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극은 믿보죠. 역시 재미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다채롭고 캐릭터는 복합적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주가 매력적이었습니다.여주는 소위 추녀라 일컬어집니다. 이 나라 사교계에서 아름다운 여자란 쓰러질 듯 가녀린 몸매에 하얀 피부를 가져야 하거든요. 여주는 기사라서 그에 맞게 몸매는 당당하고 피부는 가무잡잡하죠.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터인데 얼굴의 반이 화상으로 훼손되어 있으니 남편마저 그녀를 혐오합니다. 하지만 이 화상은 여주가 볼 속에서 목숨을 걸고 딸을 구하려다가 입은 것이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남편이라면 아내의 상처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녀의 마음을 도닥여줬어야 합니다. 허나 그러기는 커녕 여주의 상처에 진저리를 치면서 도망쳐 바람을 피우죠. 그렇지만 고구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복수극입니다!!! 여주가 본격적인 복수에 돌입하기까지의 고구마 빌드업은 차근차근 꼼꼼하게 이루어지지만 길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업보 완성 후 복수까지 이야기는 쭈욱 시원하게 달려나가거든요.여주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근사한 남주도 등장합니다. 여주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다시 여자로 살기 시작한 것도 좋았지만 그럼에도 여주 인생의 근본적인 의미를 여전히 자신의 딸에게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건 진짜 감탄스러웠네요. 남주와 딸 두 사랑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올곧게 사랑만으로 직진하는 기사! 상처조차 영광으로 만들며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분연히 칼을 빼들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전사! 드물게 만나 본 개성 만점의 여주였습니다.
(스포일까요? 어차피 표지가 스포인데요. 권수가 뒤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ㅠㅜㅠㅜ)여주와 남주가 쓰레기 소각장에서 처음 마주쳤던 설레는 장면에선 짐작도 하지 못했죠. 남주가 왕자님이 아니라 쓰레기라는 사실을요. 절절하게 사랑한다면서 여주의 몸과 마음 그리고 결국 인생까지 철저하게 망가뜨려버리는 최종 빌런이 남주거든요. 남주의 사랑은 끔찍한 집착이고 교활한 간계이며 냉혹한 폭력이자 여주의 지옥입니다. 온기나 위안, 구원 대신 비열한 가스라이팅만이 있을 뿐입니다.그런데 남주의 행보를 보다 보면 "쓰레기는 쓰레긴디… 아니 또 얘 말을 들어보면… 또 그래…" 라는 (인터넷 밈의) 한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요. 남주의 폭력적인 집착에 진저리치면서도 그의 한계를 모르는 사랑에 설득되어버리기 때문이죠. 너무나 날것이지만 그래도 사랑이며 비인간적이기는 해도 어쨌든 사랑입니다. 이야기 속 다른 남자들과 비교하면 남주는 나름대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배신하지 않으며 사랑에 질렸다고 이유없이 폭행을 휘두르지도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숨기려고 일부러 난폭하게 굴거나 사랑 앞에서 비겁하게 피하지도 않습니다. 제 마음을 조각조각 나눠서 여러 여자들에게 헤프게 뿌리지도 않으며 여자를 트로피나 열등감 해소의 도구로 삼지도 않지요. 하지만 아무리 남주의 사랑이 다른 쓰레기들 아니 남자들과 전혀 다른 차원의 순정이라고 해도 남주는 여전히 쓰레기 맞습니다. 남주의 사랑은 광포한 집착과 가스라이팅으로 표현되며 이 비틀린 독한 사랑에 여주의 영혼은 점점 시들어갈뿐입니다. 여주가 망가져도 남주는 개의치 않습니다. 아니 망가뜨려서라도 제 옆에 영원히 믂어두고자 합니다. 남주의 사랑에 여주의 의지, 여주의 자유, 여주의 인생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남주의 감정일 뿐입니다. 그것도 흥미로운가 아닌가에서 출발한. 그래서 소름이 끼칩니다. 남주가 여주에게 흥미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남주가 여주에게 흥미를 잃기는 할까요…?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남주의 감정도 고여 썩지 않고 여주에게로 계속 흘러갈까요…?소름끼치는 건 또 있는데요. 씬이 마치 남주가 여주에게 가하는 가스라이팅처럼 묘사되고 있는 점이죠. 남주의 손에 여주가 산산이 부서지고 오로지 남주의 흥미와 의지에 따라 남주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억지로 짜맞춰지는 과정처럼 아주 고통스럽게요. 이 과정에서 여주는 저항하고자 하는 자아의 의지를 잃어가지요. 그래서 이 소설의 씬은 단순히 므흣하기 보다는 마음이 무너지는 듯 안타깝고 무서웠습니다. 참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주 진중한 작품이었네요. 차무겸이라는 이름은 절대 잊어버리지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