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의 저주 - 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
루크 켐프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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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골리앗의 저주_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 (루크 켐프, 까치, 2026, 초판 1쇄, 744쪽)



#인류사 #문명사 #붕괴 #회복


지금껏 '붕괴'를 주제로 다룬 인류사 책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재래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2005)" 정도를 읽어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인류 절멸(붕괴 이후 최악의 상황)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추론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란 생각이다. 이 책은 다른 인류 문명사를 다룬 책들에 비해 매우 참신하고 충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어서다.


저자는 국가와 문명의 탄생보다 '붕괴'에 더 관심을 보인다. 저자는 무려 "지난 5,000년에 걸친 300개국 이상의 국가"(35쪽)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역사상 많은 국가와 문명이 반복적으로 '붕괴'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하지만 이 붕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끝(종말)이 아니다. 국가나 사회가 붕괴하더라도 삶은 계속 이어졌고, 기존의 상처를 '회복'할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살피는 성찰의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붕괴를 거친 사회는 더욱 진화한다. 저자가 국가의 탄생보다 붕괴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붕괴'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거대한 위기, 즉 인류 절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저자는 '호모 솔루스'라는 표현을 쓰는데, 현생 인류가 여러 인간종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종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 단어를 통해 우리가 다른 인종들처럼 절멸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충분히 멸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골리앗 #국가 #문명 #구심력 #원심력 #진화적자멸 #파멸의나무


저자는 '골리앗'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와 '문명'의 형태를 구분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국가(골리앗)는 일종의 보호 갈취 사업자다.(내가 한국사에서 후삼국의 성립을 가르칠 때 호족이 조폭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는데, 그것과 너무 비슷한 표현이라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안에 있는 악한 본성에 따라 타인을 이용하고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괴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골리앗이란 어떤 개인들이 다른 개인들을 지배하여 에너지와 노동력을 통제하는 위계구조의 집합이다."(19쪽, 서론)


반면에 '문명'은 평등, 민주, 혁신, 복지, 행복이라고 보고있다. 저자는 인류사를 상류층이나 지배자의 시선이 아닌 일반인의 관점에서 문명을 바라보고 있다. 매우 진보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국가(골리앗)와 문명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와 문명을 동일시하는 관점은 분명히 '착각'이라고 1장에서 밝힌다.


※ 1부의 내용은 켄트 플래너리, 조이스 마커스의 "불평등의 창조"(2018)와 매우 유사하다. 이 책에서는 불평등은 평등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고 '창조'된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루크 켐프는 "골리앗의 저주"에서 홉스의 자연상태가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켄트와 조이스의 "불평등의 창조"에서는 루소의 사회계약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유사하다.


저자는 '1부 여명과 종말'에서 기록 이전의 과거(선사 시대)에 있었던 붕괴 사례를 고고학적으로 분석하여 붕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인류에게 매우 이로운 영향을 가져온 사례가 있었음을 밝힌다. 골리앗(국가, 권력)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상황에서 잘 등장하며, 인류의 삶에 폭력과 전쟁이라는 문제를 가져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골리앗이 등장하는 힘과 그것을 붕괴시키려는 힘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다. 국가의 탄생만큼이나 붕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두 힘을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이해했다.




구심력은 골리앗(국가, 권력)이 등장하는 힘이다. 공(인류)을 통제하기 위해 안쪽으로 끊임없이 잡아당긴다. 하지만 원심력(붕괴, 이탈하려는 힘)도 만만치 않다. 골리앗의 지배가 강해질수록 이 지배를 무너뜨리고 이탈하려는 힘도 강하게 나타난다. 역사 기록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 두 힘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인류는 두 힘 중에 당시 상황에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힘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수렵채집인으로 살아가거나 골리앗의 통제를 받는 농경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제2부와 3부에서는 역사(기록) 속에 등장한 제국(골리앗)의 사례를 분석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골리앗은 점점 진화했다. 공을 잡아당기는 끈을 점점 더 굵고 강력하게 만들어냈던 것이다. 강력한 구심력을 가진 골리앗은 이제 이탈하려는 인류를 점점 더 옭아맸고, 더욱더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골리앗은 반드시 붕괴로 이어지는 근원적인 '저주'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점차 기술적, 경제적 통제 장치를 강화하면서 점차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 결과 현대에는 '실리콘 골리앗'이라 불리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전 세계를 집어 삼켜 버렸다. 이 골리앗은 이제 '인류 절멸'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정도의 수준까지 진화한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진화적 자멸'의 단계에 이르렀다.



골리앗은 여러 요인(촉진제, 본성)에 의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근원적 저주(위계구조, 불평등, 전쟁) 때문에 덫(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골리앗이라는 "파멸의 나무"가 더 크게 자랄수록 인류는 절멸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골리앗죽이기 #저주선택하기 #붕괴


"골리앗이 출현하는 이유와 골리앗이 덫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하면, 골리앗과 관련한 역사의 반복을 막을 개입 방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568~9쪽, 최종전)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골리앗이 인류를 절멸로 내 몰기 전에 그를 죽일 방법을 역사 속에서 찾은 것이다. 해결책은 미래의 왕 '다윗'이 되는 것이다. 작은 돌이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던져 거대한 실리콘 골리앗에 작은 균열이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골리앗을 죽이는 길이고, 골리앗의 근원적 저주를 이용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전략이며, 궁국적으로는 '붕괴'를 선택해 다시 평등하고 자유로운 문명을 재건하는 길로 들어서는 방법이다.


청동기 문명의 붕괴 이후 찾아온 암흑 시대가 고전기 그리스 문명을 꽃피웠던 것처럼,

로마의 붕괴가 유럽을 대항해 시대, 산업혁명과 같은 혁신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처럼,

흑사병의 창궐이 노동의 가치를 높이고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 수 있었던 것처럼,

제1, 2차 세계 대전이 불평등 지수를 낮추고 권력의 분권화를 이끌어냈던 것처럼,


'붕괴'는 어쩌면 AI와 자본주의 수탈 체제, 핵무기로 무장한 실리콘 골리앗의 지배를 받는 현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정의실현 #다윗 #진정한엘리트


저자는 "23장.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정의를 실현하라"(593쪽), 맺음말(609쪽)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다음은 내가 이 부분에서 가장 깊이 공감한 부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엘리트이다. 진정한 엘리트는 배관공, 미화원, 간호인, 연구자, 의사, 교사 등 특정한 과업과 직무에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다.(권력자, 지배자가 아니라) ... 인류의 지식을 이용해 우리의 자유와 복리를 향상시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604쪽)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 때이다."(625쪽)


저자는 엄청난 양의 '붕괴' 데이터를 분석하여 '골리앗'의 문제를 발견했고 그 해법도 함께 찾았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골리앗을 물리치는 '다윗'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책이 두루 널리 읽혀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찾아낸 사실은 "파멸의 주범들"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매우 소중한 역사적 교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할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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