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답답하다…였어요. 무엇보다 배경이 가상의 임백산(태백산을 모델로 한 듯?)의 작은 폐광촌 동네거든요. 동네 사람들끼리는 이웃집에 수저가 몇 벌이 있는지 다 알 뿐만 아니라 남의 일에 함부로 감놔라 배놔라 하는 환장할 스케일이죠.게다가 주인공들도 답답하고 매력이 없었네요. (당연히 처음에만요!!! ^^;;;;) 20대 초반의 여주 김유나는 서울에서 시도하던 모델 일이 어그러져서 빈털털이로 고향인 임백산으로 돌아오는데요.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나 동네 사람들은 반기는 눈치도 아니고 유나도 잔뜩 가시를 세우고 날카롭게 반응하네요. 대체로 화가 나 있거나 짜증이 나 있는 상태의 유나에게 다가가는 동네 사람은 동갑 소꿉친구였던(?) 고한결 뿐입니다. 이름처럼 한결같이 유나 주변을 맴도는 남주인데요. 고향을 떠나지 않고 부모님의 사업을 돕고 있는 착실한 아이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자기 주장이 없고 모호한 태도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상태죠.과거 구구절절한 사연을 공유했을 것이 확실한 두 사람이 몇 년만에 재회한 거에요. 둘 사이에 풀리지 않은 감정이 몇 년간 쌓이기만 했을테니 대화를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죠. 하지만 유나와 한결이는 대뜸 몸의 대화(!)부터 돌입합니다. 감정의 이해와 교류를 미뤄둔 채 격렬히 치루는 육체 관계는 절대 설레거나 달콤하지 않고 그저 삭막하고 불쾌할 뿐이었네요. 연인이라기에는 건조하고 단순한 파트너라기에는 질척이는 둘의 관계는 미래가 없는 듯 집요했기에 불안하게만 보였죠.두 사람의 관계에 자꾸 거부감이 들어서 솔직히 중간에 책을 덮으려고 했는데요. 그러다가 문득 유나와 한결이의 불안이 아주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렇죠!!! 꿈은 많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룰 순 없으리라 미리 좌절하고 체념했던 내 어린 시절의 그 불안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던 거에요.작가님은 한결이와 유나의 서툴기 짝이 없는 삶과 사랑을 통해 청춘의 어둠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주신 거였어요. 너무 현실적이라서 피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호소력 짙은 강력한 필력!!! 감동이었습니다ㅠㅜㅜㅜ 게다가 감정 표현이나 배경 묘사가 진짜 기가 막혀요.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양가적 감정이 현실감 백퍼로 표현되어 있구요. 폐광촌에서 날리는 탄가루 묘사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생생하네요. 어릴 적 읽었던 김향숙님의 <겨울의 빛>이 생각나더라구요.작가님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왔었던 많은 것들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었네요.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ㅠ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