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데생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지음, 박보나 옮김 / 에디시옹 장물랭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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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으로 만들어낸 강렬한 마법이, 삶 속으로 저미면서 아찔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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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히치콕이었다. 음향 활용이나 카메라 워킹과 같은 연출에서도 히치콕의 영향력이 느껴졌지만, 전체적인 서사와 모티프의 측면에서도 닮아 있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현기증>의 서사에 <이창>의 관음증을 대입한 영화다.

 

 <현기증>과 <헤어질 결심>의 서사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형사의 직책을 가진(혹은 가졌던)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쫓는다. 그 여자는 남편으로 대표되는 불행한 상황들에서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혹은 가담한다). 남자와 여자는 중간에 사랑에 빠지나, 어느 순간 서사가 중단되었다가 둘이 다시 재회하면서 다시금 시작된다. 그리고 남자는 중단 기간 동안 불면으로 고생한다........ 등 <헤어질 결심>의 서사는 <현기증>을 그대로 가져온 측면이 많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서사 중간에 지루한 자동차 유리 몽타주가 아닌, 망원경과 창문을 통한 관찰을 대입한다. 카메라를 좌우로, 그리고 특히 줌을 하면서 천천히 움직인다. 이를 통해 남자의 추적은 관음증적인, 어쩌면 에로틱한 분위기를 갖게 된다.


 박찬욱은 이 에로틱함을 사랑으로 치환하고 사랑의 공간을 집어넣는다. 이 점이 히치콕의 영화들과 <헤어질 결심>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헤어질 결심>에는 <현기증>에 없는 '사랑'이 있다. 물론 <현기증>에서도 사랑은 중요한 요소이다. 분명히 두 남녀 주인공은 서로 사랑한다. 그러나 <현기증>에서 사랑은 '동질감'의 은유이다. 결과적으로 <현기증>은 혼돈과 죽음의 거대한 중력에서 버둥거리며 싸워나가는 인간의 생(生)을 그린 작품일 텐데, 여기서 똑같은 한계를 갖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은 서로 동질감과 전우애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에서는 사랑으로 은유된다.

 

 그러나 <헤어질 결심>의 사랑은 완벽한 사랑이다. 사랑에 집중하기 위해 이 영화는 주변의 배경들을 상당 부분 제거시켰다. 얘를 들어 박해일은 불면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현기증>의 제임스 스튜어트처럼 트라우마를 갖고 있지는 않다. 탕웨이 또한 킴 노박처럼 상황에 막연히 끌려다니는 인물 대신 사랑을 위해 주체적으로 범죄를 계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영화는 '생'에 대한 탐구를 '사랑'에 대한 탐구로 치환한다.


 이러한 '생'과 '사랑'의 차이가 <현기증>과 <헤어질 결심>에서 남자의 정신적 붕괴를 전혀 다르게 보이게 하며, 결과적으로 후반부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현기증>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절망한 이유는 킴 노박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동지'가 죽었기 때문이다. 킴 노박과 함께 혼돈의 중력으로부터 이겨내려 했지만만 킴 노박이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노력에 대한 회의감이 든 것이다. 반면 <헤어질 결심>에서 박해일이 붕괴된 이유는 본인이 믿었던 진실이 붕괴되고, 더 나아가 사랑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랑'에 대한 <헤어질 결심>의 관점이 드러난다. 박해일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쫓는다. 그런데 무엇을 쫓는가? 형사라는 직업, 그리고 이야기상으로 볼 때 그가 쫓는 것은 '범인' 혹은 '진실'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다르게 말한다. 상술했던 관음증적인 카메라 워크부터 해서 수많은 시점 쇼트들은 그가 쫓는 것을 탕웨이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헤어질 결심>은 추격의 목적을 '진실'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것, 혹은 방정식의 변수를 상수로 바꾸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진정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히치콕은 '사람'을 이루는 것을 알베르 카뮈가 이야기할 법한 영웅주의적 투쟁으로 이야기했지만 박찬욱은 훨씬 더 따뜻한 '사랑'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재빠르게 공간을 넘나드는 교차편집, 그리고 주인공의 추리나 상상을 사실처럼 연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관계와 사랑을 통해서 박해일은 비로소 하나의 존재가 된다.


 이 관점으로 전반부를 다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박해일은 형사로써 탕웨이를 쫓는다. 그러나 그러한 추격은 '진실'과 '사람' 사이에 애매한 위치를 점거하고 있다. 그러다가 '사랑'이 성사되면서 '진실'은 온전히 '사람'으로 바뀐다. 이는 박해일의 존재 증명이기도 한 것이다. 박해일은 제임스 스튜어트와 같은 트라우마는 없지만 대신에 기계적인 성관계를 되풀이하며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그랬던 박해일이 '사랑'을 통해서 존재 증명을 하는 것이다. 이 떄 카메라의 시점 쇼트도 멈추고 둘은 풀샷으로 찍힌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진실이 드러나면서, 진실 대 사랑 문제가 다시금 박해일에게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여기서 사랑으로 다져진 그의 존재는 다시 붕괴할 수밖에 없다(이 때 카메라는 줌 아웃을 한다).


 13개월이 지나고 그가 다시 탕웨이를 만났을 때, 그는 이제 사랑을 거부한다. 존재가 붕괴되는 경험을 다시 하기보다는 그저 현재의 폐허에 머무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반대로 진실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어찌할 것인가? 박해일은 정반대의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둘은 사실상 같은 오류이다. 하나는 방정식에 틀린 상수를 대입했다면, 한 쪽은 맞는 상수를 대입했을 뿐이다. 결국 둘 다 진실을 사람으로 치환시키는, 사랑의 오류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둘은 오해를 풀고 밤 동안에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것은 오직 밤일 뿐이다. 낮이 되는 순간, 다시금 진실 혹은 현실이 그들을 덮칠 것이고, 그들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현기증> 엔딩의 화법을 그대로 빌어와 다시금 질문을 각인시킨다. 바로 여주인공을 죽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기증의 경우) '생'의, (헤어질 결심의 경우) '사랑'의 문제는 영원히 미결로 남는다. 그러한 미결 위에서, 남주인공은 넋 놓고 바라보거나(<현기증>) 괴로워하며 찾는다(<헤어질 결심>).


 어쩌면 사랑의 문제, 그리고 삶의 모든 문제는 영원히 미결일 것이다. 그러한 미결을 해결할 방법은 오직 하나, '헤어질 결심(죽음)'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 살아있는 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미결로 가득찬 세계 위에서, 파도 위에서,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찾으려 하는 존재다, 라고 이 영화는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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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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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괜찮은 책이었다. 미리보기로 보았을 때만 해도 글이 너무나 짧고 얕아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나름대로 괜찮았다.

 

 프롤로그에서도 드러나듯, 이 책은 책들에 대한 평론이나 감상문이라기보다는, 책의 특정 문단이 촉발한 사유를 부드럽게 풀은 것에 가깝다. 애초에 이동진이 문학평론가나 서평가도 아닌데 그런 책을 낼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이동진은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자신의 독서 방식을 설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닫힌 체계로써 책을 분석하고 완전히 이해하려하기보다는, 책이 주는 상념에 때때로 잠기고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책읽기. 이것이 그가 행하는 독서법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독서법에 강력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나는 독서가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책벌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책이 생활의 리듬이자 자아를 이루는 한 요소가 되고, 어느 순간 사유와 책의 경계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러한 기본을 갖추고 있는 이 책의 글들은 이동진의 자아를 경유하여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 글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오는데, 바로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문제이다. 그는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삶에서 '연민'이라는 감정의 중요성을 길어올리고, 동시에 <생의 이면>을 통해 사랑의 동역학에 대해 사유를 펼치는가 하면, <시간>을 인용하며 '기다림'이 삶에서 갖는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가끔씩은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거리기도 하지만(<혼불>, <세월>, <큰 물고기>), 결국 그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적인 실존을 주장한다(<무진기행>, <새의 선물>, <신의 궤도> 등).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이러한 이동진의 사유의 궤적을 그려보고, 그가 인용한 작가의 사유, 그리고 자신의 사유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항상 다른데, 이러한 불일치를 통해 삶과 자신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물론 이 책에는 아쉬움도 많다. 일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글과 같은 몇몇 글들은 신변잡기의 느낌이 너무 강하고, 뒤로 갈 수록 그러한 빈도가 조금씩 늘어나기도 한다. 또한 이동진 특유의 부드럽고 선을 지키는 수사법이 (대부분의 경우) 호감과 생각할 여지를 주지만 가끔씩 정반대로 차단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유의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다. 이동진의 실제 사유는 어떨지 모르나, 아무래도 이 이상의 깊이로 들어가는 순간 저자의  너무 내밀한 곳까지 드러날 수 있어 이쯤에서 멈춘 듯 하다. 물론 이는 당연한 것이고 이해하는 바이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깊게 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러한 독서의 가장 높은 경지는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와 같은 명저가 다다른 깊이일 텐데, 이러한 책들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 이 책은 기본을 갖춘 책이다. 독서에 관해서 독자를 기만하지 않고, 지식을 얕거나 위험하게, 혹은 편협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름 괜찮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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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리 스몰린이 들려주는 물리학 혁명의 최전선 사이언스 마스터스 13
리 스몰린 지음, 김낙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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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수학의 언어를 일상어로 풀었을 뿐이기에 이들의 성찰이 아주 와닿진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학자들이 앙상블을 펼치며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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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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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의 사상을 대략적으로 훑어보긴 좋으나 너무나 압축적이어서 그의 논리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가 직접 쓴 책들에 호기심이 생기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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