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웃었으면 좋겠다 시바 -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아
햄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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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자랐다.

고집스럽게도 나로 자랐다.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난결국 나일 수밖에 없었다."


잡아 늘리고 싶을 정도로 토실토실한 볼과 말랑말랑 몸매를 가진 시바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살고 싶은 우리의 시바어쩐지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이 책은 그림형 에세이로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좀 더 가볍게 살기로 했다

2부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그게 마음인가

3부 에누리 없는 시바 연대기

4부 나의 최선은 지금의 나야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린 햄햄은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현재, 8년간의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신나는 백수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모든 회사원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은 결국 백수 같은 삶이라지만 그건 회사원이 되었을 때 얘기고모든 취준생들은 백수라는 현실을 괴로워하며 빨리 취업하려 애쓴다그러나 우리의 시바는 다르다시바는 일도 출근도 없는 하루하루를 마음껏 즐기고현재와 현재를 살고 있는 자신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아침에 급히 이불에서 일어나다가 '아 맞다 회사 때려치웠지하고 다시 드러눕는 시바는 얼마나 귀여운지.

비록 회사를 나오게 되었지만시바는 한층 더 여유롭고더욱 느긋하고무엇보다 행복해 보인다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모든 회사원이 그렇듯 시바도 제법 험난한 회사 생활을 했다어느 회사에서는 "어디 가서 컴퓨터로 그림 그리지 마세요."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또다른 회사는 "입사하고 바로 결혼할 건 아니죠?"라고 묻기까지 했다대체 면접을 빙자한 인신공격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우리 시바가 더 이상 시바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쯤 끝나는 걸까아니면 그 짓이 끝나야 시바가 시바라는 말을 끝내는 걸까가장 슬픈 일이 이것이 그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할 만하면 일이 아니겠지.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다고.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들다면서 일하는 건 쉬워 보이는 모양이다.

학교에서도 "힘들 테니 과제는 쉬운 걸로 내줄게 or 빼줄게"라고 말하는 교수님은...

언젠가 '동생과 언니의 카톡'이라는 스크린샷을 본 적이 있다.

'빨리 취업하고 싶다'는 동생에게 언니의 대답이 가관이다.

'돈 내고 다니는 학교도 그 모양인데 돈 받고 다니는 회사는 어떻겠니'


"오늘도 정의로운 백수가 되게 해 주세요"


시바는회사를 나올 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엉엉 울었다퇴직이 처음이 아닌데도 그랬다.

그렇게 펑펑 운 다음에야 우리의 시바는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해야 하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늘 당연한 것일수록 깨닫는 데 오래 걸린다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당연한 곳이어서 그렇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시바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예술계의 고질병저작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법적 대응을 하느라 거금을 날렸다하지만 그래도시바는 살아 있고행복하게 살려고가볍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릴 때 산타 할아버지가

그렇게 울지 말라고 한 이유를 이제 알겠어.

사회생활 하면 울고 싶을 때가 오니까

그럴 때 참으려면 내성을 기르라는 거지.


우는 아이한테는 선물을 안 준다니.

울고 있으니까 좀 달래줘도 될 텐데."


울고 있을 때 산타 할아버지조차 어깨 토닥여 주지 않는 세상,

염려의 말 대신 질책을 말을 하는 데 혀를 사용하고 있는 세상에서,

나 자신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주자.

나 자신만은 나를 위해 살아주자.


"다들 처음은 있는 거니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니까.

다들 날 때부터 회사원은 아니었으니까.

너도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어차피 이번 생은 다들 처음이니."

다들 후회 없이 놀아라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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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송정림 지음, 채소 그림 / 꼼지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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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간직하고픈 시간은

아주 평범한 시간이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행복하다는 느낌조차 없는 시간이다."


읽으며 새벽안개에 젖는 것 같기도 했고깊은 물 속으로 침잠하는 것 같기도 했다.

행복에 대해삶에 대해사람에 대해사랑에 대해 귓가에 노래하듯 속삭이는 것 같던 책이었다.

행복과 삶과 사람과 사랑생각만 해도가만히 읊조리기만 해도 마음 한구석에 온기가 고이는 단어 아니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언어로만 채워진 책이런 책 한 권쯤은 책장에 꽂아 두면 좋지 않을까매일 집에 돌아왔을 때맞아 줄 사람은 없더라도 맞아 줄 책은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에세이이다그러나 예쁜 글씨체로 줄을 맞춰 배열되어 있고언어가 꼭 시어 같아 시집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모든 글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과 색이 입혀져 있는데단순히 단색이 아닌 그라데이션을 그린다신경을 많이 쓴 책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흡족했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색연필 그림도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중간중간 색지와 함께 등장하는 색연필 풍의 작화가 한층 감성을 고조하고 책에 미적인 감각을 더한다.


"생의 암호는 단 하나.

닥치고 견디기.

아무 기대도 없이

그저 오늘을 견디기.

 

인생을 살아온 수많은 이들이

써내려간 철학서와 문학은

우리에게 이런 힌트를 준다.

기껏 그래봤자 선택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일 뿐.

 

눈물 젖은 빵이거나,

맨땅에 헤딩이거나.

 

그러니 두려울 것 없는 인생이라고."


서평을 쓸 때는 느낌과 동시에 객관적인 분석과 비평도 넣으려 노력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자꾸 그러기가 싫어졌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말고 한 번쯤은 감성에 푹 젖어보고 싶었다.

'메지나'라는 만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두 날개로 나는 새다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날 수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대사인데이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가끔은 날개를 쉬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갈수록 휴식에 인색해진다.

육체의 휴식이든 마음의 휴식이든휴식은 일보다 훨씬 중독성 있어서 잠시 발만 담그고 빨리 돌아와서전력으로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내가 충분히 기력을 회복할 만큼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그럴 거라면어차피 마음껏 쉴 수 없다면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쉴 수 없을까.

이 글에 기대고 싶어져서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여기서 다리를 쉬고자 주저앉아버리면 다시는 일어나 달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공감도 하고눈물도 흘리고잔잔한 미소도 짓고그렇게 크게 한숨 내쉴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저자는 사랑과 이별의 감정도 다양한 언어를 써서 다채롭게 그려낸다.

나는 아직 사랑을 해 본 적이 없기에 이별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저자처럼 솔직히 슬퍼하고 마음껏 처연했으면 한다그리고 아름다웠으면 한다.

어쩌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그런 이별 따위는 세상에 없다고.

뭐 어떤가해보지 않았으니 환상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차가운 겨울날 뜨는 해를 바라볼 때,

봄의 한가운데 햇볕이 머리 위로 드리워질 때,

빗소리가 귓바퀴를 두드릴 때,

이제 막 터지려는 꽃봉오리를 볼 때,

길거리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어쩐지 행복해질 것 같을 때,

그 때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지난날을 다 잊어버리게 하는 술이 있다면
그 술은 금방 동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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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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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공헌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한동안 열풍을 일으켰던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중 한 사람인 기시미 이치로의 신간이다.

전작에서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주장했던 그가 이번에는 '늙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더 나아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창한다.

'노화'는 언제나 인간에게 최대의 두려움이었다.

늙음과 죽음을 두려워해 불로불사를 꿈꾸다 파멸한 인물은 옛이야기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그 유명한 진시황도 불사약을 찾아 온 천하를 뒤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런지 판타지 장르에 등장하는 인외종족들은 대부분 늙지 않고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거나심지어는 아예 죽지 않는다.

사람은 언제나 젊음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켰고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그것을 상당 부분 이루어냈다그러나 그것은 노화를 늦춘 것뿐그래서 아직까지도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해서인간이 영원한 젊음을 손에 넣었을 때 어떤 비극이 시작되는지 그린 소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내가 읽은 책 중에서는 잉여인간 안나가 그 대표격이었고밀레니얼 칠드런도 그런 시대가 배경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육신에 영원이 허락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나는 언젠가 찾아올 나의 끝을 의연히 받아들이리라 생각해 왔다땅 위에 태어난 생명인 이상 갈수록 힘을 잃으며 늙어 가고 끝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 법칙만큼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이제 막 성인이 된 지금그 생각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성장하고 있다'라고 했다면이제부터는 '늙어 가고 있다'라고 할 것이다지금까지 나이를 먹으며 무언가를 얻어 왔다면이제부터는 얻은 것들을 하나씩 잃어 가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청춘이라고 부른다좋을 때라고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절이 정말 한때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언젠가는 두 다리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언젠가는 등을 꼿꼿이 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언젠가는 두 눈으로 세상을 또렷이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기시미 이치로는 부서지기 직전 같은 마음에 꽃잎을 한 장 던진다.


"인간은 몇 살이 되어도 진화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디를 향해 진화하느냐는 점입니다."


저자는 늙음이 잃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고 말한다젊었을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 또다른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말한다속세의 경쟁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발전을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젊었을 때 하지 못했던 것을 나이 들어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말한다.

반대로젊었을 때 잘했던 일을 나이 들어서 못하게 되었다고 해도 낙담할 것 없다저자는 삶을 '빼기'가 아닌 '더하기'로 보라고 말한다.

젊었을 때의 자신을 기준으로 하고 뺄셈하여 지금의 자신을 바라본다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지금 여기 있는 나를 기준으로 두고 더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그 즉시 '잘하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새로 시작한 일이니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잘하게 되는것의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노화와 더불어 얻게 될지도 모를 병에 걸렸을 때와더욱 노화하여 병석에 눕게 된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일러 준다.

이제 더는 도움이 될 수 없다고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고 낙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어떤 상태든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살아 있는 것만으로 타자에게 공헌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공헌했던 때가 있을 것이다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것뿐인데어쩐지 마음이 불안하다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정말 괜찮을 걸까이 책은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괜찮다는 말이지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라고.

늙음에 매몰되어서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스스로 한계를 짓고 전부 놓아 버리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이 나쁜 의미로 늙어버릴 것이다그때까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탐구하고익히고계속해서 성장하고 싶다.

지금의 젊은 나는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뛰어다니며 현재의 삶을 살고 있고무언가를 하고 있다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삶아니 내려놓아야만 하는 삶일까그런 삶을 떠올리면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모르기 때문에 미래가 두려웠다.

어쩌면 미래의 나와 미리 화합의 물꼬를 터 두는 것그게 언젠가 늙을 나를 받아들이는 좋은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머리가 희게 센 나를 떠올리면 아직은 너무나 막연하다머리가 희게 센 내가 과거의 나를 떠올려도 지금과 비슷할 것 같다.

그때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내는 것그것이 첫 과제가 아닐까 싶다.

"지금 여기에 있다.
그 외에 무엇을 더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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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나고 있단다."

 

할머니와 아가씨의 모습을 넘나드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바리스타 선녀님이시다.

커피 내리는 선녀라니, 아마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심지어 한복 저고리에 '바리스타'라고 쓰인 캔뱃지도 떡하니 달고 있다.

계룡선녀전은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의 재해석이다. 그러나 모티프만 따왔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돌배 작가만의 치밀한 설정과 서브 플롯을 더하여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났다. 동화의 재해석이 범람하는 시기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날개옷을 잃어버리고 699년간 지상에 묶여 있던 탐랑성 선옥남 선녀의 앞에 환생한 서방님 후보가 나타난다. 그런데 웬걸, 후보가 하나가 아닌 둘이다. 서방님을 찾아야 선옥남 선녀는 날개옷을 되찾고 천계로 돌아갈 수 있다. 선녀님은 진짜 서방님을 찾기 위해 50년 만에 무작정 서울로 향한다.

 

"네 손가락은 초목을 춤추게 하고 네 목소리는 꽃을 흐느끼게 하느니라. 너는 북두를 비추는 첫 별이며,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수목을 어루만지는 존재이니, 그 이름은 탐랑성이니라."

 

이 작품 최대의 장점은 연필로 그린 듯한 부드러운 작화와 탄탄한 플롯이다. 연재 당시 1화부터 한 주도 안 빠지고 꼬박꼬박 챙겨 본 독자인데, 다시 정주행해 보니 복선이 정말 세세하게 깔려 있었다. 아마 결말을 본 후 다시 읽어 보면 감탄하게 될 것이다. 한국적 분위기도 물씬 풍기니 한국형 판타지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반가운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결말이 상당히 여운이 많이 남는다. 용서와 집착, 인과, 정신적 해방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그간의 수수께끼가 한 번에 풀리는 개운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깨알같은 재미난 설정도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선옥남 선녀가 운영하는 선녀다방의 메뉴 이름은,

 

사슴의 눈물

참새의 아침 식사

안 돼요 공주님

달빛 엘레강스

검은 물

 

이다.

무엇을 마셔야 할지 상당히 고민되는 차림표인데, 마지막의 검은 물을 마셨다가는, , 결과는 본편에서 확인하자.그리고, 선 선녀와 나무꾼의 자식인 점돌이와 점순이는 환생을 거듭하다 이번 생에서 점돌이는 알이, 점순이는 고양이로 변신하는 호랑이가 되었다. 점돌이가 변한 알에서 뭐가 깨어나는지도 직접 확인하도록 하자. 족자에서 튀어나오는 점순이의 노트북도 시선을 잡는다.

돌배 작가의 데뷔작인 샌프란시스코 화랑관부터 챙겨 본 독자다. 전작도 무척 따스한 이야기였는데,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번 책은 전작에 비해 관심을 많이 받고 있어 팬인 내게도 의미가 깊다. 심지어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오늘부터 방송된다. 주인공인 문채원 배우부터 시작해 아주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웹툰의 실사화에 회의적인 편인데, 이번에는 기대가 많이 된다.계룡선녀전, 많은 관심과 시청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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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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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벼워진 듯한 그 기분.

체중이 줄었을 때의 느낌과는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 야릇한 가벼움.

그건 차라리 무언가가 덜어내어졌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크림을 덜어낸 케이크처럼, 음표를 덜어낸 악보처럼,

글자를 덜어낸 책처럼,

자신과 불가결의 관계를 맺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버린 것 같았다."


속도감 있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현실에 판타지적 요소를 살짝만 끼얹어서, 무겁기 그지없는 삶을 조금 더 가볍게, 그림자만큼만 가볍게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의 첫 시작은 할아버지의 예언이다.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때때로 예언을 하는데, 당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르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런데 하필 예언이랍시고 하는 말은 전부 좋지 않은 말이어서, 가족들은 혼란에 빠진다. 차라리 할아버지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도 할아버지의 예언을 피해가지 못한다. 그 예언은 다음과 같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 거다.

소중한 걸 잃게 된다. 힘들 거다. 용기를 잃지 마라. 도망치면 안 돼."


어쩐지 마냥 악담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충고나 조언 쪽에 더 가깝게 받아들여도 괜찮을 법한 예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여자친구 '서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어떤 예고도 없이,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줄거리만 봐서는 제목이 왜 '점선의 영역'인지 알 수 없다. 제목의 뜻은 직접 읽으며 확인하도록 하자.

이 책에는 줄거리를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장치가 상당히 많다.

예언자 할아버지, 그림자를 잃어버린 서진이 중심 소재가 되어 줄거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스토리를 이끈다. 예언과 잃어버린 그림자는 그저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가던 인생에 점점이 생긴 얼룩처럼, 어쩌다 생긴 말썽일 뿐이다.


서진이 그림자를 잃어버린 날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회사의 2차 면접이 있던 날이었다. 그 회사의 부장은 여성 최초로 간부진 자리까지 오른 사람으로, 서진은 꼭 그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면접에서 대면한 그 부장은 서진에게 묻는다.

현장이 남초인데 괜찮겠느냐,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그만둘 거냐.

남자 지원자에게는 묻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서진에게 부장은 말한다.

"확실히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네요."

서진은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한 소문이 이 바닥에서 돌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렸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림자를 빼앗긴 건 아닐까. 그 부장에게, 그 회사에게, 어쩌면 이 사회에. 전 직장에서부터 이어져 여기까지 쫓아온 그 부조리가, 서진을 붙잡고 그림자를 우악스럽게 찢어낸 것은 아닐까. 그림자를 빼앗긴 이후 사람들이 서진을 보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결과는 생각해 보면 제법 신빙성 있는 추측일지도 모른다.


서진은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며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의 무게가 가벼워졌음을 실감한다. 필수불가결한 무언가가 덜어내어진 개운함이었다. 서진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다시 자신을 찾아온 그림자를 제 손으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그림자가 없어진 서진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필수불가결한 무언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살아가며 그렇게 붙들고 있던 것은, 일단 떨어져 나가면 그렇게 홀가분해지는 무언가에 불과했던 걸까. 결국 딱 그림자 정도의 무게였던 걸까. 그런데 그것이 내 존재를 결정한다니, 참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그런 것 하나 정도는 붙잡고 있지 않은가.


이야기의 끝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여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는 이 소설이,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에 점선을 이루는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정확히 무엇인진 몰라도 아무튼 잘 움직이기만 하면 그걸로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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