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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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나에게는 이 책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졌다.

『베테랑의 몸』은 기록노동자 희정 작가와 최형락 사진작가가 여러 분야에서 노동해온 12인의 ‘베테랑’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동시에, 한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베테랑’이 되기까지 쌓아 온 시간, 삶 그 자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균형 잡는 몸’, ‘관계 맺는 몸’, ‘말하는 몸’이 각 장의 제목이다. 인터뷰에 목소리를 내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은 세공사, 로프공, 마필관리사, 안마사, 조산사 등 다양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오래 일한 사람들에게서는 배울 점이 있다. 한 자리를 오래 지켰다는 것은 모든 일에 당연히 따라오는 고난과 좌절을 오래 이겨내었다는 뜻이고, 일을 하는 데 자신만의 기술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에 선뜻 목소리를 빌려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 왔다.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힘의 균형을 찾고, 수십 미터 건물에 매달려 외벽을 청소한다. 수천 명의 식사를 책임지기도 하고 새 생명의 탄생을 돕기 위해 휴일도 새벽도 없이 달려가기도 한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환한 조명이 켜진 무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박수를 보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꾸리기 위해 성실하게 일해 온 시간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그 자체로 귀중하고 가치 있었다.

이쯤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자 삶인데, 왜 ‘베테랑의 시간’이나 ‘베테랑의 삶’이 아니라 ‘베테랑의 몸’이 제목일까? 왜 ‘몸’을 기준으로 각 장을 나누었을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라는 문구대로,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해 오다 보면 몸이 그에 맞게 변화하기 마련이다. 등장하는 ‘베테랑’들 역시 그들이 해 오던 일이 어떠한 형태로 몸에 남게 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질병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났다. 척추가 휘어 걸음걸이가 망가지고, 손이 퉁퉁 붓고, 약품을 오랫동안 밟고 있으니 피부가 벗겨진다. 저자는 그것을 ‘영광의 상처’라며 찬사하는 대신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 현장의 가혹함을 지적한다.

이는 책을 더욱 신뢰하게 해 주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인터뷰집이라 하나 그것을 받아적고 전달하는 이의 목소리는 필연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법. 인터뷰이를 대하는 태도와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에서, ‘들어가며’, ‘인터뷰 후기’에서 드러난 저자 희정의 목소리에서, 그가 자신만의 신념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람과 글을 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마주선 사람과 그의 육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전해졌다. 그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더욱 귀중해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일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너무 보이지 않아서 때로 저절로 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제 그 노동자들의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베테랑의몸 #희정 #최형락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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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비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4
박문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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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마저 하나의 ‘쇼‘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길을 찾을까. 더 나빠지는 것 같아도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찾으려는 분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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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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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긴긴 여행이 곧 끝난다. 유리코가 연주하는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바다로 나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제 작별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부모. 더없이 슬프지만 누군가는 마주해야 할, 마주하고 있을, 마주할지도 모를 순간이다. 이 이야기는 평생 1년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살아온 어머니와 아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싱글맘인 '유리코'는 외아들 '이즈미'는 평범한 모자이다. 이즈미가 어린 시절, 유리코가 1년 간 말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건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던 어느 날, 유리코가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추억의 마지막에 와서야 유리코와 이즈미는 1년의 틈을 뛰어넘어 서로의 진실을 기억하려 한다.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고백,> <늑대아이>, <너의 이름은.> 등의 영화 제작자이다. 저서로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억남』 등이 있으며 소설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백화』는 작가의 외할머니에게 치매가 발병한 것을 계기로 쓰였다고 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된 주인공이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판타지적 소재를 빌려 무겁지 않게 풀어낸 글이었다. 이번 작품인 『백화』 역시 그와 같은 결을 갖고 있되 문체와 문학성은 그보다 더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작은 다소 유치한 초반부가 장벽이 되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가벼움을 덜어내고 진지한 시선으로 인물에게 접근했다.

가장 큰 장점은 너무 무겁지 않다는 것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전개가 빠르며, 가독성이 좋아 무거운 주제임에도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다. 그럼에도 적당한 무게감과 감동을 분명히 잡고 있어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러한 무게감의 중심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다. 주요 인물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변화 과정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맞물려서 전개되며, 마지막 반전 또한 감동을 선사하는 등 전개 또한 준수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중 계속해서 강조되는 '유리코가 사라졌던 1년'이 현재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묘사되지 않는 점이다. 진실을 확인한 이즈미의 심리 묘사 역시 거의 없다. 직전까지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암시를 주던 사건이 생각만큼의 무게를 갖지 않아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는 전과 같지 않다는 것, 함께 나누던 추억이 내게만 남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특히 언제까지나 나를 돌봐줄 것 같던 부모를 내가 돌봐야 한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함께 나눈 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남아 있는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가 함께였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한다. 그 사실을 품에 안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 걸어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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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슬픔을 안고
문철승 지음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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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추워진 겨울날, 따뜻한 시 한 권이 도착했다. 어두운 감정보다는 밝은 감정을 노래하며 따스한 부분을 보여주려는 시이다. 볕 좋은 날 차 한 잔 마시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문철승 시인은 초등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며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기쁨이 슬픔을 안고』는 한 행의 길이가 짧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해하기 쉬운 시어를 사용하여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을 다루고 있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뒷맛이 깔끔하다.

시를 읽으면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삶이 새롭게 느껴지게 된다. 자연과 사랑에 대해 쓴 시를 읽으며 풀숲을 맨발로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락하신다면 / 내 마음 빈자리 앉아서 / 두고두고 멈칫거려도 돼요'라는 시구와 같이 나도 다른 사람에게 양지 아래 의자를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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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네이트 (노블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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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지금까지 고마웠다는 말을 못하겠어. 말하고 싶지 않아.

앞으로도 말하고 싶어.

미우라한테 고맙다고 계속 말하고 싶어. 지금은 그런 마음이야.

작품에 대해

고등학생만 사용 가능한 SNS 앱 '얼터네이트'.

나의 모든 정보를 프로필에 게시할 수 있고, 관심사뿐만 아니라 유전자 정보까지 등록해 나와 딱 맞는 파트너를 찾을 수도 있는 세상에서 우리의 관계는 어떤 모습을 할까.

가토 시게아키 작가의 『얼터네이트』는 '얼터네이트'라는 가상의 앱을 소재로 청소년들의 관계에 대해 풀어낸 작품이다.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각 장마다 주인공이 바뀌며 각자의 에피소드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주인공은 총 세 명이다. 니미 이루루, 반 나즈, 다라오카 나오시가 그들이다. 이루루는 얼터네이트에서 악플에 시달린 경험이 있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가족관계에 문제를 느끼는 반 나즈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관계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얼터네이트를 신봉한다. 다라오카 나오시는 학교 밖 청소년으로 학생만 이용할 수 있는 얼터네이트를 사용할 수 없어 옛 친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주요 인물 셋 중 둘이 얼터네이트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작중에서 얼터네이트가 등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제목으로 사용될 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지 않아 조금 당황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대부분의 사람이 SNS로 관계를 맺는 세상에서 관계를 맺는 과정'을 그리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터네이트'는 '교대로 일어나다, 서로 엇갈리다'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터네이트'란 단순히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관계 자체를 함의한 단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 주인공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 요리 동아리에 속해 있는 이루루는 작년 요리 프로그램인 '원포션'에서 혹평을 받고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루루는 올해 원포션 우승을 목표로 준비하는데, 요리사인 아버지와 후배 간의 관계가 쉽지 않다.

나즈의 어머니는 재혼을 했는데, 재혼한 남자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즈는 얼터네이트라면 분명 딱 맞는 사람을 만나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데, 처음으로 매칭률 9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사람, 생각만큼 운명적인 것 같지는 않다.

다라오카 나오시는 드러머이다. 가족들로부터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얼터네이트를 쓸 수 없어 함께 밴드를 하던 기타리스트 친구를 찾기도 어렵다. 어떻게든 간신히 친구를 찾아가서 만났는데, 친구는 더 이상 기타를 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장이 바뀔 때마다 이 세 인물이 번갈아 가며 주인공이 된다. 세 인물 간에 접점이 거의 없고 장이 워낙 자주 바뀌기 때문에 번잡하다는 느낌도 분명 있었지만, 각각의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그들이 고민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특히 이루루의 원포션 대회 장면은 잔뜩 몰입해서 읽었다. 결말부의 '축제' 장에서는 처음으로 한 챕터 내에서 세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데, 각 인물의 이야기가 절정에 달하며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읽으면서 나오시의 드럼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은 사람과 상황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찬 청소년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힘겹게 고민하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고, 중요한 순간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어떻게든 나아가려 분투한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을 맺는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불안정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마냥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때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런 청소년기의 미묘함과 매력을 잘 표현한 책이었다. 어떤 일은 영영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도저히 추억이라는 고운 이름을 붙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현재에 오기까지 힘껏 분투한 사람은, 사람의 삶만큼은 분명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싶다.

 

책에 대해



이 책은 노블판과 일반판,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노블판 쪽이 판형이 좀더 작은 대신 표지가 더 화려하고 화사한 느낌이다. 얼터네이트를 뜻하는 'a'라는 홀로그램 문양도 들어가 있다.

주인공이 셋이나 되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거의 엮이지 않고, 각 인물들의 인간관계가 독립적이기 때문에 매우 많은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 외국 이름이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더욱 헷갈리기 쉬운데, 본문 앞에 등장인물 프로필을 정리해줘서 독서하기 편했다. 중간에 이 인물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면 종종 앞장으로 돌아갔다.

상술했듯 각 장마다 주인공이 바뀌는데, 장이 바뀔 때마다 속표지에 해당 장의 주인공 일러스트를 넣어 준 것도 친절했다. 편집에 공을 많이 들인 태가 났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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