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지음 / 이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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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과학은민주주의가필요하다 #과학사 #교과서 #민주주의 #정인경 #이음출판사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_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정인경, 이음출판사, 2026, 초판 1쇄, 216쪽)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추천대상: 이과를 전공하고자 희망하는 학생, 그리고 과학이 실용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 믿고 있는 모든 사람들.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라 여성이 공부를 많이 하면 에너지를 다 써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가설"

"남성은 신체가 우월한 사냥꾼, 여성은 가냘픈 채집자에 어울린다는 가설"

→ 과학은 과연 가치중립적인가??



#정인경 #과학저술가 #과학사학자 #정인경의과학읽기 #이계절에새책

"과학 공부를 왜 하는 것일까?"(11쪽)


나는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좋아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도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과학사 관련 교과서를 저술한 경험도 있고, 과학 공부를 왜 하는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교사로서 이 책의 내용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저자는 매우 친절한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느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갈릴레오였다면? 그 시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갈릴레오처럼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간절했던 마음이 무엇일까를 한번 상상해 보세요."(87쪽)


사실 이번 책을 통해 저자 정인경을 처음 알았다. 그녀를 소개하는 첫 단어가 '과학저술가'라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과학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과학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학교에서 만났던 이과 여학생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하거나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저자의 주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언급하는 소재와 내 관심사가 같으면 괜시리 인정받은 기분이었고, 책에서 소개하는 다큐, 영화, 책들은 모두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쓴 다른 글과 책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녀의 대표 저서는 <뉴턴의 무정한 세계>, <내 생의 중력에 맞서>, <과학을 읽다> 등이 있고, 한겨레 신문에 연재한 <정인경의 과학 읽기>도 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1장 #생각하는인간의탄생 #달력


1장에서는 '과학이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 예시로 소개한 것이 바로 '달력'이다. 너무 반가웠다. 2년 전부터 주제 융합 수업으로 '달력 들여다보기'를 준비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대로 나는 인문과 이공의 융합 사례로 가장 삶에 밀접한 도구가 달력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저자와 같은 생각의 가닥을 따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좌절감도 느꼈다. 저자는 역시 과학 전공자였다. 내가 달력으로 수업한 내용과는 차원이 다른 저자의 설명을 읽었을 때,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까 생각했다. 과학사 공부가 부족했다. 분명 내가 접할 수 있는 논문과 도서도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수업을 할 기회가 없지만, 만약 이 책을 그때 만났더라면 조금은 더 세련된 수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까지 들었다.


여하튼, 1장에서 저자가 전하는 핵심 메세지는 "과학도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태양력에 익숙한 시간 체계에 살고 있기에 마야에서 사용하던 달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낯설게 본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 사례를 통해 과학이 객관적 사실만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2장 #철학자의위대한질문 #탈레스 #과학의시작 #자연과학 #질문


2장에서는 '과학적 통찰은 세계에 관한 질문에서 나오며,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그래서 과학이 매우 정치적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리스 철학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현상을 합리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탈레스를 '과학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과학적 사고(합리적 사고)는 신화적 사고와 달리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과정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신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인간에 의한 해석을 시도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즉, 이와 같은 과학적 사고를 통해 신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본다. 탈레스는 어떻게 절대적 신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발전하고 있었던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즉, 과학적 사고의 토양이 민주주의였다는 것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신의 권위를 빌려 통치하던 왕을 쫓아내고 다양한 정치체제를 경험했어요. ... 만물을 창조하고 질서를 부여한 신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인간이 스스로)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72쪽)


이 책의 제목이 어떤 맥락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과학은 민주적 토양에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의 자연과학(철학)이 발달하고 있는 경험처럼 말이다.



#3장 #과학혁명은정치혁명으로 #과학혁명 #학문적기술자 #뉴턴 #정치혁명 #로크 #사회계약설


3장에서는 '과학혁명이 정치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갈리레오와 같은 과학계의 선구자들은 신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 사고를 보여주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발견을 대중과 공유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문적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저자는 과학혁명이 위대한 선구자의 지식 체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위대한 선구자의 발견을 대중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기여한, '잘 알려지지 않은 기술자'들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적 기술자들은 이른바 '선구자의 발견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뒤러, 파라켈수스, 비링구초, 아그리콜라, 스테빈, 레기몬타누스, 길버트, 팔리시가 있는데, 이 이름들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교과서에 실려야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과학사 교과서 또는 이 책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과학적 설명을 정의하는 문장이 나오는데, 나는 이 부분에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과학은 신화와 역사, 소설과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이면서도 얼마든지 비판과 성찰을 받아들이는 학문이었다.


"과학은 진리로 군림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작동하면서 최선의 지식을 제공했습니다. 과학혁명은 사실, 가설, 법칙, 증거 등의 새로운 언어와 연구 방식을 제시하고, 과학을 믿을 만하면서 동시에 해체 가능한 지식으로 만든 역사적 사건입니다."(122쪽)


나는 이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필요한 학문이다.


로크의 사회계약설도 자연과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아 등장했다고 한다. 과학혁명은 신의 권위를 빌려 신민을 지배하던 절대왕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고,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과학혁명이 정치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 덕분에 뉴턴과 로크, 볼테르와 디드로가 이 시기에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계약설도 합리적 사고의 결과물이기에 '믿을 만한 이론이면서 동시에 해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즉, 사회계약설이 절대적인 진리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해체하고 새로운 해석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해석을 최근에 루크 켐프의 <골리앗의 저주>(2026)에서 읽었다. 어쩐지 그 책의 주장과 맥락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따르면, 국가는 사회계약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골리앗(독재 권력)'이었다. 사람들은 그 골리앗(국가)을 스스로 원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너뜨리려 투쟁하는 대상이었다.

https://blog.naver.com/hun371/224370523713


#4장 #기술진보의피해자 #여성 #젠더 #식민지배 #산업혁명


4장에서는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신화'의 헛점을 파헤친다. 과학혁명과 정치혁명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럽을 너머 전세계에 전파된 과학은 이제 더 이상 합리적 사고의 전형이 아니었다. 일종의 '신화'가 되어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졌고, 소외된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과 인종, 식민지배와 산업화다. 과학혁명을 통해 등장한 근대 과학은 그 당시 유럽 사회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과학은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설명하는데 동원되었으며, 인종차별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 흔적은 아직도 현재까지 남아 있다. 과학이 사실만을 추구하며, 가치중립적이라는 생각은 일종의 '신화'가 되어 버렸다. 과학을 정치적 수단으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들은 과학으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4장은 젠더 불평등, 식민지 근대화론, 산업혁명과 차티스트 운동을 다룬다. 과학기술 발전이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과학이 발전해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5장 #21세기그너머의세상을상상하며 #현대 #미래 #시민과학 #기술철학 #공익을위한과학 #연구윤리 #과학민주화


5장에서는 현대 과학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다. 20세기 이후 과학기술은 사회적 영향력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다. 대표적 사례는 원자폭탄으로, 과학자의 연구 과정에 사회적 책임이 더욱 엄중히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다. 과학의 상업화와 전쟁으로 인해 변질된 과학기술 연구를 회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과학자의 에토스(가치와 규범)"을 제시하는데, 과학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보고 있다.


"과학의 에토스는 성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과학자 사회에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과학적 양심 같은 것이었어요. 머턴은 이러한 과학의 에토스를 보편주의, 공유주의, 이해 무관심, 조직된 회의주의로 함축해서 정리했습니다."(182쪽)


저자는 자본과 국가주의에 잠식되고 있는 과학을 회복시키기 위해 '공익을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 과학을 활성화하여 과학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과학 연구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삶을 억압하고 수탈했던 과거 산업혁명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 사회에서는 기술이 삶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기술철학'이다. 이에 따르면 기술 발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미래 예측보다 철학이 필요하다."(198쪽)


결국 돌고돌아 다시 철학이다. 과학도 결국 인간이 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AI가 전세계를 집어삼키더라도 결국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AI의 사용에 앞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방법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덧, 과학이 정치적이라는 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비록 과학의 지식 체계와 이론에 대해 아는 것은 부족하지만, 과학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잡는 인문학적 성찰 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다만, 최근까지 AI를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홍진기의 <사고외주>(2026)를 걱정만 하고 있었다.(사고외주는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AI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아래 서평을 참고하시길..)


https://blog.naver.com/hun371/224326089427


토론 수업 시간, 학생들은 그 토론 논제를 AI에게 그대로 주고 찬성과 반대 주장과 근거, 심지어 반박까지 그대로 물어본다. AI가 제시한 답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적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할 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쉽고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자기 입장을 정하고, 논제를 분석하여 주장을 세우는 과정을 쉽게 하면 학생이 스스로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온전히 AI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적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철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생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AI 활용 방안을 모두가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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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묻다
함익병.김범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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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_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원을 묻다 (함익병, 김범준, 중앙books, 2026, 초판 1쇄, 270쪽)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권력 #정치위기 #시민 #민주주의


의학 전문성을 기반으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보수 성향의 논평가 함익병씨와 오랜 실무와 학술적 지식을 겸비한 보수 진영 정책 전문가이자 비평가인 김범준씨가 함께 쓴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두 보수 성향의 저자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약간 걱정이 앞섰다. 현재 우리 정치는 진영 갈등이 첨예하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논쟁보다는 감정적 말싸움에 더 가까운 공격을 주고 받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보수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책을 읽게 될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두 저자도 자신의 성향이 이 책에 끼칠 걱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책은 헌법과 법률, 판례와 국회 기록, 국가기록원과 민주화 운동 관련 공공기록을 가능한 한 함께 놓고 읽으려 했다."(269쪽)


하지만 역사는 단순한 공통의 사실만을 확인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와 '의미'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정치적 주요 사건을 성과와 한계를 함께 찾는다. 또한, 권력과 시민이라는 두 관점에서 동시에 역사적 의미를 찾아가려 노력한다.


추천대상 : 1945년 '해방'부터 2024년 '12.3 비상계엄'까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주요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은 분


[특징 하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


"이 책은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쓰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재를 더 뚜렷하게 보기 위해 쓰였다."(266~7쪽)


이 책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발생한 시점부터 출발하고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직전, 1945년 해방과 1948년 분단에서 끝을 맺는다. 역사서이지만 현재로부터 출발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방식은 현재를 이해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나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다보면, 학생들은 먼 과거보다 현재,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보다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욱 쉽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12.3 비상계엄은 이 책을 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익숙한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이를 토대로 한국 현대 정치사를 읽기 시작한다면, 매우 쉽게 그 원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두 저자는 이 중에서 주요 일곱 장면을 꼽았는데, 이 일곱 장면은 현재 정치 모습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원형이 제시된 시점이라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저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특징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바로 '반복'이었다.


"이 책을 쓰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반복'이라는 말이었다. 권력은 반복해서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했다. ... 시민도 반복해서 권력의 한계를 다시 그었다."(268쪽)


권력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하면, 시민이 그 권력을 밀어내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확고한 기준을 갖게 되었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 순간, 수많은 시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로 달려가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 확고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80년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복원의 과정은 그 확고한 기준을 마련하는 경험이자 기억이 되었다.


[특징 둘, 당시 사고방식과 심리를 살피다.]


"그들에게(시민)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교과서 개념이라기보다 훨씬 절박한 생활 문제였다. .... 1987년 시민에게는 민주주의의 가장 현실적인 얼굴이었다."(125쪽)


우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제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1987년 시민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 지향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다. 마치 1987년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는 것처럼 오해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시 수많은 시민에게는 대통령 직선제보다 더 큰 동력이 있었다. 바로 분노였다. 국가 폭력에 의해 이유없이 억압받지 않을 자유, 권력이 마음대로 사람을 잡아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우리는 아직 미래를 알지 못하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시위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당시 권력자들의 의도와 함께 당시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특징 셋,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다.]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은 대개 '완전한 승리'보다 '불완전하지만 결정적인 전진'의 형태로 나타난다."(130쪽)


두 저자는 주요 일곱 장면을 소개하면서 성과와 함께 한계를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경험과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는 동시에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점들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어떻게 보완해 나갈 것인지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명확하다.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 기회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기회들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는 해방 직후 한반도 상황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능성이 열린 시대'. 지금이 딱 그런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드물게, 여러 길이 동시에 열려 있던 시간에 가까웠다. 그러나 바로 그만큼 충돌도 격렬했다. 모두가 새로운 나라를 말했지만,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합의가 없었다."(239쪽)


광장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진영간의 갈등이 격렬하게 발생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예전에는 다른 선진국의 제도와 방식을 따라가는 해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앞서 나가야 하는, 미지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해방 직후,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전무했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 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무엇이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켰는지 자세히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한계


두 저자가 대한민국 정치사 주요 장면의 성과와 한계를 살폈던 것처럼, 이 책의 성과를 살펴보았으니 한계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일단, 대한민국 정치사의 출발점을 '해방과 분단'에 둔 것이 조금 아쉽다. 책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대다수를 끌어 안았다. 그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즉, 대한민국 정치사의 출발은 일제 강점기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려는 현상이나 권위주의적 정부가 시민을 억압하고 동원하는 모습은 일제 강점기 통치 방식을 닮았다. 우리 역사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성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둘,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부터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공기록을 주로 읽으며 저술했다고 밝혔지만, 이 책에는 당대 사료나 원문을 인용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당대인이 남긴 기록이나 일기 자료같은 1차 사료를 활용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역사적 사건을 평가하고 의미를 밝히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게 평가한 근거를 1차 사료에서 찾아 제시한다면 두 저자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또한, 주장을 반복하여 서술하는 것보다 근거로 제시된 자료를 분석하고, 각 장에서 제시한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장치를 둔다면 더 좋은 저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덧, 작년에 최강욱 전 의원과 동생 최강혁 씨가 쓴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를 읽었다.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치 교양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와 '진보'를 살폈고, 많은 사람이 그 의미를 이해한다면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반면에 함익병, 김범준씨의 책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살피고, 현재 상황을 이해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결이 다르지만, 두 책 모두 현재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고민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있지만, 쉽지 않은 주제다. 고향에 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 말조심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책에서처럼 현대 정치사의 주요 장면들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에 답이 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입장은 달라도 우리나라의 주인은 바로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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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저주 - 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
루크 켐프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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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골리앗의 저주_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 (루크 켐프, 까치, 2026, 초판 1쇄, 744쪽)



#인류사 #문명사 #붕괴 #회복


지금껏 '붕괴'를 주제로 다룬 인류사 책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재래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2005)" 정도를 읽어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인류 절멸(붕괴 이후 최악의 상황)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추론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란 생각이다. 이 책은 다른 인류 문명사를 다룬 책들에 비해 매우 참신하고 충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어서다.


저자는 국가와 문명의 탄생보다 '붕괴'에 더 관심을 보인다. 저자는 무려 "지난 5,000년에 걸친 300개국 이상의 국가"(35쪽)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역사상 많은 국가와 문명이 반복적으로 '붕괴'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하지만 이 붕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끝(종말)이 아니다. 국가나 사회가 붕괴하더라도 삶은 계속 이어졌고, 기존의 상처를 '회복'할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살피는 성찰의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붕괴를 거친 사회는 더욱 진화한다. 저자가 국가의 탄생보다 붕괴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붕괴'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거대한 위기, 즉 인류 절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저자는 '호모 솔루스'라는 표현을 쓰는데, 현생 인류가 여러 인간종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종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 단어를 통해 우리가 다른 인종들처럼 절멸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충분히 멸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골리앗 #국가 #문명 #구심력 #원심력 #진화적자멸 #파멸의나무


저자는 '골리앗'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와 '문명'의 형태를 구분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국가(골리앗)는 일종의 보호 갈취 사업자다.(내가 한국사에서 후삼국의 성립을 가르칠 때 호족이 조폭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는데, 그것과 너무 비슷한 표현이라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안에 있는 악한 본성에 따라 타인을 이용하고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괴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골리앗이란 어떤 개인들이 다른 개인들을 지배하여 에너지와 노동력을 통제하는 위계구조의 집합이다."(19쪽, 서론)


반면에 '문명'은 평등, 민주, 혁신, 복지, 행복이라고 보고있다. 저자는 인류사를 상류층이나 지배자의 시선이 아닌 일반인의 관점에서 문명을 바라보고 있다. 매우 진보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국가(골리앗)와 문명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와 문명을 동일시하는 관점은 분명히 '착각'이라고 1장에서 밝힌다.


※ 1부의 내용은 켄트 플래너리, 조이스 마커스의 "불평등의 창조"(2018)와 매우 유사하다. 이 책에서는 불평등은 평등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고 '창조'된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루크 켐프는 "골리앗의 저주"에서 홉스의 자연상태가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켄트와 조이스의 "불평등의 창조"에서는 루소의 사회계약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유사하다.


저자는 '1부 여명과 종말'에서 기록 이전의 과거(선사 시대)에 있었던 붕괴 사례를 고고학적으로 분석하여 붕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인류에게 매우 이로운 영향을 가져온 사례가 있었음을 밝힌다. 골리앗(국가, 권력)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상황에서 잘 등장하며, 인류의 삶에 폭력과 전쟁이라는 문제를 가져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골리앗이 등장하는 힘과 그것을 붕괴시키려는 힘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다. 국가의 탄생만큼이나 붕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두 힘을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이해했다.




구심력은 골리앗(국가, 권력)이 등장하는 힘이다. 공(인류)을 통제하기 위해 안쪽으로 끊임없이 잡아당긴다. 하지만 원심력(붕괴, 이탈하려는 힘)도 만만치 않다. 골리앗의 지배가 강해질수록 이 지배를 무너뜨리고 이탈하려는 힘도 강하게 나타난다. 역사 기록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 두 힘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인류는 두 힘 중에 당시 상황에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힘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수렵채집인으로 살아가거나 골리앗의 통제를 받는 농경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제2부와 3부에서는 역사(기록) 속에 등장한 제국(골리앗)의 사례를 분석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골리앗은 점점 진화했다. 공을 잡아당기는 끈을 점점 더 굵고 강력하게 만들어냈던 것이다. 강력한 구심력을 가진 골리앗은 이제 이탈하려는 인류를 점점 더 옭아맸고, 더욱더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골리앗은 반드시 붕괴로 이어지는 근원적인 '저주'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점차 기술적, 경제적 통제 장치를 강화하면서 점차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 결과 현대에는 '실리콘 골리앗'이라 불리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전 세계를 집어 삼켜 버렸다. 이 골리앗은 이제 '인류 절멸'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정도의 수준까지 진화한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진화적 자멸'의 단계에 이르렀다.



골리앗은 여러 요인(촉진제, 본성)에 의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근원적 저주(위계구조, 불평등, 전쟁) 때문에 덫(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골리앗이라는 "파멸의 나무"가 더 크게 자랄수록 인류는 절멸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골리앗죽이기 #저주선택하기 #붕괴


"골리앗이 출현하는 이유와 골리앗이 덫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하면, 골리앗과 관련한 역사의 반복을 막을 개입 방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568~9쪽, 최종전)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골리앗이 인류를 절멸로 내 몰기 전에 그를 죽일 방법을 역사 속에서 찾은 것이다. 해결책은 미래의 왕 '다윗'이 되는 것이다. 작은 돌이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던져 거대한 실리콘 골리앗에 작은 균열이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골리앗을 죽이는 길이고, 골리앗의 근원적 저주를 이용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전략이며, 궁국적으로는 '붕괴'를 선택해 다시 평등하고 자유로운 문명을 재건하는 길로 들어서는 방법이다.


청동기 문명의 붕괴 이후 찾아온 암흑 시대가 고전기 그리스 문명을 꽃피웠던 것처럼,

로마의 붕괴가 유럽을 대항해 시대, 산업혁명과 같은 혁신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처럼,

흑사병의 창궐이 노동의 가치를 높이고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 수 있었던 것처럼,

제1, 2차 세계 대전이 불평등 지수를 낮추고 권력의 분권화를 이끌어냈던 것처럼,


'붕괴'는 어쩌면 AI와 자본주의 수탈 체제, 핵무기로 무장한 실리콘 골리앗의 지배를 받는 현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정의실현 #다윗 #진정한엘리트


저자는 "23장.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정의를 실현하라"(593쪽), 맺음말(609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다음은 내가 이 부분에서 가장 깊이 공감한 부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엘리트이다. 진정한 엘리트는 배관공, 미화원, 간호인, 연구자, 의사, 교사 등 특정한 과업과 직무에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다.(권력자, 지배자가 아니라) ... 인류의 지식을 이용해 우리의 자유와 복리를 향상시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604쪽)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때이다."(625쪽)


저자는 엄청난 양의 '붕괴' 데이터를 분석하여 '골리앗'의 문제를 발견했고 그 해법도 함께 찾았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골리앗을 물리치는 '다윗'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책이 두루 널리 읽혀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찾아낸 사실은 "파멸의 주범들"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매우 소중한 역사적 교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할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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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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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공기의 세계_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칼 짐머, 다산초당, 2026, 초판 1쇄, 631쪽)

공기의 세계

오늘날 과학자들이 말하는 에어로바이옴(aerobiome), 곧 공기 생물군계는 우리가 호흡하는 대기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생명체가 이동하고 머무는 서식지임을 뜻한다.

추천사, 7쪽.



#과학 #역사 #에어로바이옴 #공중생물계 #칼_짐머 #생물학 #저술가

칼 짐머는 과학을 역사스럽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책의 제목만 보면 본명 '과학책'이지만, 이 책에는 '에어로바이옴', 공중 생물계의 역사가 담겨 있다. 고대에는 사람들이 공기를 어떻게 여겼는지,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어준다. 그래서 책을 쭉 따라가다보면 마치 에어로바이옴의 모든 것을 알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631쪽의 두툼한 두께를 자랑한다. 쉽게 펼쳐들 수 없을 정도의 벽돌책이지만, 내용을 매우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다. 그의 이전 작품인 "웃음이 닮았다"(2023, 사이언스북스)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 책도 800쪽이 넘는 무지막지한 분량을 자랑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통해 쉽게 책 속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칼 짐머는 우리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https://blog.naver.com/hun371/223259978693


이 책은 소도시 마운트버넌에 있는 '스캐짓 밸리 합창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프롤로그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이 책의 출발점이 바로 코로나 19 팬데믹이어서다. 저자는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 그들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빠져들 수 있는 소재로 우리의 이웃을 선택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에 왜 그토록 큰 혼란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차근차근 밝혀 나간다. 그 과정이 마치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을 보는 것만 같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은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스캐짓 밸리 합창단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공기를 다룬 인간의 역사'에 관해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코로나 19 팬데믹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1만 년 전 농경의 시작부터 도시의 성장과 산업 혁명을 지나 21세기의 거대 도시와 파괴된 야생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라는 종의 급격한 부상 과정에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적응해 온 공기 중 생명체의 심오한 역사에 귀속되는 사건이다."(31쪽)


#공기의역사 #파스퇴르 #콜레라 #결핵 #근대의망령


1부에서는 공중생물학의 탄생까지 공기의 역사를 다룬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사람들은 악취가 나는 공기가 질병을 유발한다고 믿었다. 미아즈마(Miasma)는 고대 그리스어로 '오염', '더러움'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오염된 나쁜 공기를 흡입하면 질병에 걸린다는 의학 이론이다. 이 이론은 중세 흑사병 때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쳐 의사들이 새 부리 모양의 가면 속에 향료나 허브를 넣어 마스크처럼 썼던 모습이 나타났고, 19세기까지도 크게 유행했다. 우리가 잘 아는 '말라리아(Malaria)' 역시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라는 뜻에서 유래한 단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을 크게 바꾸기 시작한 것은 파스퇴르였다. 파스퇴르는 세균을 발견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세균이라는 미세한 생명체입니다."(70쪽)


그 덕분에 우리는 질병의 원인이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질병이 어떻게 전염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식수로 전염된다는 존 스노의 주장, 공기로 전염된다는 페텐코퍼의 주장, 세균으로 감염되지만 세균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공기로 전염되 룻 없다는 찰스 채핀의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기존의 의견은 밀려났고, 그렇게 여러 세대를 거치며 다양한 견해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까지 그대로 유지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찰스 채핀의 견해였다. 그는 공기로 감염이 전파된다는 것을 끝내 부정했다.

이 공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것을 부정한 채핀의 견해는 '근대의 망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공중생물학 #마이어 #웰스 #전쟁 #편견


2부에서는 갓 탄생한 공중생물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워지는가를 밝혔다.

하지만 소수의 과학자들은 여전히 공기 감염 전파의 가능성을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공기 속에 무엇이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많은 사람의 노력 끝에 '공중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가 탄생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했고, 잊혀갔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공중 생물학을 이끄는 저명한 과학자의 죽음이 연구 유산의 소멸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갓 탄생한 공중 생물학 분야가 두 분파로 쪼개지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공중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개인적 연구 성향이다. 특히 웰스는 자기 가족과도 잘 지내지 못할 정도로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매우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과학자의 성향이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상황 만큼이나 더욱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전쟁이었다. 공기로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나치 독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합국의 공포는 오히려 공기로 전염병을 일으키는 무기를 개발하고, 방어하는 쪽으로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기밀로 만들었다. 그래서 공중 생물학은 더욱 더 정치화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도 상황은 계속되었다. 바로 냉전이 그 배경이다. 미국과 소련은 생물학 무기라는 망령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 그 흔적은 2003년 부시 대통령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까지 이어진다.



#웰스 #웰스의후계자들


3부에서는 웰스의 끈질긴 연구와 그의 허망한 죽음을 묘사한다. 그리고 4부에서는 그의 연구를 이어받은 후계자들이 어떻게 공기 전파 감염이 이루어지는지 밝혀내는 과정을 그렸다.

웰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연구를 통해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공기 속에는 수많은 생명이 존재하며, 특히 공기로 전염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공기는 마치 거대한 동물원과 같았다."(412쪽)


하지만 문제는 이 연구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공기 속에 수많은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도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이고, 너무도 쉽게 잊힐 수 있는 '공기(空氣)'다. 비어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에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그래서 몇몇 과학자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다. 바로 전쟁과도 같은 '공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감염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쟁과 다르지 않았다. 증명되지 않는 과장된 공포가 오히려 그들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애써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플루엔자를 생물무기처럼 취급하면서 미국의 공중보건 시스템에도 악영향이 미쳤다. .... 수십 년 동안 방치된 상태에서 겪어온 문제를 무시했다. 심지어 팬데믹 대비 계획을 세우는 와중에....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주었다.(455쪽)


그래서 세계는 여전히 공기 감염 전파에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직시 #공기감염전파 #해법


작가는 이 문제의 해법으로 문제를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마치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에 대비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에볼라는 영화에 나오듯 세균 구름처럼 떠다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공포)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실제로 전파되는 방식을 '직시'함으로써 멈출 수 있었다."(478쪽)


작가는 공기 감염 전파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주문한다. 깨끗한 물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처럼 깨끗한 공기도 공공재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염병은 깨끗한 공기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상류층보다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하는 가난한 이에게 더 가혹하다. 공기 전파 감염이 경제적 불평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내기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있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책은 멀리 돌고 돌아 다시 '스캐짓 밸리 합창단'의 현재로 되돌아온다. 그들이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오랜 시간을 고통받고 난 후에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불완전하나마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 시점에야 WHO는 공식적으로 공기 감염 전파를 인정한다. 작가는 이런 장치들을 통해 그 전부터 이를 인정하고 대비했다면 우리 이웃의 일상이 안전하게 지켜졌을 수도 있을 것이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공기 감염 전파를 통해 공기와 '싸우려'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공기는 늘 존재해왔고, 우리는 그것과 싸우는 것보다 '공존'하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기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자유롭다. 그리고 인류는 때로 그 나쁜 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을 때 더 큰 재앙을 자초했다."(570쪽)



탁월한 견해다. 공기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그리고 그것을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공기 속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몸 속에도 수많은 미생물계가 존재한다. 공기를 통해 우리 몸에 도움이 되는 이런 미생물들을 들이마실 수 있다면 어떨까. 도시에 숲이나 공원을 조성하는 것처럼, 치유의 공기를 도심 곳곳에서 제공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몸은 더욱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시의적절한 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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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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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_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홍진기, 어크로스, 2026, 초판1쇄, 151쪽)

사고외주

#AI #인공지능 #사고외주 #똑똑한무능함 #교육 #홍진기 #학생 #보고서 #어크로스


"당신은 결과에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6장)




AI는 이제 더이상 가까운 미래가 아니다. 우리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AI를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보다, 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만큼 AI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른다. 모든 새로운 기술이 그렇듯,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편리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손글씨가 사라졌듯,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전화번호부가 사라지듯 분명 AI도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갈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교실에서도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학생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주로 AI를 사용한다. 심지어 이미지로 찍은 텍스트마저 AI가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학생들은 인공지능에 텍스트를 입력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정말 편리하다. 학생의 질문에, 요구에 AI는 아주 빠른 속도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과정이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보자면, 논술 시간에 2페이지 분량의 1000자 내외의 글을 읽고 스스로 요약해보는 학생활동을 제시하였다. 대다수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형광펜으로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치면서 읽는다. 하지만 아주 일부 똑똑한 아이들은 태블릿을 꺼낸다. 해당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고, AI에게 요구한다. "요약해줘"


결과물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스스로 읽고 요약한 학생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읽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밑줄 친 문장이 사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반면에 AI에게 요구한 학생은 5초만에 요약을 마친다. 내용 정리도 완벽하다. AI가 써준 결과값을 보고 그대로 교재에 옮겨적는다. 다른 학생들이 20분 동안 끙끙대며 한 작업을 1분만에 끝내고 유튜브를 보며 쉰다. 누가 더 똑똑한가. 누가 더 요즘 시대에 적합한 인재인가.


#생각 #사고외주 #똑똑한무능함



책 표지에는 휴대폰을 내려 놓은채 팔장을 낀 석고상이 등장한다. 나는 이것이 '생각'을 멈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홍진기 교수는 위의 두 학생 중 전자는 스스로 생각해 결과물을 내는 학생으로 본다. 반대로 후자의 학생은 "사고외주", 즉 생각 과정을 AI에게 맡겼고 결과물로 나온 매끄럽고 완벽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을 "똑똑한 무능함"이라 평가한다. 즉, 저자는 "생각"을 AI에게 맡기는 것이 매우 큰 문제라고 본다. 사고 과정 없이 나온 결과물은 결국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똑똑해보이는 결과물을 제출했더라도, 결국 그 결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말 그대로 똑똑해 보이는 무능함일 뿐이다.


#뇌가소성 #치명적


저자에 따르면 이 문제는 나이든 사람보다 학생과 같은 젊은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라 한다.


"뇌는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의 모양대로 자신을 다시 설계하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오래 붙잡고 씨름할 때 그 사고의 경로는 신경망의 고속도로처럼 단단해지고, 자꾸 해결을 외부에 맡길 때 그 경로는 잡초가 무성한 폐도처럼 천천히 지워집니다."(21쪽)


말 그대로 뇌는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즉, AI에 사고 과정을 점차 맡기게 된다면 우리 스스로 사고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사고 과정을 충분히 거쳐 뇌가 단련된 성인이 아니라, 이제 막 사고 과정을 훈련하고 연습해야하는 젊은 학생들에게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저자는 AI의 사용을 '근육'과 '목발'로 비유한다. 이미 탄탄한 사고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는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근육'이 되어줄 수 있지만, 사고 과정 자체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목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발을 사용해본 사람은 아마 쉽게 이해할 것이다.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이 반대쪽에 비해 상당히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간 #차이


저자는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능력의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AI 도구는 전 세계적으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도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도구를 쓸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 능력이 2인 사람과 1.9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 그런데 AI가 인간의 능력을 두 배로 증폭시켜주는 수준이라면 능력 2는 4가 되고, 1.9는 3.61이 됩니다. ... 하지만 증폭 효과가 열 배, 백 배로 커질수록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41쪽)


AI가 인간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도구로서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면, 결국 달라지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벌어집니다. 이 도구를 온전히 자신의 성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 도구에 의존해 자신의 능력 자체를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봐야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간의능력 #문제정의능력 #메타인지능력 #신체경험


그렇다면 저자는 AI시대 가장 중요한 인간의 능력으로 무엇을 꼽았을까. 문제 정의 능력, 메타 인지 능력, 신체 경험이다.


AI는 답을 빠르게 찾아내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인지할 수 없다. 즉, 인간이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AI에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즉,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메타 인지는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스스로 평가하는 능력이다. 즉, 자신의 능력으로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AI에게 얼마나 맡겨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포함해서다. 나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결국 내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 부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만들어나가면서 AI를 도구로 활용한 것만 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AI의 결과물을 그대로 내가 베낀 것이라면, 과연 그 결과물에 내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마지막은 신체 경험이다. 직접 만지고 실패하면서 다듬어 나가는 실제 경험이야말로 AI는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피지컬 AI가 로봇의 외피를 쓰고 완전한 인간의 신체를 갖게 된다면 또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자산이다. AI는 결코 그 경험을 가질 수 없다.


#결과를전달받는위치 #결과를해석하는위치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명확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AI에게 맡기는 것은 적정한 선에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할까. 답은 결국 '편안함'이다.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전해주는 결과를 그대로 믿고 따르면 얼마나 편한가! 얼마 전 읽었던 '편안함의 습격(2025)'이 떠오른다. 편안함에 안주하는 순간 우리의 능력은 서서히 바닥나기 시작한다. 편안함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없다면 새로움을 찾을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는 마이클 이스터의 조언이 귓가에 맴도는 듯 하다.

#집중력 #디지털디톡스 #불편함

저자는 디지털 기기가 많아진 지금, 학생들이 더욱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부해야할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메세지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니 당연히 바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잠시 디지털 기기 사용을 멈추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AI의 빠른 답변을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빠르게 답을 찾는 것에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불확실성을 견디고 향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것이 익숙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멍하니 앉아 상대를 기다리는 여유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성냥개비로 탑을 쌓거나 휴지로 각종 동물을 접곤 했다. 지금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그런 마음의 여유를 느낄 기회조차 없지 않은가.


"뇌가 불편해지는 경험, 예측이 어긋나는 경험,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83쪽)


대표적인 예가 여행이라고 한다. 낯선 곳에 도착하는 경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험이 우리에게는 매우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경험하기 가장 최적의 조건이 여행이라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글쓰는 과정 자체가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해서 상대에게 전달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내 생각의 오류 또는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이든 말이든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해보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논술 수업 시간에 홀로 글을 쓰는 것보다 말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명확한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 #비효율


"인간의 고유함은 대부분 이런 비효율 속에서 탄생합니다."(133쪽)


조금은 꼰대 같은 생각이라고 느껴지긴 하지만,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AI를 사용하는 순간에도 이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AI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은 그것을 도구로서 선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읽은 '골드휴먼(2026)'의 내용이 떠오른다. 그 책의 저자는 이미 오랜 세월 내공을 쌓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은 당연히 AI를 자기 수족처럼 부릴 줄 알았다. 목적이나 방향,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가 분명했다. AI의 편리함에 자기 삶이 흔들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AI를 사용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인간의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서 그런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홍진기 교수는 젊은 세대나 학생을 향해 AI 사용을 멈출 것을 권했다. AI가 주는 편리함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또는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두 책 모두 나 같이 적당한 나이에 속한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한 가르침을 준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AI의 편리함이 주는 위험함을 학생들에게 경고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학생들이 이미 경험한 편리함으로부터 멀어져 고통스러운 훈련 과정으로 돌아오려고 할 지 모르겠다.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 학생이 스스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멘트는 너무 '꼰대'의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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