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대한 베르그송의 논의나 프로이트의 논의를 겹쳐서 읽은 사람들은 울음의 그림자를 보았을 것이다. 기쁨의 환희를 경험한 사람은 슬픔의 그림자에 당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근자의 라캉류의 파괴적 동형성론에 몰입하는 사람들에게 비극과 희극은 구별하기 어려운 아니 구별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더욱이 한반도에서 비극이란 처량한 신세한탄이거나 무력한 자들의 팔자타령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는 세간의 평가를 듣게 마련이다. 존재의 비르투와 운명의 포르투나의 관련성에 대한 마키아밸이의 논쟁점은 여전히 미궁 속을 헤메고 있는 것이다. 아렌트의 새로운 관계맺음이나 들뢰즈의 비르투 전략 등은 여전히 애매하고 혼성적인 어떤 것으로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자의 비극에 대한 꼼꼼한 이해는 좋은 디딤돌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고통의 존재론의 아픔과 그것을 넘어설 자유의 열정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이 땅의 기운을 통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글쓰기 전략에서 저자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글쓰기에서 멀어져 편지글의 형식을 통해 독자와의 친밀한 소통을 시도했다. 그 성공여부를 떠나(대중적으로는 성공!) 시도를 아름답고 탁월한 것이다.서구에 대한 평면적 비판에 대한 우려섞인 이전 글들에 비해 서구의 비극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드러내보이고 있다. 역-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에 경도된 저자가 서구의 헬레니즘 전통에 대한 내재적 소통을 통해 타자들과의 보다 너른 교통을 이뤄내길 바란다. 물론 저자와 우리들의 교통이 더욱 중요할 것이지만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