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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성의 포용 - 정치이론연구 ㅣ 나남신서 542
황태연 / 나남출판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타자성에 대한 무수한 논의가 유행이다. 타자성은 유행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한 상황인 듯 보인다. 개나 소나 타자에 대한 수사를 잊어먹는 바보들은 없는 듯하다. 그 유행을 프랑스제 취임새에서 구했듯 일본의 가라타니에서 구했든 아니면 독일제에서 구했든 간에 타자성은 탈근대 논의의 흥기와 함께 상식 아닌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타자와의 구체적 관계에 대한 논의는 별 것 없는 상황이다. 유아론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타자의 지평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위론적 지적은 많지만 타자와 자아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그 관계맺음의 윤리성과 복잡성을 가르는 논의는 미력하기 그지없다. 타자는 있으되 추상화된 타자성이 자타관계의 구체성을 막아서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 점에서 칸트 도덕론의 황당한 옹호자로 오해되는 하버마스의 최근 결정판에 주목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실성과 타장성의 자매판인 이 글은 유쾌한 논쟁의 결실로 가득하다. 포용민주주의 기획을 향한 하버마스의 분투는 아름다운 성좌를 만들어 놓았다.
체계민주화 전략의 부재, 투쟁적 행위론의 오갈듬, 행위의 자기목적성 지평에 대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지평을 향한 하버마스의 고투는 섬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하버마스를 어린아이 손 목 비트는 양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푸코나 들뢰즈 류에 대한 과도한 탐닉에 비해 하버마스에 대한 내재적 소화는 여전히 부족해보인다. 아마도 보수적 학계가 하버마스를 소화불량의 상태로 인도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얌전해 보이는 외양 때문인지, 하버마스는 그 떠도는 영향력에 비하면 정작 이론의 내재적 소화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인 듯 보인다.
하버마스의 이론적 첫걸음을 위해 그리고 가장 포괄적인 접근을 위해 효과적인 저작이다. 롤즈나 칸트, 슈미트, 루소, 로크 등과 정면 대결을 벌이는 하버마스라는 검투사의 즐거운 놀이를 관람하는 쏠쏠한 재미를 느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