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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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던 어린 날, 마법사 빵집이 내게 문을 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12살이었다. 태어난 지 12년이 되던 해,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흘러 개정판을 만나게 되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다섯 번 넘게 읽었을 만큼 좋아하는 책이다. 개정판을 읽으며 구판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어떤 단어가 바뀌고 어떤 문장이 추가되었는지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출간 당시 내게 신선하고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는 장르문학이 등한시되던 시기였는데,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 무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도, 문단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심지어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선택과 책임, 현실에 대해 말하는 청소년소설은 정말 흔치 않았다.

그랬기에 『위저드 베이커리』는 문학계에 꼭 필요한 소설이었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줄곧 사랑받아 왔다. 독자를 빨아들이는 독특한 설정과 매력적인 인물들, 무엇보다 작가의 뛰어난 필력 때문이었을 터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스토리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감탄했다. 본작이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려하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개성적인 문장이었다. 이 책으로 구병모 작가에게 빠져 현재까지 그가 쓴 작품은 모두 읽었으니 『위저드 베이커리』는 내게도 뜻깊은 작품이다.


개정판이 출간되었을 때 놀랐던 점은, 출판사의 마케팅과 대부분 독자들의 반응이 이 책을 '위로의 서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의 모든 감상을 존중하지만, 나는 이 책이 위로의 서사라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세계는 '치유'나 '위로'와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냉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의 작품 중 그나마 따스한 편인 『한 스푼의 시간』, 『버드 스트라이크』,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에서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저자는 절대 덮어놓고 위로를 던지지 않는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환상적 리얼리즘 성격을 띠는 작품이 많은데, 작품 속의 판타지적 요소는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구병모 작가 작품의 모든 주인공은 개인과 약자에게 터무니없이 잔인한 현실을 살고 있고 그건 허구적 존재가 끼어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끝까지 주인공의 몫으로 남고, 결말 또한 두 갈래로 갈라져 해피엔딩인지조차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의 서사로 다가간 이유는, 견디기 버거운 상황에서 도망치는 주인공에게 운 좋게도 공간을 내어 주는 초자연적 존재가 있었다는 것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잠시 도망칠 곳조차 존재하기 않기에.


이 책은 선택과 책임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사 점장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마법은 더없이 불완전하고 어딘가 불온해 보인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을 사용한 손님들의 결과는 하나같이 썩 좋지 않다. 최후에 점장이 준 선물을 사용할지 말지 그 선택 또한 주인공의 책임으로 남는다.

점장의 입으로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듯, "자기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부딪칠 것." 그 과정에서 마법이 끼어들 틈은 없다. 인간의 것 아닌 절대적인 힘에 의존하고 싶어도 언젠가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라는 것.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내린 선택에 상처입어도, 현실에 지더라도 그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 고통스런 일이겠지만, 개인의 성장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



12살의 나는 12살이 견디기에 버거운 현실을 안고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내 삶이 가장 버겁고, 그걸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해졌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을 견디어 살아낸 사람이 다름아닌 나라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 "지금껏 잘 견뎌 왔고, 앞으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내 선택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기에 선택의 책임도 선택의 기쁨도 온전히 나의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나아갈 것이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내 유년의 길목에서 위저드 베이커리의 간판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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