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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역사 1955 2025 - 시민과 더불어 써 내려간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박혁 지음 / 들녘 / 2025년 9월
평점 :
민주당의 역사 ― 분열의 길 위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온 이름
한국 현대사를 읽다 보면 언제나 민주당의 이름이 적혀 있다. 1955년, 이승만의 독재 권력 아래에서 시작된 첫 출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의 역사는 곧 한국 민주주의의 맥박과 함께 뛰어왔다. 들녘 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된 『민주당의 역사』는 그 지난한 여정을 탄생과 분열, 통합, 수난, 저항이란 주제로 묶어 민주당의 정체성과 한국 정치사의 교차점을 탐색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떤 거대한 강의 물줄기를 더듬어가다 여러 지류에 걸려 잠시 방향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읽는 동안은 차라리 연대기순이 서술이 더 가독성이 좋았을 텐데 왜 이런 구성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나 완독을 한 작금에 이르러서는 바로 이 흐름이 지난 70년간 민주당이 걸어온 실제 역사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굽이치며 흐르는 가운데 이리저리 튀고 으깨어지는 물처럼 자주 깨지고 부서지는 분열의 순간을 견뎌야 했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극적인 통합의 순간보다 더 많은 분열의 시절을 견뎌온 그들이기에, 민주당은 저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인간다운 정당이 된 건 아닐까.
1950년대 중반, 자유당 독재에 맞서 결성된 민주당은 ‘정치적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권력의 중심을 향하기보다는, 권력의 바깥에서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세우고자 했다. 저자가 그려낸 민주당의 탄생과 성장시기는 내게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화적 맹아기로 보였다.
민주당의 창당은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장기집권에 맞선 첫 합법적 저항이었다. 1956년 신익희 후보의 선거 유세 중 서거, 장면 정부의 짧은 집권과 5·16 군사쿠데타의 비극적 종말까지, 민주당은 늘 실패의 정당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지난 70년 세월을 다 지켜본 나는 바로 그 실패의 축적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 부 활을 불러온 민주당의 저력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민주당은 ‘권력을 잡지 못한 정당’이었지만, 권력을 비판할 언어를 지켜낸 정당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안타깝게 만든 대목은 민주당의 끊임없는 분열이었다. 그러나 그 분열은 단순한 개인의 권력욕으로만 설명하기에는 퍽 복잡하다. 분명 그런 점도 없지 않았겠지만, 민주당의 끊임없는 분열의 이면에는 민주주의를 향한 서로 다른 믿음의 충돌과 다양한 생각의 대립이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타협을 통해 현실을 바꾸려 했고, 누군가는 투쟁을 통해 정의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그 긴장과 반목의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바로 패배였다. 1960년대의 구파와 신파, 1980년대의 민주당-평민당 분열, 그리고 2000년대 이후까지 이어진 계파 갈등은 민주당의 숙명처럼 되풀이되었다.
분열이 정권 획득 실패로 끝난 건 사실이나, 이 책을 완독한 내게 이 분열이 단순한 민주당의 한계인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민주당의 분열은,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다양성을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 군사독재 아래서조차 민주당계 정당들은 끊임없이 “다르게 말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 한국 민주주의가 획일화된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각자 다른 생각을 말할 ‘여러 목소리의 공존’인 상태로 굳어진 것은 어쩌면 분열 속에서도 민주주의의 관용정신을 포기하지 않은 민주당의 긍정적인 기여 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87년 체제 이후 민주당은 드디어 집권의 기회를 맞았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그리고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당 계열 정권은 한국 사회에 ‘민주화 세력의 집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남겼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당은 새로운 모순이 직면하게 되었다. 그간 핍박받는 소수자였던 민주당은 이제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기득권과 맞서 싸우던 정당에서, 기득권이 된 정당으로 변해갔다. 민생보다 명분, 이상보다 정체성을 우선한 정치적 태도는 국민에게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정의의 이름으로 내세운 정책이 현실을 품지 못했기에 국민적 실망이 배가되었다. 민주의 이름을 걸고 민중의 소리와 유리된 교육 정책 실패, 부동산 정책 실패, 정의 구현 실패는 등 각종 내부적 한계를 노출하며 민주당은 다시금 윤석열 정부에게 집권 여당의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완성형의 정당이 아니고 스스로 변화를 꿈꾸며 지향하고 노력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의 기수로, 1990년대에는 개혁의 주체로, 2000년대에는 진보와 중도의 가교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회적 연대의 실험장으로 변모해왔다.
민주당의 존재는 완전한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실패를 통한 성장의 역사다. 그 실패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현실적 얼굴을 본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서로 다른 사람들’의 공존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분열은 민주당의 약점이자, 동시에 민주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역사는 결국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다. 그들이 보여준 수많은 실책과 오판, 그리고 내부의 싸움조차도 민주주의의 과정이었다. 민주주의는 승자의 언어가 아니라, 실패와 논쟁을 포용하는 언어다. 그 점에서 민주당의 역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민주당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짊어져야 할 미래의 책임을 묻는다.
분열과 타협, 실패와 복귀를 거듭하며 여전히 “국민의 이름으로” 정치를 고민하는 정당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오늘 한국 정치의 희망이라 느끼며 이 책을 덮었다. 나는 이 책을 민주주의의 함의를 고민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