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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평점 :
“이제 앞으로 혼자 살게 되겠구나.
어떤 이변이 없는 한 혼자.
내가 언제까지 살까.
하여간 죽는 그 순간까지 혼자 살게 될 거야.”
속절없이 흘러가는 역사와 시간 속에서 서글프게, 애처롭게, 처연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노래요 영화이다.
저자 공선옥은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중견 작가로, 『나는 죽지 않겠다』를 포함해 10권의 책을 출간했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을 읽은 후 공선옥 저자의 인터뷰를 접했었다. 공 작가의 인터뷰 중 이런 말이 있다.
“눈물이 흔해지는 사회였음 좋겠어요.
힘없는 사람이 더이상 뺏기지 않는 세상은
그렇게 울어주는 사람들이 만들어줘야 돼요.
-공선옥 인터뷰 中”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울면 카메라는 그것을 냅다 클로즈업하곤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우는 얼굴이 넓은 화면 전체를 채운다. 누군가 공개적으로 운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희귀한' 광경이며, 일종의 '볼거리'라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그런 카메라가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우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책은 그런 사람들 곁에서 함께 우는 책이다.
“나는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말들은 내 속에서 통통하게 살이 찔 것이고 배가 고프면 내 말들을 먹을 것이다.”
책에는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행사작가---7
순수한 사람---21
오후 다섯시의 흰 달---45
은주의 영화---73
염소 가족---137
설운 사나이---165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187
읍내의 개---209
우리가 살아온, 또는 살아갈 시간을 함께 살아왔지만 그 어떤 기록에도 남지 못하고, 시대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공선옥 작가의 특기(라고 나는 생각하는)인 시골의 예스러운 분위기와 사투리가 주제인 작품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내가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총 세 작품이다. 「순수한 사람」, 「오후 다섯시의 흰 달」, 「설운 사나이」.
「순수한 사람」은 나로 하여금 '순수한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사회가 말하는 '순수한 사람'은 돈에 연연하지 않고, 남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된 걸까.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을 원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원하는 시대가 진작 다 없애 버린 것이 아니었나.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은 바라더라도 결국 갖지 못한 정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토록 바라며 준비했는데도 결국 만져보지도 못한 따뜻한 것이 생각나 마음 한구석이 물에 젖어들듯 먹먹해졌다.
「설운 사나이」는 아픈 역사 속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 작품이다.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에서도 다뤄진 쌍용자동차 사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공장 속에서 힘겹게 버티던 그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이제는 전부 크게 변해 버렸을 평범한 삶에 대해 작게 애도했다.
아마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서 작게 노래를 읊조리고 있을 소설, 『은주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