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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우리는 왜 자꾸 잘못 생각하는가
<직관과 객관>은 인간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판단 방식, 특히 ‘직관’이 얼마나 체계적인 오류에 취약한지를 분석하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확률·통계·논리적 추론에서 반복적으로 동일한 실수를 저지른다. 저자는 이 실수가 개인의 지능이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인간 인지 구조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책의 전반부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개념은 기저율 오류(base rate fallacy)다. 사람들은 특정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판단할 때, 해당 사건이 전체 집단에서 얼마나 빈번한지를 나타내는 기저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는 정보는 즉각적인 정서 반응을 유발하지만, 그 결과가 어떤 분포 속에서 나왔는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판단은 왜곡된다. 이 책은 이러한 오류가 의료 판단, 범죄 추론, 사회적 낙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반복된다는 점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와 연결되는 개념이 베이즈 정리다. 베이즈 정리는 새로운 정보가 주어졌을 때 기존의 믿음을 어떻게 갱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수학적 원리지만, 책에서는 이를 사고 태도의 문제로 확장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기존 신념을 수정하기보다, 그 신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한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망치형 사고’의 특징이다. 반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판단을 조정하는 태도는 ‘스펀지형 사고’로 설명된다. 이 대비는 사고 방식의 차이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정보 처리 구조의 차이임을 분명히 한다.
중반부 이후 책의 논의는 단일한 판단 오류를 넘어 복잡계적 사고로 확장된다. 저자는 현실 세계의 많은 문제들이 단순한 원인-결과 관계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작은 변수의 차이가 장기적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선택의 비용과 효과는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직관은 단기적 이득과 눈에 보이는 결과에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문제의 일부만 보고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 지점에서 트레이드오프와 파레토 최적 개념이 등장한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과 이익이 동시에 존재하며, 모든 이해관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해답은 거의 없다. 파레토 최적은 누군가의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의 상태를 개선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는 현실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라기보다 판단의 기준점에 가깝다. 저자는 이와 같은 개념을 통해 완벽한 선택에 대한 기대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후반부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본 또 하나의 주제는 에너지와 자원의 배분에 대한 논고였다. 저자는 균형을 모든 영역에 동일한 노력을 분배하는 상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이는 파레토 법칙과도 연결되며, 인간이 제한된 인지 자원과 시간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정보 과잉 시대의 판단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현대적인 시사점이 아주 큰 책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도한 정보 속에서 판단 오류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자주 그릇된 확신에 빠지곤 한다. 이 책은 문제의 원인을 정보 부족이 아니라 사고 방식에 두며, 기저율을 확인하는 습관, 반대 논리를 검토하는 태도, 확률을 단정이 아닌 경고 신호로 해석하는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직관을 배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직관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는 태도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다. <직관과 객관>은 더 똑똑해지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복잡계 속에서 우리가 자칫 너무 성급한 확신에 빠지는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책에 가깝다. 판단을 유예하고, 정보를 맥락 속에 배치하며, 자신의 신념을 수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합리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 조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