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와의 긴긴 여행이 곧 끝난다. 유리코가 연주하는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바다로 나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제 작별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부모. 더없이 슬프지만 누군가는 마주해야 할, 마주하고 있을, 마주할지도 모를 순간이다. 이 이야기는 평생 1년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살아온 어머니와 아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싱글맘인 '유리코'는 외아들 '이즈미'는 평범한 모자이다. 이즈미가 어린 시절, 유리코가 1년 간 말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건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던 어느 날, 유리코가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추억의 마지막에 와서야 유리코와 이즈미는 1년의 틈을 뛰어넘어 서로의 진실을 기억하려 한다.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고백,> <늑대아이>, <너의 이름은.> 등의 영화 제작자이다. 저서로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억남』 등이 있으며 소설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백화』는 작가의 외할머니에게 치매가 발병한 것을 계기로 쓰였다고 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된 주인공이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판타지적 소재를 빌려 무겁지 않게 풀어낸 글이었다. 이번 작품인 『백화』 역시 그와 같은 결을 갖고 있되 문체와 문학성은 그보다 더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작은 다소 유치한 초반부가 장벽이 되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가벼움을 덜어내고 진지한 시선으로 인물에게 접근했다.

가장 큰 장점은 너무 무겁지 않다는 것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전개가 빠르며, 가독성이 좋아 무거운 주제임에도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다. 그럼에도 적당한 무게감과 감동을 분명히 잡고 있어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러한 무게감의 중심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다. 주요 인물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변화 과정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맞물려서 전개되며, 마지막 반전 또한 감동을 선사하는 등 전개 또한 준수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중 계속해서 강조되는 '유리코가 사라졌던 1년'이 현재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묘사되지 않는 점이다. 진실을 확인한 이즈미의 심리 묘사 역시 거의 없다. 직전까지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암시를 주던 사건이 생각만큼의 무게를 갖지 않아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는 전과 같지 않다는 것, 함께 나누던 추억이 내게만 남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특히 언제까지나 나를 돌봐줄 것 같던 부모를 내가 돌봐야 한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함께 나눈 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남아 있는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가 함께였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한다. 그 사실을 품에 안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 걸어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