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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평점 :
“나는 과연 단 한 번이라도,아무 의심이나 두려움 없이 내 눈앞의 행복을 만끽해본 적이 있었나? 삶의 파도가 어차피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그리고 그 반복을 나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다면, 그 위에서 꼿꼿이 균형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가라앉으면 가라앉는 대로,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온몸의 힘을 모조리 뺀 채 물의 흐름에 나를 그대로 맡기는 일을, 나는 왜 그리도 두려워했을까?”
생애 처음 접한 생리 에세이, 『네, 저 생리하는데요?』이다.
책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정말 독특하다고 느꼈다. 생리는 대부분의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인데도 생리를 주 소재로 한 에세이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네, 저 생리하는데요?』라는 제목도 언제나 생리 사실을 숨겨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 같아 신선했다.
이 대담한 책을 낸 저자는 누구일까. 책날개에 쓰인 저자의 이력은 간단했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수료, 팟캐스트에서 <투쟁하는 암탉>을 진행 중이다. 사진도 실려 있지 않았고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직업이 무엇인지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일부러 적지 않은 걸까. 여백에서 왠지 이제 막 사회로 내딛는 사람 특유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아마 생리에 대해서는 많은 여성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양이 많은 편이라 대형을 착용해도 자세를 잘못 잡으면 모양이 흐트러져 혈이 밖으로 새기 일쑤고, 매번 살에 밀착되어 있으니 화장실에 가서 속옷을 벗을 때마다 생리대 뒷부분이 뜯어진다. 무엇보다 생리대에 쓸릴 때의 그 쓰라림. 아마 많은 여성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했을 터이다.
“나는 초경이 여자아이에게 부담과 억압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초경이 그 아이가 체험하는 여성혐오의 첫 시작이 아니었으면 한다. 처음에만 축하받고 그 이후로는 입 싹 닫게 되는 경험이 않았으면 한다. 기쁘고 즐겁고 멋진 기억이길 바란다. 모두에게 축하받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이길 바란다. 아이의 당혹스러움과 불안을 따뜻하게 다독여줄 어른이 주위에 있길 바란다.”
이 책은 생리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사회에 퍼져 있는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동의하는 부분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공감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여러 여성의 생리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도, 작가 자신의 경험을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도 좋았다. 이렇게 공감되는 이야기를 활자화된 책으로 접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제법 운이 좋은 편이라 생리 전 증후군도 없고, 생리통도 심하지 않은 편인데다 첫날만 아프고 만다. 간혹 일어나 있기 힘들 정도로 아플 때도 있지만 약도 잘 듣는 편이라 생리통 약 한 알만 먹으면 안심하고 그날 하루를 넘길 수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무시무시한 생리통을 견디는 사람도 있다. 동생의 친구는 생리통 때문에 걷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작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생리 전 증후군도 심하고, 생리통도 심해서 몸을 조이는 옷이라도 입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을 꺼내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동안 이 아픔은 너무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다.
“생리 경험은 나를 배울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생리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무시한 채 억지로 긍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울하고 고통스럽고 귀찮고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고 삭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며, 나를 더욱더 인간답게 만들어준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생리를 긍정하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나에게 생리는 언제나 '귀찮은 것', '짜증나는 것', '임신할 생각도 없는데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생리가 자신의 몸이 규칙적으로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생리를, 생리하는 나를 사랑해야만 진정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 누구도 이렇게 말해 준 사람은 없었으니까. 자연스러운 일이고, 건강하다는 증거인데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1학년 때 남녀 분반 제도가 있었다. 생리 얘기를 할 때면 늘 속닥거리던 여학생들이 교실 앞으로 나가서 생리대 있는 사람 있느냐고 묻던 일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나도 아직은 생리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조심스럽고, 야외에서 생리대를 꺼낼 때면 주위를 한번 살피곤 한다. 어렵고 긴 과정이겠지만, 이런 풍경이 언젠가는 바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