 이 작품이 말하는 좋은 어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아이를 대신 구원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돌아올 자리를 지키는 것. 그 기다림이 때로는 한 사람을 내일까지 데려간다.『내일은 내일에게』라는 제목은 단순히 삶의 무게를 잊자는 말도, 내일이면 모든 고민이 해결될 거라는 말이 아니었다. 오늘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을 내일의 나에게 조금 나누어 맡기자는 뜻이었다. 오늘 다 해결하지 못해도, 오늘 다 괜찮아지지 않아도, 그래도 잠들고 일어나 다시 학교에 가고 밥을 먹는 일,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견디면서. 그리고 그 견딤의 곁에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친절과 기다림이 있을 때, 사람은 아주 조금 더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내일은 내일에게』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쉽게 말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괜찮지 않은 오늘을 안고도 내일로 건너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청소년소설이지만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각자가 움켜쥔 삶의 무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생활이 자아를 삼키는 공포, 그리고 그럼에도 내일로 넘어가려는 마음을 그린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사람의 결을 읽게 한다. 사람을 착하다, 나쁘다, 불쌍하다, 못됐다로 쉽게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 굳어졌는지, 왜 그렇게 폭발했는지, 왜 그럼에도 떠나지 않았는지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우리는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사람의 결을 읽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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