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비즈니스 트렌드 2026 - 반도체·AI·금융·제조·인재까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중국의 비즈니스 구조와 전략
이선민 외 지음 / 잇담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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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비즈니스 트렌드 2026』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솔직히 말해 두려움이었다. 한때 중국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던 단어들—박리다매, 저가 공세, 짝퉁, Made in China, 저임금 노동력—이 이제는 거의 과거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자전거 물결이 가득하던 거리, 인민복과 스모그, 만만디라는 이미지, 공안의 통제와 대륙의 황당한 스케일 같은 기억들 위에, 지금의 중국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겹쳐져 있다.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기업들이 즐비하고, 인력과 기술의 밀도는 상상 이상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개인으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해질 만큼 그냥 무섭다는 감정이 먼저 든다.


이 책은 그런 감정을 단순한 막연함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핵심은 중국을 더 이상 ‘규모’로 읽지 말고 ‘구조’로 읽으라는 제안이다. 과거의 중국이 저가 생산기지였다면, 2026년의 중국은 반도체·AI·로보틱스 같은 첨단 산업에서 규칙을 설계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 제조 2025’ 이후 10년의 성과가 집대성되는 시점에서, 중국은 외형적 성장 단계를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거의 완성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반도체와 AI는 이 전환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중국은 기술 자립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밀어붙였다. 특히 딥시크(DeepSeek) 사례에서 보이듯, 하드웨어의 제약을 소프트웨어 효율로 극복하려는 방식은 ‘중국식 혁신’이 더 이상 단순 추격이 아님을 보여준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생태계를 설계하고, 작동하게 만드는 힘이 무섭게 느껴진다.


제조업의 진화 과정도 인상적이다. 모바일에서 시작해 전기차를 거쳐 이제는 로보택시, 드론,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산업 확장이 아니라 제조 개념 자체의 변화다. 중국은 ‘전동화’를 넘어 ‘스마트화’ 단계로 빠르게 이동하며, 강력한 공급망과 생태계를 무기로 제조 초격차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전의 ‘대륙의 기상’이 황당함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압도적인 실행력과 속도의 다른 이름처럼 보인다.


금융 영역에서는 디지털 위안화와 알고리즘 거래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실험한다. 화폐 패권을 노리는 시도와 함께, 공공자본이 주도하는 중국식 알고리즘 자본주의 모델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효율과 통제, 개방과 규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이중 전략은 매력과 불안을 동시에 안긴다. 단순히 금융 혁신을 넘어, 시스템 전체를 다시 짜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소비와 콘텐츠 영역 역시 더 이상 부차적이지 않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럭셔리 시장은 체험형 플래그십과 기술 기반 개인화로 진화하고 있고, 전통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애니메이션과 게임 IP는 내수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간다. ‘짝퉁’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던 중국의 문화 산업은, 이제 원천 IP를 생산하고 확장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인재 전략 파트는 이 모든 변화의 바닥을 보여준다. 한때 996으로 상징되던 치열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한 조직 운영과 글로벌 인재 유치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인재가 머물고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형 생태계를 만들려는 시도다. 기술 전쟁의 승부처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중국은 너무나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중국은 더 이상 ‘만만디’도, ‘저가 공세의 나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따라가야 할 모델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차이나 비즈니스 트렌드 2026』은 중국을 두려움의 대상이나 막연한 경쟁자가 아니라, 철저히 분석하고 냉정하게 활용해야 할 전략적 변수로 바라보게 만든다.(물론 두렵다) 두려움은 남지만, 그 두려움을 구조와 언어로 바꿔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지금 이 시점에 꽤 필요한 독서였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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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다시 만난 음악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시즌 2
조윤범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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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다시 만난 음악』은 학창 시절 시험과 암기 속에서 멀어졌던 ‘음악 교과서’를 어른의 감각으로 다시 펼치게 만드는 책이다. EBS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시즌 2 ‘음악’ 강의를 바탕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클래식 해설가 조윤범은 클래식을 “어렵게 배워야 하는 지식”이 아니라 “다시 만나며 좋아하게 되는 감정의 언어”로 풀어낸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미 삶 속에서 수없이 클래식을 들어왔음을 먼저 인정하게 하고, 그 익숙함을 출발점으로 바로크–고전주의–낭만주의–현대로 이어지는 음악사의 흐름을 이야기처럼 연결한다. 시대의 변화는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진화로 설명되며, 바흐의 질서, 베토벤의 의지, 낭만주의의 고백 같은 결들이 음악을 다시 ‘사람의 목소리’로 되돌려 놓는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개인적으로 와 닿았던 지점은, 딸이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하며 연주곡명이나 작곡가, 연주자,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서도 늘 생소함과 어색함 때문에 같은 눈높이에서 공감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음악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대화의 문턱 앞에서 머뭇거렸던 시간이 길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음악을 ‘설명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함께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해도가 분명히 높아졌다는 걸 느꼈다. 덕분에 딸의 연주와 음악 이야기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교양서를 넘어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다.


책의 큰 장점은 오케스트라·실내악·협주곡·오페라라는 장르의 구조를 ‘귀로 이해’하도록 안내한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악기들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숨을 맞추는 공동체의 축소판처럼 다가오고, 실내악은 소수의 연주자들이 나누는 친밀한 대화처럼 체감된다. 협주곡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긴장과 화해를 통해 삶의 균형을 떠올리게 하며, 오페라는 사랑·질투·배신·용서 같은 인간 감정의 전 스펙트럼을 무대 위에서 한꺼번에 터뜨리는 드라마로 클래식의 심장을 보여준다. 오페레타와 베리스모, 후기 낭만 오페라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클래식이 결코 박물관 속 음악이 아니라 웃음과 풍자, 현실의 숨결까지 품어온 장르였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음악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책 속에서 언급되는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음악이야말로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라는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좋은 직장과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교육을 받고 경쟁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음악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음악은 성취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메시지가 이 책 전반에 흐른다.


공연장과 관객, 역사 속 음악, 그리고 AI와 음악을 다루는 후반부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유효하다. 빈과 밀라노, 파리의 공연장은 수백 년의 박수와 숨결이 쌓인 ‘음악의 집’으로 그려지고, 전쟁과 정치, 검열 속에서도 음악이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왔다는 사실은 예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AI가 작곡하는 시대에 던지는 질문 역시 분명하다. 기술은 음악을 흉내 낼 수 있어도, 고통과 사랑을 살아낼 수는 없다는 것. 결국 음악을 만들고 감동하는 주체는 인간이며, 이 책은 클래식을 시험 과목이 아닌 시간 너머의 감정과 만나는 경험으로 되돌려 놓는다. 클래식 76곡을 한 곡씩 만나며 해설을 곁들이다 보면, 클래식은 지식이 아니라 취향이 되고, 어느 순간 삶의 결을 조용히 풍요롭게 만드는 동반자가 된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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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구 이야기 - 성과를 이끄는 답은 어우러짐에 있다
김동환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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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오늘날, 우리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추진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는 규격화된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소비자의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진 현재는 단순히 선택지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저자 김동환은 이러한 정체기를 돌파할 열쇠로 '논리(Logic)'와 '직관(Intuition)'이라는 두 가지 도구의 어우러짐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흔히 논리와 직관을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경영학적 사고로 대표되는 '논리'는 수치와 데이터, 증명 가능한 근거를 바탕으로 세상을 미시적이고 정교하게 분석하는 도구이며, 물리학이나 예술적 감각에 가까운 '직관'은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본질을 꿰뚫는 거시적인 도구입니다. 저자는 양계농장에서 달걀 생산량을 늘리려는 두 일꾼의 우화를 통해, 사료의 양을 조절하는 논리적 접근과 음악을 활용해 환경을 조성하는 직관적 접근이 어떻게 충돌하고, 결국 조화를 이루어 성과를 만들어내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이러한 어우러짐의 원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 시장이 정체되면 기업들은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고객 데이터를 쪼개고 제품군을 무한히 늘리는 '세분화'에 집중하지만, 이는 종종 비용만 늘리는 논리의 함정이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고객이 진짜 원하는 단 하나, 즉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직관입니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으로 빈틈을 찾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본질적 매력이라는 직관적 한 방이 더해질 때 비로소 추진력이 생깁니다. 조직 운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이 둔화할수록 리스크 관리를 위해 매뉴얼과 보고 체계라는 논리에 집착하기 쉽지만, 정체기의 예기치 못한 변수 앞에서는 현장의 미세한 변화를 읽고 빠르게 방향을 트는 리더의 직관적 감각이 필수적입니다. 시스템으로 기본을 지키되 현장의 유연함을 허용할 때 조직은 다시 항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몸담고 있는 부동산 개발 분야는 이 두 도구의 조화가 가장 극명하게 요구되는 지점입니다. 토지비, 공사비, 금리를 계산하는 '엑셀의 세계'인 논리는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생존의 기술입니다. 그러나 황무지 같은 땅에서 미래의 삶을 그려내는 상상력, 즉 직관적 선구안이 없다면 그 사업은 숫자에만 갇히게 됩니다. 치밀한 수지 분석과 시공 계획이라는 논리의 뼈대 위에, 사람의 욕망을 읽어내는 미래 가치라는 직관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야말로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결국 이 책은 경제와 경영의 언어를 빌려오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사고 구조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도구가 우월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각 도구의 특성을 정확히 관찰하고 상황에 맞게 리듬을 조절하는 기술입니다. 숏폼 영상과 빠른 정보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효율과 속도에 매몰되어 잃어버렸던 감각의 자리를 되찾아주며, 복잡한 문제 앞에서 조바심을 내기보다 먼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두 도구의 균형을 맞출 것을 권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추진력은 논리라는 튼튼한 배를 만들고, 직관이라는 바람을 탈 때 생겨납니다. 경제 정체기에는 배가 난파되지 않게 관리하는 논리도 중요하지만, 멈춰버린 배를 다시 움직이게 할 바람을 찾아내는 직관은 더욱 귀한 자원이 됩니다. 논리의 시대에 직관의 자리를 마련하고, 이 두 도구가 조화롭게 맞물릴 때 우리는 비로소 정체된 항해를 끝내고 새로운 대양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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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여행 - 나이 듦,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이여진 지음, 서진 엮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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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여행에 대하여


『칠십 여행』은 여행 에세이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실은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책이었다. 33년간 직장인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역할을 다해온 한 여성이 은퇴 이후 길 위에 서며 써 내려간 기록은 ‘어디를 갔는가’보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으로 살아왔는가’**를 더 오래 남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이 돌아온다. 나도 요즘은 ‘여행’이든 ‘일’이든 결국 내가 누구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젊은 시절의 여행이 풍경을 ‘채우는 일’이었다면, 칠십의 여행은 삶을 ‘비워내는 일’에 가깝다. 더 많이 보고 더 멀리 가는 대신, 천천히 머물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발사업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변수들이 늘 도사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멀리 달리는 것보다 불필요한 걸 덜어내고 핵심을 붙잡는 일이 더 중요해질 때가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비움’은 단순히 내려놓음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는 감각에 가깝다.


책은 ‘풍경–사람–사물–공간’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인생으로 돌아온다. 노을을 보며 젊은 날을 떠올리고, 오래된 유적 앞에서 문명보다 사람의 삶을 먼저 바라보며, 부엌과 온천 같은 공간에서 여성의 자리와 자유를 성찰한다. 그 과정이 낯선 풍경을 소비하는 여행기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천천히 되짚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쓰려 했는데 결국 나를 쓰고 있었다”는 고백은, 사실 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의 여행을 읽고 있는데, 자꾸 내 삶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책이 나이 듦을 상실이나 쇠퇴의 언어로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 듦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존재’로 돌아오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젊을 때는 상처를 먼저 보지만 나이가 들면 빛을 먼저 보게 된다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최근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부족한 것, 잘못된 것, 위험한 것’이 먼저 보였다면, 요즘은 그 와중에도 지켜야 할 것(가족, 건강, 하루의 평온)이 더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세상이 바뀐 게 아니라, 내 눈이 조금 달라진 걸지도 모르겠다.


절제된 문체와 느린 호흡, 그리고 사진들은 독서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춘다. 쉽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난해해서가 아니라, 생각 없이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지금의 나는, 과연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불편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정돈해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바쁨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칠십 여행』은 특정 연령대를 위한 책이라기보다, 언젠가 맞이할 시간을 미리 걸어보게 하는 책이다. 나이 듦을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내 삶의 결을 다시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는 인생의 여행기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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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주루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니들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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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직 나는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죽음을 정면으로 논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부감이었다. 당장 눈앞에 해결해야 할 프로젝트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나에게 죽음은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깊은 파동을 일으킨 지점은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을 통과하며 비춰진 삶의 태도, 특히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불러온 긴 여운이었다. 주루이 교수가 말하는 평범함은 체념이나 안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또렷해진 삶의 본질이었다. 그가 물 한 모금과 죽 한 사발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거창한 성취에 매몰되어 정작 이미 주어진 하루의 무게를 잊고 살던 나를 향한 준엄한 요청처럼 들렸다.


이 대목에서 일전에 읽었던 『나 죽으러 갑니다』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렇지만 삶은 불러야만 온다.” 지극히 평범한 생리적 현상 하나하나가 투쟁이 되어버린 병동의 기록들은,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불평을 입에 달고 살던 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비춰주었다. 숨 쉬고, 먹고, 잠드는 일조차 선택이 아닌 싸움이 된 사람들 앞에서 나는 무엇이 그리 불만이었을까. 일이 힘들다, 미래가 불안하다는 말들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그 독백은 가족에게까지 흘러가 우리 모두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이 책은 내게 위로라기보다 뼈아픈 반성이자 성찰이었다.


저자는 ‘죽어가다’와 ‘죽음’을 명확히 구분한다. 이 서늘한 구분은 살아있으면서도 이미 삶을 소모해버리는 태도에 대한 경고로 다가왔다. 부동산 개발이라는 일은 본질적으로 예기치 못한 리스크의 연속이다.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가족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은 어느새 ‘투쟁’의 형태로 굳어 나를 조여 왔다. “이 고비만 넘기면”이라며 오늘을 유예하던 나에게,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비로소 실재적인 구원이 되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끌어안고 있는 이 수많은 리스크와 선택의 무게는 먼지처럼 작다. 그렇다고 내 삶이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작은 존재가 느끼는 두려움과 책임, 선택의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사실을 세이건의 시선은 일깨운다. 이 관점은 내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게 해주었다. 모든 선택이 반드시 성공으로 귀결되지 않아도 괜찮으며, 모든 투쟁이 승리로 끝나지 않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안도감. 나는 비로소 조금 더 담담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결국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은 나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이미 충분히 살아 있는 오늘을 불평으로 낭비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평범한 하루를 지켜내는 일, 건강한 몸으로 일하고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이 시간이야말로 죽음을 통과한 철학자가 남긴 가장 현실적인 가르침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더 나은 인생을 살겠다는 거창한 결심보다, 오늘 하루를 조금 덜 불평하며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진짜 ‘수업’이었을지 모른다.


사실 이 책은 목차만 훑어봐도 예사롭지 않은 울림이 전해진다.



※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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