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장님이 너무 바보 같아서
하야미 카즈마사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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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서 서점 직원이 됐는데, 인생이 녹록지가 않다. 후배와는 손발이 안 맞고, 오늘도 끊임없이 정신력을 깎아먹는 진상 손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하는 점장님과 사장님까지. 게다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인 직장 선배마저 그만둔다니. 보기만 해도 나 때려치울 거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점장님이 너무 바보 같아서』는 작은 서점에서 문예 코너를 담당하는 직원 '다니하라 교코'를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코믹 미스터리 드라마이다. 현장 서점의 묘사가 생생하고 현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점장님, 사장님, 소설가, 출판사 직원들과의 마찰과 갈등을 리얼하게 묘사해서 금방 주인공에게 이입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유머러스하다. 단지 서점에서 일을 할 뿐인데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거기 대처하느라 머리를 싸매는 주인공의 모습은 안쓰러움과 함께 웃음을 자아낸다.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 속도감까지 더해져 푹 빠진 채 쉴새없이 책장을 넘겼다. 다 읽은 뒤 "아, 재밌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렇게 초중반부까지는 그저 주인공의 일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내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앞부분의 일상들에 사실 복선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이 사실은 단서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놀라움과 그래서 이 이야기가 어디로 도착할지 궁금해하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코 반짝반짝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

매일 즐겁게 웃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비록 지금은 눈물 젖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더라도 언젠가 반짝반짝 빛나고 싶다!

우리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 걸까?

아무리 힘들고 짜증 나도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언젠가는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열 번 힘들어도 한 번의 보람찬 순간 때문에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일확천금이 떨어진다면 좋겠지만, 업무 관계자들이 모두 개과천선해서 일하기 편해지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는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좌절하면서도, 그 끝에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또 하루를 산다. 나는 이 책이 그런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헌사 같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나를 동경하며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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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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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고를 내고 나서 나는 내내 도망만 다녔다. 부모의 책임으로부터, 너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일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왔어.

그런 삶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버지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웃지 못하게 되더구나.

그래. 계속 도망치는 한 사람은 진심으로 웃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가키 쇼타가 친구들과 술을 마신 밤, 싸우고 냉전 중인 여자친구에게서 문자가 온다.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

막차도 끊기고 한창 비가 내리는 시각, 쇼타는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는다.

여자친구를 보러 달려가던 길,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무언가를 치고 만다. 짐승일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선명하게 들린 사람의 비명. 그는 공포에 질린 채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만다.

다음날 아침, 쇼타는 자신이 80대의 노인을 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저자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누구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형기를 채워 사법적인 책임은 다할 수 있어도 진정한 속죄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저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픔에 젖어 지내다 이 소설을 떠올렸다고 한다. 스토리와 장면, 대사까지 머릿속에 흘러 들어와 이를 메모하다가 밤을 지새웠다. '이 일은 작가 1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처음 띠지와 뒤표지를 통해 가해자의 이야기라는 소개를 읽고 나서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거나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모를까, 음주운전과 뺑소니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은 가해자의 행위를 변명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어쩌다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진정으로 속죄할 방법을 찾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동시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아픔도 자세히 조명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저지른 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 준다.

가해자는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가해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람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말 한 마디, 눈빛 한 번으로 우리 모두는 모두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잘못을 비는 일은 가해행위보다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책은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저자가 나름대로 내놓은 답일 것이고, 우리는 이 책에서 나름의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이 '어느 도망자의 고백'이어서 나는 주인공이 사건을 은폐했거나 형을 살지 않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의미의 '도망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법의 심판을 받았더라도, 형기를 채웠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피해자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에서 도망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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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님이 너무 바보 같아서
하야미 카즈마사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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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도 신선하고 제목이 참 귀여워요. 어떤 이야기일지 벌써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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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는 사람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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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은 상대적이지만,

사람은 반드시 분별해야 해.

사람이 사람으로 있으려면

사람 안에서 살아야 해.

저자 이름을 확인하고 상당히 놀랐다. 『앨리스 죽이기』 작가가 SF로 돌아오다니. 추리소설 작가가 보여주는 SF는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고, 고바야시 작가의 장점이 여기서는 어떻게 빛을 발할지 관심이 일었다.

이 책은 '하드 SF' 장르이다. 편집자 후기에 의하면, 하드 SF는 SF의 정수이자 상당한 난이도를 갖춘 작품으로, 과학적,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SF라고 한다. 즉, 수준 높은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7편으로, 각 작품마다 흥미로운 제목이 붙어 있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타인은 그런 나를 봐주지 않는다.

타인은 내가 모르는 나를 계속 보고 있다.

그런 세계는 숨 막힐 것 같아.

『앨리스 죽이기』를 읽으며 저자의 장단점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장점은 놀랄 만큼 치밀한 복선 배치와 플롯을 끌고 가는 힘이었다. 『앨리스 죽이기』는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는 책이었고, 거듭되는 반전과 빈틈없이 회수되는 복선에 감탄하며 읽었다.

단점은 문장력이 좋지 않고 불필요하게 묘사가 잔인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죽이기』 시리즈의 후속작을 읽지 않게 된 원인이 되었다.

『바다를 보는 사람』에서는 저자의 단점이 대부분 개선된 모습이 보인다. 불편한 만큼 잔인한 묘사도 없고, 각 작품마다 독자적인 세계와 설정을 구축하여 작품이 참 다양하다고 여겼다. 그간의 집필활동을 통해 많이 발전했구나, 생각했다. 복선, 반전 등 플롯에 관한 역량은 여전히 건재하여, 기존 작품과 전혀 다른 장르에서도 고바야시 작가의 특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장르가 하드 SF이다 보니, 과학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인 나는 설정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였는데 그에 관한 설명이 불친절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7편 중 제대로 이해한 작품이 한 편도 없는 것 같다. 과학 지식을 배제하고 서사만 읽자니, 인물의 내면 묘사 등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감동을 얻기도 어려웠다. 읽는 데 힘이 많이 든 소설이었다.

그래도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흐린 구석 하나 없는 맑은 눈으로, 왜곡이 없는 세계를 보는 것.

솔직한 마음으로 물으면 세계는 틀림없이 말을 걸어줄 거야.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하드 SF'라는 장르를 만나게 되어 SF 애독자로서는 반가웠다. 고바야시 야스미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도 기뻤다.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SF라는 장르를 쓰기까지 얼마나 고심했을지, 저자의 노고가 빛나는 시도였다.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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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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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던 어린 날, 마법사 빵집이 내게 문을 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12살이었다. 태어난 지 12년이 되던 해,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흘러 개정판을 만나게 되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다섯 번 넘게 읽었을 만큼 좋아하는 책이다. 개정판을 읽으며 구판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어떤 단어가 바뀌고 어떤 문장이 추가되었는지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출간 당시 내게 신선하고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는 장르문학이 등한시되던 시기였는데,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 무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도, 문단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심지어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선택과 책임, 현실에 대해 말하는 청소년소설은 정말 흔치 않았다.

그랬기에 『위저드 베이커리』는 문학계에 꼭 필요한 소설이었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줄곧 사랑받아 왔다. 독자를 빨아들이는 독특한 설정과 매력적인 인물들, 무엇보다 작가의 뛰어난 필력 때문이었을 터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스토리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감탄했다. 본작이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려하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개성적인 문장이었다. 이 책으로 구병모 작가에게 빠져 현재까지 그가 쓴 작품은 모두 읽었으니 『위저드 베이커리』는 내게도 뜻깊은 작품이다.


개정판이 출간되었을 때 놀랐던 점은, 출판사의 마케팅과 대부분 독자들의 반응이 이 책을 '위로의 서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의 모든 감상을 존중하지만, 나는 이 책이 위로의 서사라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세계는 '치유'나 '위로'와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냉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의 작품 중 그나마 따스한 편인 『한 스푼의 시간』, 『버드 스트라이크』,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에서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저자는 절대 덮어놓고 위로를 던지지 않는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환상적 리얼리즘 성격을 띠는 작품이 많은데, 작품 속의 판타지적 요소는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구병모 작가 작품의 모든 주인공은 개인과 약자에게 터무니없이 잔인한 현실을 살고 있고 그건 허구적 존재가 끼어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끝까지 주인공의 몫으로 남고, 결말 또한 두 갈래로 갈라져 해피엔딩인지조차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의 서사로 다가간 이유는, 견디기 버거운 상황에서 도망치는 주인공에게 운 좋게도 공간을 내어 주는 초자연적 존재가 있었다는 것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잠시 도망칠 곳조차 존재하기 않기에.


이 책은 선택과 책임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사 점장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마법은 더없이 불완전하고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을 사용한 손님들의 결과는 하나같이 썩 좋지 않다. 최후에 점장이 준 선물을 사용할지 말지 그 선택 또한 주인공의 책임으로 남는다.

점장의 입으로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듯, "자기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부딪칠 것." 그 과정에서 마법이 끼어들 틈은 없다. 인간의 것 아닌 절대적인 힘에 의존하고 싶어도 언젠가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라는 것.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내린 선택에 상처입어도, 현실에 지더라도 그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 고통스런 일이겠지만, 개인의 성장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



12살의 나는 12살이 견디기에 버거운 현실을 안고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내 삶이 가장 버겁고, 그걸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해졌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을 견디어 살아낸 사람이 다름아닌 나라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 "지금껏 잘 견뎌 왔고, 앞으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내 선택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에 선택의 책임도 선택의 기쁨도 온전히 나의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나아갈 것이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내 유년의 길목에서 위저드 베이커리의 간판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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