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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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존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당신 역시 쉬이 눈 감지 말기를.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작품에 대해

요상하고 기묘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의 키워드는 ‘사랑’과 ‘관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소설마다 많은 관계가 등장하며, 그 관계는 대부분은 연인이고, 퀴어이기도 하다. 지극히 친숙한 관계에 생소한 과학 기술을 접목한,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SF 소설이었다.

첫 작품을 읽고 조금은 당황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기억하기 쉽지 않았고, 스토리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호한 인상은 두 번째 작품까지도 지속되었다. 세 번째 작품, 표제작인 「고스트 듀엣」까지 읽고 나서야 작가가 어디에 집중하고 싶었는지 이해했다.

이 책은 ‘나’와 ‘너’와 ‘우리’를 노래하고 있었다.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고, 그 둘이 만난 자리에서 태어나고 사망하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것 같았다. 세상이 우리만 두고 발전하여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생자와 망자의 경계가 무너져도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평범하게 우리일 것이고, ‘우리’가 헤어져 다시 ‘너’와 ‘나’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이었다. 그렇게 이 독특한 소설에 대한 감상에 마침표를 찍어도 좋으리라.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사랑하도록 하자. 어제도 그랬듯 평범하고 초라하고 소중하게.


사족을 조금만 덧붙여보자. 관계 속의 만남과 이별, 사랑과 그리움을 그린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유미의 기분」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스쿨 미투’를 다룬 작품이었다.

나는 이 글이 사과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자신이 되는 사람을 보여줘서 좋았다. ‘사과할 자격’을 가진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격과 기회를 받아들이고, ‘사과할 기회’를 올바르게 사용하려 노력하는 인물을 만나 조금은 기뻤다. 마땅히 우선되어야 했지만 지금껏 계속해서 짓밟혀온 사람의 기분을 있어야 할 자리에 놓아주기 위해, 해야 할 말을 하고 물러설 줄 아는 주인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책에 대해

처음 책을 받아보았을 때 표지 디자인이 다소 당혹스러웠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법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 사람 사이에 유령이 끼어들어 아무렇지 않게 술 한 잔 하는, 이 통통 튀는 소설에 잘 맞는 표지였다. 유령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면지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수록작 순서는 조금 아쉬웠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표제작을 첫 번째로 두고 「수월」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있나」를 뒤로 미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나는 소설집을 읽을 때 첫 소설로 작품의 인상을 결정하곤 하는데, 「수월」에는 짧은 분량 속에 등장인물도 많고 이야기 흐름을 파악하기 조금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그것이 소설의 인상이 될 뻔했다. 표제작인 「고스트 듀엣」 이후부터 소설집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조해진 소설가의 추천사에 뒤표지에는 유령들이 다같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 있는 소설. 이 책을 여러 사람이 읽고 감상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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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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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나에게는 이 책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졌다.

『베테랑의 몸』은 기록노동자 희정 작가와 최형락 사진작가가 여러 분야에서 노동해온 12인의 ‘베테랑’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동시에, 한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베테랑’이 되기까지 쌓아 온 시간, 삶 그 자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균형 잡는 몸’, ‘관계 맺는 몸’, ‘말하는 몸’이 각 장의 제목이다. 인터뷰에 목소리를 내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은 세공사, 로프공, 마필관리사, 안마사, 조산사 등 다양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오래 일한 사람들에게서는 배울 점이 있다. 한 자리를 오래 지켰다는 것은 모든 일에 당연히 따라오는 고난과 좌절을 오래 이겨내었다는 뜻이고, 일을 하는 데 자신만의 기술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에 선뜻 목소리를 빌려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 왔다.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힘의 균형을 찾고, 수십 미터 건물에 매달려 외벽을 청소한다. 수천 명의 식사를 책임지기도 하고 새 생명의 탄생을 돕기 위해 휴일도 새벽도 없이 달려가기도 한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환한 조명이 켜진 무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박수를 보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꾸리기 위해 성실하게 일해 온 시간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그 자체로 귀중하고 가치 있었다.

이쯤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자 삶인데, 왜 ‘베테랑의 시간’이나 ‘베테랑의 삶’이 아니라 ‘베테랑의 몸’이 제목일까? 왜 ‘몸’을 기준으로 각 장을 나누었을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라는 문구대로,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해 오다 보면 몸이 그에 맞게 변화하기 마련이다. 등장하는 ‘베테랑’들 역시 그들이 해 오던 일이 어떠한 형태로 몸에 남게 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질병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났다. 척추가 휘어 걸음걸이가 망가지고, 손이 퉁퉁 붓고, 약품을 오랫동안 밟고 있으니 피부가 벗겨진다. 저자는 그것을 ‘영광의 상처’라며 찬사하는 대신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 현장의 가혹함을 지적한다.

이는 책을 더욱 신뢰하게 해 주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인터뷰집이라 하나 그것을 받아적고 전달하는 이의 목소리는 필연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법. 인터뷰이를 대하는 태도와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에서, ‘들어가며’, ‘인터뷰 후기’에서 드러난 저자 희정의 목소리에서, 그가 자신만의 신념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람과 글을 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마주선 사람과 그의 육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전해졌다. 그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더욱 귀중해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일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너무 보이지 않아서 때로 저절로 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제 그 노동자들의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베테랑의몸 #희정 #최형락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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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비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4
박문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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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마저 하나의 ‘쇼‘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길을 찾을까. 더 나빠지는 것 같아도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찾으려는 분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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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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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긴긴 여행이 곧 끝난다. 유리코가 연주하는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바다로 나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제 작별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부모. 더없이 슬프지만 누군가는 마주해야 할, 마주하고 있을, 마주할지도 모를 순간이다. 이 이야기는 평생 1년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살아온 어머니와 아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싱글맘인 '유리코'는 외아들 '이즈미'는 평범한 모자이다. 이즈미가 어린 시절, 유리코가 1년 간 말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건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던 어느 날, 유리코가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추억의 마지막에 와서야 유리코와 이즈미는 1년의 틈을 뛰어넘어 서로의 진실을 기억하려 한다.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고백,> <늑대아이>, <너의 이름은.> 등의 영화 제작자이다. 저서로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억남』 등이 있으며 소설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백화』는 작가의 외할머니에게 치매가 발병한 것을 계기로 쓰였다고 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된 주인공이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판타지적 소재를 빌려 무겁지 않게 풀어낸 글이었다. 이번 작품인 『백화』 역시 그와 같은 결을 갖고 있되 문체와 문학성은 그보다 더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작은 다소 유치한 초반부가 장벽이 되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가벼움을 덜어내고 진지한 시선으로 인물에게 접근했다.

가장 큰 장점은 너무 무겁지 않다는 것이다. 문체가 간결하고 전개가 빠르며, 가독성이 좋아 무거운 주제임에도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다. 그럼에도 적당한 무게감과 감동을 분명히 잡고 있어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러한 무게감의 중심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다. 주요 인물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변화 과정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맞물려서 전개되며, 마지막 반전 또한 감동을 선사하는 등 전개 또한 준수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중 계속해서 강조되는 '유리코가 사라졌던 1년'이 현재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묘사되지 않는 점이다. 진실을 확인한 이즈미의 심리 묘사 역시 거의 없다. 직전까지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암시를 주던 사건이 생각만큼의 무게를 갖지 않아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는 전과 같지 않다는 것, 함께 나누던 추억이 내게만 남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특히 언제까지나 나를 돌봐줄 것 같던 부모를 내가 돌봐야 한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함께 나눈 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남아 있는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가 함께였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한다. 그 사실을 품에 안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 걸어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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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슬픔을 안고
문철승 지음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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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추워진 겨울날, 따뜻한 시 한 권이 도착했다. 어두운 감정보다는 밝은 감정을 노래하며 따스한 부분을 보여주려는 시이다. 볕 좋은 날 차 한 잔 마시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문철승 시인은 초등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며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기쁨이 슬픔을 안고』는 한 행의 길이가 짧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해하기 쉬운 시어를 사용하여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감정을 다루고 있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뒷맛이 깔끔하다.

시를 읽으면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삶이 새롭게 느껴지게 된다. 자연과 사랑에 대해 쓴 시를 읽으며 풀숲을 맨발로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락하신다면 / 내 마음 빈자리 앉아서 / 두고두고 멈칫거려도 돼요'라는 시구와 같이 나도 다른 사람에게 양지 아래 의자를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본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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