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
정인경 지음 / 이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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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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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_더 나은 사회공동체를 위한 과학사 교과서(정인경, 이음출판사, 2026, 초판 1쇄, 216쪽)

과학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추천대상: 이과를 전공하고자 희망하는 학생, 그리고 과학이 실용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 믿고 있는 모든 사람들.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라 여성이 공부를 많이 하면 에너지를 다 써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가설"

"남성은 신체가 우월한 사냥꾼, 여성은 가냘픈 채집자에 어울린다는 가설"

→ 과학은 과연 가치중립적인가??



#정인경 #과학저술가 #과학사학자 #정인경의과학읽기 #이계절에새책

"과학 공부를 왜 하는 것일까?"(11쪽)


나는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좋아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도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과학사 관련 교과서를 저술한 경험도 있고, 과학 공부를 왜 하는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교사로서 이 책의 내용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저자는 매우 친절한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느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갈릴레오였다면? 그 시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갈릴레오처럼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간절했던 마음이 무엇일까를 한번 상상해 보세요."(87쪽)


사실 이번 책을 통해 저자 정인경을 처음 알았다. 그녀를 소개하는 첫 단어가 '과학저술가'라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과학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과학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학교에서 만났던 이과 여학생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하거나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저자의 주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언급하는 소재와 내 관심사가 같으면 괜시리 인정받은 기분이었고, 책에서 소개하는 다큐, 영화, 책들은 모두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쓴 다른 글과 책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녀의 대표 저서는 <뉴턴의 무정한 세계>, <내 생의 중력에 맞서>, <과학을 읽다> 등이 있고, 한겨레 신문에 연재한 <정인경의 과학 읽기>도 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1장 #생각하는인간의탄생 #달력


1장에서는 '과학이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 예시로 소개한 것이 바로 '달력'이다. 너무 반가웠다. 2년 전부터 주제 융합 수업으로 '달력 들여다보기'를 준비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대로 나는 인문과 이공의 융합 사례로 가장 삶에 밀접한 도구가 달력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저자와 같은 생각의 가닥을 따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좌절감도 느꼈다. 저자는 역시 과학 전공자였다. 내가 달력으로 수업한 내용과는 차원이 다른 저자의 설명을 읽었을 때,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까 생각했다. 과학사 공부가 부족했다. 분명 내가 접할 수 있는 논문과 도서도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수업을 할 기회가 없지만, 만약 이 책을 그때 만났더라면 조금은 더 세련된 수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까지 들었다.


여하튼, 1장에서 저자가 전하는 핵심 메세지는 "과학도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태양력에 익숙한 시간 체계에 살고 있기에 마야에서 사용하던 달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낯설게 본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 사례를 통해 과학이 객관적 사실만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2장 #철학자의위대한질문 #탈레스 #과학의시작 #자연과학 #질문


2장에서는 '과학적 통찰은 세계에 관한 질문에서 나오며,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그래서 과학이 매우 정치적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리스 철학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현상을 합리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탈레스를 '과학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과학적 사고(합리적 사고)는 신화적 사고와 달리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과정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신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인간에 의한 해석을 시도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즉, 이와 같은 과학적 사고를 통해 신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본다. 탈레스는 어떻게 절대적 신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발전하고 있었던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즉, 과학적 사고의 토양이 민주주의였다는 것이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신의 권위를 빌려 통치하던 왕을 쫓아내고 다양한 정치체제를 경험했어요. ... 만물을 창조하고 질서를 부여한 신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인간이 스스로)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72쪽)


이 책의 제목이 어떤 맥락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과학은 민주적 토양에서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의 자연과학(철학)이 발달하고 있는 경험처럼 말이다.



#3장 #과학혁명은정치혁명으로 #과학혁명 #학문적기술자 #뉴턴 #정치혁명 #로크 #사회계약설


3장에서는 '과학혁명이 정치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갈리레오와 같은 과학계의 선구자들은 신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 사고를 보여주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발견을 대중과 공유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문적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저자는 과학혁명이 위대한 선구자의 지식 체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위대한 선구자의 발견을 대중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기여한, '잘 알려지지 않은 기술자'들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적 기술자들은 이른바 '선구자의 발견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대표적으로 뒤러, 파라켈수스, 비링구초, 아그리콜라, 스테빈, 레기몬타누스, 길버트, 팔리시가 있는데, 이 이름들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교과서에 실려야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과학사 교과서 또는 이 책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과학적 설명을 정의하는 문장이 나오는데, 나는 이 부분에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과학은 신화와 역사, 소설과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이면서도 얼마든지 비판과 성찰을 받아들이는 학문이었다.


"과학은 진리로 군림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작동하면서 최선의 지식을 제공했습니다. 과학혁명은 사실, 가설, 법칙, 증거 등의 새로운 언어와 연구 방식을 제시하고, 과학을 믿을 만하면서 동시에 해체 가능한 지식으로 만든 역사적 사건입니다."(122쪽)


나는 이 문장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필요한 학문이다.


로크의 사회계약설도 자연과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아 등장했다고 한다. 과학혁명은 신의 권위를 빌려 신민을 지배하던 절대왕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고,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과학혁명이 정치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 덕분에 뉴턴과 로크, 볼테르와 디드로가 이 시기에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사회계약설도 합리적 사고의 결과물이기에 '믿을 만한 이론이면서 동시에 해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즉, 사회계약설이 절대적인 진리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해체하고 새로운 해석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해석을 최근에 루크 켐프의 <골리앗의 저주>(2026)에서 읽었다. 어쩐지 그 책의 주장과 맥락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따르면, 국가는 사회계약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골리앗(독재 권력)'이었다. 사람들은 그 골리앗(국가)을 스스로 원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너뜨리려 투쟁하는 대상이었다.

https://blog.naver.com/hun371/224370523713


#4장 #기술진보의피해자 #여성 #젠더 #식민지배 #산업혁명


4장에서는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신화'의 헛점을 파헤친다. 과학혁명과 정치혁명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럽을 너머 전세계에 전파된 과학은 이제 더 이상 합리적 사고의 전형이 아니었다. 일종의 '신화'가 되어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졌고, 소외된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여성과 인종, 식민지배와 산업화다. 과학혁명을 통해 등장한 근대 과학은 그 당시 유럽 사회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과학은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설명하는데 동원되었으며, 인종차별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 흔적은 아직도 현재까지 남아 있다. 과학이 사실만을 추구하며, 가치중립적이라는 생각은 일종의 '신화'가 되어 버렸다. 과학을 정치적 수단으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들은 과학으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4장은 젠더 불평등, 식민지 근대화론, 산업혁명과 차티스트 운동을 다룬다. 과학기술 발전이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과학이 발전해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5장 #21세기그너머의세상을상상하며 #현대 #미래 #시민과학 #기술철학 #공익을위한과학 #연구윤리 #과학민주화


5장에서는 현대 과학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다. 20세기 이후 과학기술은 사회적 영향력이 급격히 증가한 시기다. 대표적 사례는 원자폭탄으로, 과학자의 연구 과정에 사회적 책임이 더욱 엄중히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다. 과학의 상업화와 전쟁으로 인해 변질된 과학기술 연구를 회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과학자의 에토스(가치와 규범)"을 제시하는데, 과학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보고 있다.


"과학의 에토스는 성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과학자 사회에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과학적 양심 같은 것이었어요. 머턴은 이러한 과학의 에토스를 보편주의, 공유주의, 이해 무관심, 조직된 회의주의로 함축해서 정리했습니다."(182쪽)


저자는 자본과 국가주의에 잠식되고 있는 과학을 회복시키기 위해 '공익을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 과학을 활성화하여 과학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과학 연구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삶을 억압하고 수탈했던 과거 산업혁명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 사회에서는 기술이 삶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기술철학'이다. 이에 따르면 기술 발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미래 예측보다 철학이 필요하다."(198쪽)


결국 돌고돌아 다시 철학이다. 과학도 결국 인간이 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AI가 전세계를 집어삼키더라도 결국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AI의 사용에 앞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방법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덧, 과학이 정치적이라는 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비록 과학의 지식 체계와 이론에 대해 아는 것은 부족하지만, 과학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잡는 인문학적 성찰 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다만, 최근까지 AI를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홍진기의 <사고외주>(2026)를 걱정만 하고 있었다.(사고외주는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AI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아래 서평을 참고하시길..)


https://blog.naver.com/hun371/224326089427


토론 수업 시간, 학생들은 그 토론 논제를 AI에게 그대로 주고 찬성과 반대 주장과 근거, 심지어 반박까지 그대로 물어본다. AI가 제시한 답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적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할 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쉽고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자기 입장을 정하고, 논제를 분석하여 주장을 세우는 과정을 쉽게 하면 학생이 스스로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온전히 AI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적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철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생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AI 활용 방안을 모두가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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