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
마사 너스봄 외 지음, 오인영 옮김 / 삼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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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애국주의의 이름으로 세계경찰의 무도한 패권을 과시한다. 자국의 안전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공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자국의 안전이 세계의 평화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침략전쟁과 국가적 테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미국적' 폭력이 세계는 부화뇌동하고 불가피하고 정당하다고 체념한다. 국가라는 이성의 주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전쟁은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신봉건기획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절대주의의 주권관은 탈근대가 운위되는 시대에 새로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극의 세계질서에 과연 평화와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주류 학계의 세계시민주의와 애국주의 논쟁은 물론이고, 비판학계의 국제주의와 신국제주의의 논쟁은 국가주의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암중모색 중이다,

물론 이런 논쟁은 루소나 칸트, 헤겔, 뒤르켐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너스봄은 스토아와 로마의 평화기획에 까지 세계시민의 꿈을 이어주고 있다. 바버는 '강한 민주주의'의 구체적 근거로서 좋은 애국주의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들을 비롯 매우 다양한 이들이 좋은/나쁜 애국주의와 좋은/나쁜 세계주의를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격렬하게 다투고 있다. 데카당스와 니힐리즘의 시대에 재미있는 논쟁이다. 과연 세계시민주의와 공화국 기획의 모순적 상호성을 가능케하는 이론기획과 현실전략은 무엇일지. 이 무지하게 첨예한 모순에 대한 한가한 이론들에 대해 근본적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좋은 여행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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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강봉균·박여성·이진우 외 53명 지음 / 한길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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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학자 사전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개념어 서술도 있고, 이것저것 소개하고 있으므로 과학사전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전으로 보기에는 일관성도 체계성도 없다. 여러명의 쟁쟁한(?) 필진들이 참여해서 서술전략도, 관점도,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사전을 소장하고, 써먹는 이들의 권력의지란 뭘까? 여하튼 현대판 잡학다식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먹거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월경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적절치 않은 책이다. 분과화된 학문을 넘어서는 이들에게도, 자신이 파고들고 싶은 전문적 영역에 대한 섬세한 접근에도, 다양한 보편적 성찰에 대한 탐색에도 적절치 않은 책이다. 이 책으로 최신 유행하는 선두주자들에 대해 귀동냥은 할 수 있을지언정, 월경의 가능성을 얻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제목에 과도한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면(월경하는 이들에 대한 광고일 뿐 월경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럴저럭 쓸만하다.

월경을 하는 탁월한 능력을 구비한 자들에게는 분명 좋은 여행 안내서일 것이다. 3-4개 정도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기초가 튼튼한 이들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이런 백화점의 파노라마를 좋아할까? 관심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접할 책이 아니라 탁월한 귀족(적 장인)이 이런 책에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책이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 서 있는 쇼핑몰을 보는 듯하다. 하긴 라스베가스마냥 번성한 도시가 될지도 모를 일이나 그건 이 책 때문에 아니라 다른 구조적 유인책과 열정들 때문일 것이다. 사막위의 쇼핑몰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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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9
김욱 지음 / 책세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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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밸리의 모순성은 항간에 떠도는 논의들 속에서 사리지고 만다. 마키아밸리즘은 흔히들 도덕에 신경쓰지 않고 정치적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악의 권력기술로 개념화되어 있다. 저자는 그런 단순화된 마키아밸리즘의 논의에 아무런 성찰없이 편승해 있다. 마키아밸리즘이라는 방법론적 도구를 빌려 왔다면 최소한의 마키아밸리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로마사 논고'와 '군주론'의 역동적이고 모순적인 차이를 간단히 우회하고 있다. 더구나 꼴통 좌파인 하나인 알튀세을 치장하여 자신의 방법론적 지평의 부실함을 감추려 한다. 저자는 한국적 상황에 서구 이론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자신이 이야기하는 사람의 논의에 대해 충실해져야 할 것이다. 인민의 자율성에 주목한 로마사 논고와 군주의 권력에 주목한 마키아밸리의 차이들에 어떻게 모순적으로 역동하는지에 좀더 주목해야만,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문제는 한반도의 역사적 적용의 문제이다. 부실한 방법론적 지평을 일관성과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는 적용으로 두루 문제를 남기고 있다. 서투른 습작 수준에서 과연 얼마나 벗어난는지 의문이 드는 책이다. 만약 그런 안타까움이 나만의 것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정치 윤리의 현대적 발전에도 무기력하고, 한국의 역동적인 정치변동과정에 대해서도 엉성하기 그지없다.

저자는 예언자도 그리고 역사가도 되지 못했다. 더구나 이론적으로 탄탄한 무장에 실패하고 있다. 저자는 '무장한 예언자는 모두 승리하지만,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는 패배한다‘『군주론(The Prince,1513)』는 군주론의 경구를 성찰해보고자 했다. 저자는 이 문장의 문제와 한계 그리고 가치를 다시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딘 이론적 성찰 그리고 섣부른 적용의 위험. 좀더 꼼꼼하고 깊고 너른 성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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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종의 이유
하워드 진 지음, 앤소니 아르노브 인터뷰,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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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종의 구체적 양상에 대한 좋은 내용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좋은 내용형식이 멋진 표현형식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편집자는 너무 '포스틈모던적'이어서인자, 아니면 독자와의 소통에 별로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어선지. 소통하기가 참 어렵다. 하긴 편집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편집에 길들여져서 인지도.. 하지만 읽기가 불편하고 힘겹다.

하긴 내용이 좋은데 뭐가 문제냐 하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용 자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진의 책들 중 오만한 제국의 '법과 정의'의 장과 함께 읽어야만 이 책의 핵심적 내용이 쏙 들어오게 되어 있다. 역자는 독자에 대한 내용형식적 배려와 표현형식적 배려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다,
친숙한 진의 내용과 표현을 너무 멀리 띄어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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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의 역사
매릴린 옐롬 지음, 윤길순 옮김 / 자작나무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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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해 할 줄 모른다. 어떻게 행복을 꾸려나가야 할지를 잃어버렸다. 헐리우드의 영화를 볼 때, 주일에 종교성지를 찾을 때야 행복을 떠올려본다 그런데 그곳에 마련된 일괄생산 방식의 행복상품은 끊없는 소비의 욕망을 불어일으킬 뿐이다. 소비의 욕망은 행복의 갈증을 일으키고 더더욱 종교상품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신체와 몸에 대한 행복이 무엇인지 성찰하지도 않는다. 기껏 해봐야 절대적 신성에 매달리거나, 신은 없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냉소적 절망의 함정에 빠질 뿐인데, 고통스럽게 무슨 생각을 해야 한단 말인가! 지배권력의 학대와 일상의 모멸을 버티기도 힘든 순간 순간 우리는 행복과 기쁨의 정서가 어떻게 가능하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에서는 이룰 수 없는 성스러운 가치로 비루한 존재의 한계를 알게된다. 그리고는 성직자도 할 수 없는 그 경지를 저 세상에 던져놓고, 이 땅에서는 저속한 속물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냉소와 체념에 빠져든다. 하늘의 명령을 알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죄책과 고통 속에 절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인간이라는 종이 아니겠내고 자신을 변명하고 위로한다. 공격성과 지배의 욕망은 어느새 불가피한 것이 되고, 불가피성을 넘어 뻔뻔스레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런 세상의 극단적 상징체계의 비극을 파고드는 멋진 책이다.

자신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이 어떻게 지배권력에 의해 역사적으로 파괴되어왔는지. 지금도 우리 주위를 떠도는 담론장치 속에서 저자의 역사적 퇴행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존재의 행위능력을 불구자로 만드는 성교육과 관능적 기쁨과 즐거움을 자폐적 광기로 폐쇄하는 신비주의적 도덕주의. 하수도와 상수도를 뒤섞어 놓은 이중적 성도덕. 그 어느 하나도 만만한 것이 없는 이 땅에서 이런 이야기가 확장/심화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까?

구좌파의 한심한 경제결정론과 자유주의의 천박한 프리섹스, 그리고 보수주의의 한심한 도덕주의, 극우의 몰상식한 야만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너무 멀리 있다. 하지만 기쁨과 즐거움을 행복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너무 가까이 있다. 그래서 너무 위험한 책이다. 무릇 좋은 책이란 화약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뇌관을 제대로 작동시킬 줄 안다면 멋지고 황홀한 경이를 선사할 만한 책이다. 최근에 나온 아내두 멋지다. 멋지다 옐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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