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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세기 ㅣ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폭력과 권력을 야누스적인 이중성으로 단정짓는 논의. 예를 들어 폭력과 권력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는 항간의 소문은 이론지평에서나 정치계, 언론계의 상식이다. 현실주의적 세상보기에서 권력은 폭력에 다름 아니고 폭력은 권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타자를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유아론적 존재론에서 권력은 타자를 지배하는 폭력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홉스에서 니체, 베버, 소렐, 사르트르 등은 모두 권력과 폭력의 구분에 실패하면서 자기보존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폭력과 권력을 구분하지 못한 이론적 결손은 존재의 윤리성을 구성할 비상구를 닫아거는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아무런 부끄럼없이 자행되곤 하였다.
이와 달리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간명하게 구분해낸다. 강점과 권위, 권력, 폭력 등을 구분하는 그의 솜씨는 여간 탁월한 것이 아니다. 권위나 자유에 대한 그의 해명의 문제를 섬세하게 논하는 것보다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폭력과 권력을 구분하는 것이지 않을까?
권력의 상징폭력성을 따지는 것에 부족한 한계를 드러내는 아렌트이지만 광기와 야만의 폭력과 권력의 차이를 혼돈하는 이들에게는 탁월한 노작임에 분명하다. 인간의 조건이 아렌트 이해의 이론적 첫걸음이라면 폭력의 세기는 정치적 글쓰기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글이다.
욕망과 권력을 마구 뒤섞는 논의나 자기긍정의 상호주관적 지평을 열지 못하고 자기보존의 강박에 휩싸인 전쟁기계론(들뢰즈)이나 민주주의보다 등 따시고 배부른게 최고라는 유사 자유주의의 비극 앞에서 권력 행위의 윤리성과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이들에게 꼭 넘어야 하는 고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