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스포일 수 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진 괴물 빌런 남주가 히어로 여주에게 반해서(?) 납치한 후 다채로운 갖가지 플레ㅇ… 흠흠… 냅다 결제한 저는 물론 둘의 격렬한 관계 속에 아늑하게 녹아들어간 취향 굳건한 독자이기는 하지만요. 자꾸 이런 의문이 들더란 말이죠. "왜 굳이 여주가 히어로여만 했을까?" 이야기의 목적이 강압적이고 다양한 플레이를 통해 므흣함을 주는 것만이었다면 여주가 히어로가 아니라도 상관 없었겠죠. 남주의 가학적인 애정에 망가져가는 대상이 그저 여성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은 여주가 히어로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e-Book의 특성을 살려 TV 뉴스 화면에 뜨는 속보라든가 인터넷 뉴스 포탈의 댓글, 동영상 사이트 등을 구현해내면서 한때는 히어로였던 여주의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더 이상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되는 잔인한 과정을 차근차근 전개합니다. 그러니 당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이런저런 플레이는 그냥 페이크였다고. 이 짧은 소설은 보다 깊고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여주는 매우 성실한 히어로였죠. 히어로로서의 자부심도 강했구요. 그녀가 빌런에게 납치된 것도 무고한 목숨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제껏 히어로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히어로의 희생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람들, 히어로의 활약과 희생을 칭송하던 사람들은 어땠나요…? 히어로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빌런이 퍼뜨린 조작된 루머에 홀려 그녀를 비난하고 부정하고 급기야 망각해버렸죠. 아주 쉽게요. 이 과정에서 괴물 빌런은 그다지 큰 노력을 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그럴듯한 거짓말을 인터넷에 퍼뜨리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이렇게 빌런은 히어로의 사회적 생명을 완벽하게 끊어버리고 그녀를 완전히 제 소유로 만들어버린 거죠. 이거 너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똑같지 않나요? 선량하고 뛰어난 개인이 의도가 불순한 무리들에게 알게 모르게 짓밟히는 만행은 현실에서 비일비재 합니다. 하지만 제일 소름끼치는 건 히어로의 진실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흑색 선전에 생각없이 넘어가버린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입니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사실을 더 정확하고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는 노력 없이 그저 전해지는 그때그때의 말의 홍수 속에서 부유하는 해파리떼… 그렇게 흐늘거리다가 언젠가 괴물 빌런들에게 소리소문 없이 도살당하는 개돼지 신세가 돼버리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이 제게 준 것은 므흣한 취향의 아늑함이 아니라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경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