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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관계는 구원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하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너의 나쁜 무리>를 읽고 나면 이 문장은 더 이상 안전하게 들리지 않는다. 관계는 우리를 살리는 동시에,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내게 대체로 큰 두려움이었다. 십대의 원만하지 못했던 교우관계,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만 주어졌던 부모님의 지지, 첫 직장에서의 직속 상사 주도의 사내 괴롭힘까지. 내게 인간관계는 늘 잠재적 위험을 내포한 대가 관계에 가까웠다. 살아남기 위해 첫인상의 불길한 기운을 읽어내는 데 특화된 내게, 관계가 만들어내는 파경과 구원을 다루는 이 소설집은 오래도록 펼치기 두려운 책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조건 없는 사랑에 가까운 남편과 고양이들의 맹목에 가까운 애정 속에서 처음으로 안전한 울타리를 얻어 신뢰를 조금씩 회복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소설집을 영영 펼쳐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예소연 작가님의 소설은 큰 사건으로 독자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장면, 말의 결, 시선의 방향 같은 것들을 통해 관계의 균열과 긴장을 드러낸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순간이 어떻게 의존으로 기울고, 그 의존이 어떤 파경으로 이어지는지를, 저자는 그 관계의 저변에 깔리는 미세한 호흡까지 예민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이 소설집을 읽는 일은 어떤 드라마를 따라가는 경험이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마주하는 과정에 가깝게 느껴졌다.
내가 이 소설집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사랑하게 된 작품인 소란한 속삭임을 읽고 있노라면, 저자가 관계의 최소 단위를 다루는 방식이 퍽 독특하면서도 굉장히 보편적인 깨달음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것을 부탁하는 장면, 속삭이는 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백 같은 것들. 그 사소한 순간들이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붙들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가장 가까운 관계가 가장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이 작은 순간들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자가 다루는 고독 역시 단순한 외로움과는 다르다. 인물들은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기를 원하면서도 그 연결이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깊은 고독 속에 놓인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관계는 언제나 양가적이다. 구원이면서 동시에 위험이고, 위로이면서 동시에 부담이다. 그 긴장을 저자는 과장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
표제작 〈너와 나쁜 무리〉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여사였다. 어린 손녀 유선을 키운 조모인 그녀는 자기파괴적인 자유연애자로, 아이에게 가감 없이 본인의 사생활을 오픈한다. 그 과정이 끼친 파급력은 어린 유선에게 자못 파괴적이다. 여사는 분명 좋은 어른도, 보호자도 아니다. 예전의 나였다면 여사의 양육자로서의 자질을 거론하며 유선의 독립만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여사는 비록 유선을 반듯하게 키워내지 못했고 끝내 어린 손녀를 폭행의 공범으로 만들었지만, 그녀마저 없었다면 유선이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본질을 보고도 운명공동체가 되기를 택할 만큼 마음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면 부모에게 버려진 유선에게 여사는 그녀를 망치러 온 구원자였을지도 모른다. 관계는 언제나 순수하게 좋거나 나쁘지 않다. 상처와 구원이 같은 자리에서 온다는 것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읽었던 성해나 작가님의 <혼모노>가 날것의 감정으로 생의 바닥을 파고드는 작품이었다면, <너의 나쁜 무리>는 그보다 조금 더 절제된 거리에서 관계를 응시한다. 덜 격렬할 수는 있지만, 대신 더 오래 남는다. 문장은 차분하고, 시선은 정확하며, 감정은 과잉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살아가지만, 그 관계가 언제든 균열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관계를 향하게 되는 마음, 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관계의 모순적인 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는 그 불안정함을 알면서도, 아주 작은 방식으로 서로를 붙들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