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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평점 :
김숨 작가님의 <간단후쿠>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탈출도 허락하지 않는 소설이다. 읽는 동안 독자는 끊임없이 숨이 막히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작품이 왜 희망을 배제한 채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여성의 몸에 새겨진 폭력 역시 종료되지 않는다. 주인공 요코는 끝내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임신한 몸으로 오늘도 군인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준비한다. 이 엔딩은 잔혹하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도 정확하다. 이 작품의 핵심은 ‘전쟁 중 벌어진 비극’이 아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봉합된 역사, 그리고 그 봉합 위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겪어야 했던 이중의 폭력이다. 요코는 살아남았지만 구원받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남았기 때문에 더 오래, 더 깊이 고통 속에 놓인다. 그녀의 생존은 기적이 아니라 형벌에 가깝다.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임신과 출산의 문제는 단순한 모성 서사가 아니다. 요코가 아이가 죽기를 바라면서도 아이의 기저귀를 마련할 각반을 모으는 장면은 독자를 윤리적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이 욕망은 생명의 부정이 아니라, 이 세계에 아이를 들여보내지 않으려는 마지막 방어다. 아이를 낳는 순간, 그 아이 역시 전쟁의 연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이 아이는 보호받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몸처럼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그렇기에 엔딩에서 유코의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이 미완의 임신은 끝나지 않은 전쟁의 은유다. 전쟁은 총성이 멎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은 순간, 사죄하지 않은 순간,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전쟁은 다른 형태로 지속된다. 요코가 여전히 군인을 데리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장면은, 전쟁이 그녀의 몸을 통해 여전히 현재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역사적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조국으로 돌아온 생존자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온전히 공론화하지 않은 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했고, ‘독립축하금’이라는 이름으로 문제를 덮었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국가의 외교 논리 앞에서 지워졌다. 살아 있는 증언자들은 침묵을 강요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사라졌다. 몇 해 전,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의 수가 한 자릿수로 줄었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우리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간단후쿠>의 엔딩은 바로 이 현실을 상징한다. 요코의 삶이 멈춰 있듯, 이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은 채 정지되어 있다. 국가로부터도, 가해국으로부터도 제대로 된 사죄를 받지 못한 이상, 이 서사는 과거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애써 위로하지 않는다. 눈물을 닦아주지도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인물이 끝내 구원 서사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코는 투사가 되지도, 증언자가 되지도, 새로운 삶을 찾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오늘을 살아갈 따름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어제와 다르지 않다. 이 반복은 지옥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지옥을 벗어나게 하는 대신, 독자를 그 안에 남겨 둔다. 이는 잔인함이 아니라 윤리적 선택이다. 독자가 쉽게 감동하고, 슬퍼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 이 역사는 다시 한번 소비재로 쓰이고 잊히기 때문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답장은 마세요.”라는 문장은, 단순한 문장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이것은 독자에게 보내는 경고다. 섣부른 위로, 쉽게 하는 이해, 감정의 정리조차 이 서사 앞에서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알고 있다. 이 작품은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을 요구한다. 끝내 태어나지 않는 아이처럼, 끝내 마무리되지 않는 질문을 독자의 마음속에 남겨 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프고, 죄송하고, 분노를 일으킨다. 읽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바로 그 감정이 이 작품의 윤리다.
<간단후쿠>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않지만, 책임을 돌려준다.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아직 이 문제를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요코는 오늘도 준비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현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의무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