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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탄생
정명섭 지음 / 생각학교 / 2025년 4월
평점 :
정명섭 작가님의 『대한민국의 탄생』은 하와이에 살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년 진수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역사 소설이다. 이 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던 1919년을 배경으로 한다.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한 일반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개인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통해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도드라지는 특성이라 할 것이다.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진수는 하와이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소년이다. 그의 부모는 독립운동을 하던 진수의 삼촌과 함께 일본의 탄압을 피해 조국을 떠났으나, 진수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난다. 이로 인해 진수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태로 성장하며, 조국에 대한 감정도 희미하다. 오히려 머나먼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모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삼촌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원망을 품고 있다. 이러한 진수의 시작은 독립운동이라는 역사가 그의 개인적 삶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이런 진수의 인물을 통해 당시 하와이나 해외에 있던 조선 이주민들의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잘 풀어낸다. 독립운동은 고귀한 대의였지만, 개인들의 삶에는 막대한 희생을 요구했고, 그것이 때로는 원망으로 남기도 했다. 진수는 그 원망을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런 그의 무관심은 독립운동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대의 일부 사람들과도 겹쳐 보인다. 이처럼 현재와 과거의 감정을 연결 짓는 설정은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역사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한다.
진수의 삶은 삼촌과 목사님을 따라 상해로 떠나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긴 항해 동안, 진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진수는 또래 소녀 정화와 중요한 독립운동가인 여운형 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작품 속에서 진수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정화는 진수와 같은 또래지만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로, 진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여운형 선생 역시 단순히 진수를 이끌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깊은 의미를 일깨우며, 그가 역사의 한복판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만든다.
작품의 중요한 순간은 진수가 상해의 서점에서 독립선언서의 도입부분을 소리내어 읽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진수가 처음으로 나라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으로 볼 수 있다. 독립이라는 말이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과 직결된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진수에게 큰 전환점이 되며, 이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진수는 이 과정을 통해 점차 방관자의 상태에서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로 변화하게 된다.
진수는 임시정부 설립을 위해 모인 각 지역 대표들 가운데 서게 되고 독립을 방해하려는 일본의 공작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탠다. 이 과정에서 진수는 더 이상 독립을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느끼며, 조국의 운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작품은 이를 통해 독립운동이 몇몇 지도자나 유명인물들의 일이 아니라, 이름 없는 여러 국민들의 참여와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진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바로 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독자의 공감을 얻는다.
저자는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배경으로 하되, 진수라는 가상의 인물을 화자로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이 개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은 독립운동을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재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책임과 의미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의 탄생』은 독립운동의 과정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영웅담이 아닌, 우리 모두가 여전히 직면해야 하는 문제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독립운동이라는 큰 이야기를 개인의 성장과 연결하며,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준다. 독립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진수의 여정을 따라가며 임시정부의 설립 과정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청소년부터 성인 독자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친근한 스토리 전개가 매력적이다.
이 소설은 독립운동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주제임을 환기시킨다. 이름 없는 국민들의 희생과 참여를 통해 이 나라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