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 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헨리 딤블비.제미마 루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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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를 읽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여러 번 무너졌다. 환경 문제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이 책은 나를 설득하거나 가르치려 않았다. 대신 내가 서 있던 바닥 자체를 흔들었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온 풍요라는 개념이 무엇을 갈아 넣어 만들어진 결과였는지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우리들은 늘 성과만 배워왔다. 질소비료는 인류를 먹여 살렸고,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렸으며, 기근을 해결한 기술로 흔히 설명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아산화질소의 온실효과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이 선택적 무지는 개인의 태만이라기보다 시스템의 구조에 가깝다. 효과는 명시되고, 대가는 지워진다. 그렇게 인간은 풍요를 축적하면서도 파괴의 비용을 감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 책이 보여주는 환경 파괴는 누군가의 악의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모두가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결정들의 축적이다. 효율을 따지고, 생산성을 높이고,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놓여 있는 이 시스템은 더 무섭다. 책임은 분산되고, 결과는 누적되며, 시스템은 감정 없이 작동한다. 그 안에서 개인은 점점 작아지고,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너무 쉽게 반복된다.

 

이탄 습지에 대한 서술은 특히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비옥한 토지라 여겨 개간되었을 자리들이 사실은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저장고였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몰랐다. 이탄습지는 고유명사가 아닌 분류명이지만, 그 개념이 주는 무게는 특정 장소의 이름처럼 또렷했다. 이탄은 한 번 산소에 노출되면 되돌릴 수 없다. 수천 년의 시간이 수십 년 만에 공기로 흩어진다. 우리는 땅을 쓸모로만 평가하면서,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을 갈아버렸다.

 

우리 나라의 새만금은 이탄습지는 아니지만, 파괴의 방식과 결과는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갯벌 역시 블루카본을 저장하는 탄소 저장고이고, 방조제와 배수로를 통해 산소가 유입되자 그 역할을 잃었다. 건드리지 않았을 때는 가치가 보이지 않던 공간들이, 사라진 뒤에야 무엇이었는지를 말해 준다. 우리는 그간 완성된 생태를 늘 미개발로 오해해왔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무서워졌다. 인간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너무 영리해서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지워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보지 않기로 선택해왔는지, 무엇을 배우지 않기로 합의해왔는지를 깨닫는 순간, 누구라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절망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시장에 맡길 것인가, 규제할 것인가, 개인의 윤리에 기대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은 모두 불완전한 해답을 품고 있다. 어설픈 개혁은 위험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복잡함을 견디는 일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태도임을 이 책은 말없이 보여준다.

 

개인은 이 무서운 파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행동 지침을 주지 않는다. 대신 감각을 바꾼다. 이전처럼 먹고, 소비하고,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 풍요를 누릴 때마다 그 비용을 떠올리게 하고, 싸고 편한 선택 앞에서 한 번 더 멈칫하게 만든다. 이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더 이상 덜 보며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자각에 가깝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자주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무력감에 화가 나고, 슬퍼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감각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환경 문제는 숫자와 보고서로만 존재할 때 쉽게 잊힌다. 그러나 누군가의 몸과 선택, 일상 속 감각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이전보다 느리게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완벽하게 살겠다는 다짐도,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결심도 아니다. 다만 풍요의 이면을 알고 살아가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지구를 갈아서 먹고 살아왔다. 이제 적어도, 그 사실을 알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 인식 변화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서 함께 읽고 함께 걱정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무서워하면서 어제보다 나은 선택을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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