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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이든 책 속에는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책들은 쉽게 저자의 생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대개 이미 나와 있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변형시켜 서술하는 경우가 많아 비슷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 저자의 생각은 저자가 예로 든 것을 통해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몇가지 예를 보자.
우선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성공사례, 삼성전자 윤종웅 회장의 예를 긍정적 사례로 들고, 운동권 출신 정치인과 과거 경부 고속도로, 인천공항 건설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부정적 예로 들고 있다. 이 것만 떼내 가지고 본다면 저자의 평소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저는 책에서 이념, 가치관, 신념을 뚫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저자는 어떤 이념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지방 교육청의 구호에 '창조적이고 도덕적인 시민'이라는 것이 있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창조'와 '도덕'은 공존할 수 없는 명제이다. 창조적이기 되기 위해서는 도덕이라는 가치관, 신념을 돌파해야 한다. 그 가치관, 신념은 결국 사회의 시스템일 수 밖에 없다. 즉 권력화한 진리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질문하라'고 하면서도 그 질문하는 것을 막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즉 무엇(what)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how)라는 문제의식에서는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정치적 신념(책 속에는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때문에 한게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질문하라'에서 예를 오바마 대통령 기자회견 때 질문을 하지 않은(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기자들의 예를 든 것이 적절했을까? 차라리 질문을 못하게 하는, 아니면 해봐야 득 될 게 없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이나 사회 혹은 정치시스템을 짚어 봤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보며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를 생각했다. 기시미는 책에서'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바탕한 글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동체'를 언급하고 있다.
사실 개인은 어떤 경우에도 사회를 벗어나 살기는 힘들다. '사람이 그리는 무늬' 저자는 인문을 그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인간(人間)이고 인간은 곧 사회다. '독립적 주체가 된 사람'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를 사회나 국가에 양보하지 마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종내 사회나 국가를 벗어나 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주체적 삶, 고유명사로 돌아가기, 지식만 쌓고 실천이 없는 삶이 안되기 위해서는, 좋다 나쁘다의 정치적 판단 대신 '질문'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필연코 그것을 방해하는 정치, 사회, 교육적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정작 그런 질문은 없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왜 고고학 인류학이 발달했는지 그 이면에 대한 고민이 없기에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고 그 이면의 인문학적 문제는 그저 간단히 '...지만'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사실은 그 '...지만'이 진짜 인문학이 살펴봐야할 지점이 아닐까?
이 책은 인문학과 자기계발을 결합한 겉보기에 매력적인 책이지만 사실은 저자의 자기 경험이 담긴 책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지식을 그럴듯 하게 포장하고 그 안에 교묘하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숨기고 있는 그래서 진정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책으로 내겐 느껴졌다.
이런 류의 책은 많다. 그러기에 이 책만이 있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기에 나는 이 책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