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키 쇼타가 친구들과 술을 마신 밤, 싸우고 냉전 중인 여자친구에게서 문자가 온다.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
막차도 끊기고 한창 비가 내리는 시각, 쇼타는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는다.
여자친구를 보러 달려가던 길,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무언가를 치고 만다. 짐승일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선명하게 들린 사람의 비명. 그는 공포에 질린 채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만다.
다음날 아침, 쇼타는 자신이 80대의 노인을 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저자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누구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형기를 채워 사법적인 책임은 다할 수 있어도 진정한 속죄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저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픔에 젖어 지내다 이 소설을 떠올렸다고 한다. 스토리와 장면, 대사까지 머릿속에 흘러 들어와 이를 메모하다가 밤을 지새웠다. '이 일은 작가 1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처음 띠지와 뒤표지를 통해 가해자의 이야기라는 소개를 읽고 나서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거나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모를까, 음주운전과 뺑소니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은 가해자의 행위를 변명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어쩌다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죄를 마주하고 진정으로 속죄할 방법을 찾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동시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아픔도 자세히 조명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저지른 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 준다.
가해자는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가해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사람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말 한 마디, 눈빛 한 번으로 우리 모두는 모두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잘못을 비는 일은 가해행위보다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책은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저자가 나름대로 내놓은 답일 것이고, 우리는 이 책에서 나름의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이 '어느 도망자의 고백'이어서 나는 주인공이 사건을 은폐했거나 형을 살지 않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의미의 '도망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법의 심판을 받았더라도, 형기를 채웠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피해자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에서 도망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