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을 찾아 떠나는 빠삐용!우리는 생명을 키우고 포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로지 제 핏줄의 안위를 위해 이웃과의 사랑을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유별난 희망과 꿈을 키우는 이들을 조롱하고 따돌린다. 단지 나와 다르다고 남을 차별하고, 사랑과 우정을 냉소하는 슬픈 땅에서 가슴 깊은 공명을 만드는 친구가 있다. 그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벼랑 끝으로 떠밀려 가는 양계장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사막의 황폐화를 묵묵히 견디는 낙타의 운명을 천형으로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왜 자신이 낳은 알을 키울수 없는 의문을 품은 잎싹은 마당의 수탉과 아카시아 나무를 보며 생명을 키우기 위해 탈출을 결심한다.「Chicken Run」이 자유를 찾아 트위디의 양계장을 탈출한다면 잎싹은 생명의 열망으로 탈출한다.

잎싹은 위대한 에로스의 힘을 희망으로 삼아 양계장을 탈출한다. 곡기를 거부하며 이뤄낸 탈출극은 마치 장자의 '꾸부정한 소나무'를 떠올리게 만든다. 주인에게 쓸모없게 되자 잎싹은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양계장을 탈출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당 밖의 족제비도 문제였지만 마당 안의 식구들은 잎싹을 구박하고 못살게 군다. 마당을 지키는 개도, 같은 종인 수탉도 잎싹을 차갑게 거절한다.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아!'(44) 그렇다고 마당을 떠날 수는 없었다. 마당 밖은 위험했다. 아마 이런 위험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잎싹은 결국 주인의 식탁 위에 올랐을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고 마당의 안전에 길들여졌다면 잎싹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 위대한 생명을 거부하는가?잎싹은 나그네 청둥오리의 희생과 배려 속에서 초록머리라는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된다. 하지만 마당을 벗어나 대지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힘겨운 풍파를 각오해야 했다. 잎싹에게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살림살이를 꿈꾼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자연의 위험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잎싹은 초록머리를 키우며 어미됨의 기쁨과 안타까움이라는 환희에 풍덩 빠진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이라는 책임의 즐거움과 기쁨을 거부하고 있는가! 잎싹은 초록머리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아가, 나는 닭장에서 알만 낳아야 하는 암탉이었단다. … 그 때 이미 죽을 목숨이었다. 하지만 너를 만났고, 나는 비로소 엄마가 되었단다>'(138) 어떠한 공포와 불안에도 결연한 위엄과 용기를 지닌 잎싹은 초록머리의 성장을 위해 자신을 부단히 성장시킨다. 더불어 자신의 품안에 아이를 가두기보다 너른 대지로 날려보낸다. 잎싹은 아이에 다리에 묶인 끈을 풀어주며 창공을 향해 떠나 보낸다. 자유의 아이에게 스스로 홀로설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하고 싶은걸 해야지. 그게 뭔지 네 자신에게 물어 봐>'(172)

다름에도 아니 다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존재를 살게 한다.잎싹은 초록머리와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다. 그럼에도 잎싹은 가족을 만들어 사랑을 나눈다. 사랑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희망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게 뭐 어떠니,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136) '같은 족속이라도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사랑이야!'(152)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공포로 몰아넣던 족제비에게도 오히려 무한한 사랑을 베푼다. 잎싹은 자연질서의 비극을 너른 존재의 품안에서 승화시킨다. 자연의 숙명에서 보자면 족제비도 아이를 키우고 살아야만 하는 슬픈 존재였던 것이다. 그 슬픈 현실을 포용하며 잎싹은 비상의 꿈을 실현한다.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189) 오늘도 잎싹은 하늘 위에서 자유와 사랑의 찬가를 부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어린왕자』처럼 잎싹의 삶은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자유의 희망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불행한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과연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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