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씽 인 더 워터 아르테 오리지널 23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무덤을 파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더는 궁금해할 필요 없다. 엄청나게 오래 걸리니까. 얼마를 예측하든, 그 시간의 두 배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흙과 땀 냄새가 나는 숲 한가운데에 떨어진다.

주인공은 무덤을 파고 있다. 그것도 남편의 무덤을 말이다. 자신의 남편,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신랑을 땅에 묻고 있다. 에린은 자기 손으로 남편을 땅에 묻으면서도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그의 온기가 그립다고 독백한다.

어떻게 된 걸까?


아내 에린은 다큐맨터리 감독, 남편 마크는 금융업계 종사자이다. 둘은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로 결혼식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결혼식 계획은 마크가 직장을 잃으며 크게 차질을 빚고, 금전 문제로 둘 사이에는 마찰이 일게 된다. 하지만 에린은 그를 사랑한다며 자신을 다독이고, 둘은 신혼여행지인 보라보라 섬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길 기대한다.

그렇게 도착한 보라보라 섬에서의 신혼여행은 더없이 완벽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물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지만 않았어도.

그 '무언가'를 가져오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지금 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위험한 것에. 아직은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리고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마음속의 낙하 문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삐걱거리는 것을 느낀다."


저자 캐서린 스테드먼은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티나' 역을 맡았던 배우다. 이 책은 제법 완성도가 높은데, 저자가 이전까지 글이 본업이 아니었다는 점, 심지어 본작이 데뷔작임을 감안했을 때 꽤 놀랍다.


이 작품은 가져와서는 안 될 '무언가'를 가져온 에린과 마크가 그것을 처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부부의 철저한 대응과 준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발생하는 미심쩍은 사건과 불안해하는 에린의 심리 묘사가 일품이다.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만큼 세부 묘사가 세세하고 철저하여 매 장면을 생생히 상상할 수 있고, 에린의 행동에도 설득력이 생긴다.

무엇보다 이미 마크가 죽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고 시작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계속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에린이 마크를 죽이는 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죽인 걸까?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


1인칭 화자가 에린이기도 하고, 에린의 심리묘사가 제법 뛰어난 덕에 나는 책을 읽으며 에린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제3자의 입장이기에 에린이 겪는 마크를 나도 겪을 수 있었는데, 제2의 에린이자 독자인 내 눈에 미친 마크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었다.

내 눈에는 마크가 계속해서 에린을 편집증 환자로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라고 할까. 에린은 충분히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인데도 에린이 독단적으로 하는 일을 마음에 안 들어하고, 위로를 가장해 에린의 불안감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문제는 그런 마크에게 에린이 계속해서 의지하고 매달리며 조언을 구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에린이 행복해지고 평안해지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자업자득이라고 할지라도.


"단언컨대, 이 이야기는 결코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아니다.하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다루어야만 하는 이야기고, 내가 선택한 서사다. 그리고 경찰이 믿을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덤을 파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더는 궁금해할 필요 없다. 엄청나게 오래 걸리니까. 얼마를 예측하든, 그 시간의 두 배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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