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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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_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홍진기, 어크로스, 2026, 초판1쇄, 151쪽)

사고외주

#AI #인공지능 #사고외주 #똑똑한무능함 #교육 #홍진기 #학생 #보고서 #어크로스


"당신은 결과에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6장)




AI는 이제 더이상 가까운 미래가 아니다. 우리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AI를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보다, 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만큼 AI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른다. 모든 새로운 기술이 그렇듯,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편리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손글씨가 사라졌듯,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전화번호부가 사라지듯 분명 AI도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갈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교실에서도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학생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주로 AI를 사용한다. 심지어 이미지로 찍은 텍스트마저 AI가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학생들은 인공지능에 텍스트를 입력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정말 편리하다. 학생의 질문에, 요구에 AI는 아주 빠른 속도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과정이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보자면, 논술 시간에 2페이지 분량의 1000자 내외의 글을 읽고 스스로 요약해보는 학생활동을 제시하였다. 대다수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형광펜으로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치면서 읽는다. 하지만 아주 일부 똑똑한 아이들은 태블릿을 꺼낸다. 해당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고, AI에게 요구한다. "요약해줘"


결과물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스스로 읽고 요약한 학생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대로 읽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밑줄 친 문장이 사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반면에 AI에게 요구한 학생은 5초만에 요약을 마친다. 내용 정리도 완벽하다. AI가 써준 결과값을 보고 그대로 교재에 옮겨적는다. 다른 학생들이 20분 동안 끙끙대며 한 작업을 1분만에 끝내고 유튜브를 보며 쉰다. 누가 더 똑똑한가. 누가 더 요즘 시대에 적합한 인재인가.


#생각 #사고외주 #똑똑한무능함



책 표지에는 휴대폰을 내려 놓은채 팔장을 낀 석고상이 등장한다. 나는 이것이 '생각'을 멈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홍진기 교수는 위의 두 학생 중 전자는 스스로 생각해 결과물을 내는 학생으로 본다. 반대로 후자의 학생은 "사고외주", 즉 생각 과정을 AI에게 맡겼고 결과물로 나온 매끄럽고 완벽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을 "똑똑한 무능함"이라 평가한다. 즉, 저자는 "생각"을 AI에게 맡기는 것이 매우 큰 문제라고 본다. 사고 과정 없이 나온 결과물은 결국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똑똑해보이는 결과물을 제출했더라도, 결국 그 결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말 그대로 똑똑해 보이는 무능함일 뿐이다.


#뇌가소성 #치명적


저자에 따르면 이 문제는 나이든 사람보다 학생과 같은 젊은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라 한다.


"뇌는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의 모양대로 자신을 다시 설계하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오래 붙잡고 씨름할 때 그 사고의 경로는 신경망의 고속도로처럼 단단해지고, 자꾸 해결을 외부에 맡길 때 그 경로는 잡초가 무성한 폐도처럼 천천히 지워집니다."(21쪽)


말 그대로 뇌는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즉, AI에 사고 과정을 점차 맡기게 된다면 우리 스스로 사고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사고 과정을 충분히 거쳐 뇌가 단련된 성인이 아니라, 이제 막 사고 과정을 훈련하고 연습해야하는 젊은 학생들에게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저자는 AI의 사용을 '근육'과 '목발'로 비유한다. 이미 탄탄한 사고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는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근육'이 되어줄 수 있지만, 사고 과정 자체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목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발을 사용해본 사람은 아마 쉽게 이해할 것이다.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이 반대쪽에 비해 상당히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간 #차이


저자는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능력의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AI 도구는 전 세계적으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도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도구를 쓸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 능력이 2인 사람과 1.9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 그런데 AI가 인간의 능력을 두 배로 증폭시켜주는 수준이라면 능력 2는 4가 되고, 1.9는 3.61이 됩니다. ... 하지만 증폭 효과가 열 배, 백 배로 커질수록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41쪽)


AI가 인간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도구로서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면, 결국 달라지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능력 차이에서 벌어집니다. 이 도구를 온전히 자신의 성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 도구에 의존해 자신의 능력 자체를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봐야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간의능력 #문제정의능력 #메타인지능력 #신체경험


그렇다면 저자는 AI시대 가장 중요한 인간의 능력으로 무엇을 꼽았을까. 문제 정의 능력, 메타 인지 능력, 신체 경험이다.


AI는 답을 빠르게 찾아내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스스로 인지할 수 없다. 즉, 인간이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AI에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즉,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메타 인지는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스스로 평가하는 능력이다. 즉, 자신의 능력으로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AI에게 얼마나 맡겨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포함해서다. 나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결국 내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 부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만들어나가면서 AI를 도구로 활용한 것만 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AI의 결과물을 그대로 내가 베낀 것이라면, 과연 그 결과물에 내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마지막은 신체 경험이다. 직접 만지고 실패하면서 다듬어 나가는 실제 경험이야말로 AI는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피지컬 AI가 로봇의 외피를 쓰고 완전한 인간의 신체를 갖게 된다면 또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자산이다. AI는 결코 그 경험을 가질 수 없다.


#결과를전달받는위치 #결과를해석하는위치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명확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AI에게 맡기는 것은 적정한 선에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할까. 답은 결국 '편안함'이다.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전해주는 결과를 그대로 믿고 따르면 얼마나 편한가! 얼마 전 읽었던 '편안함의 습격(2025)'이 떠오른다. 편안함에 안주하는 순간 우리의 능력은 서서히 바닥나기 시작한다. 편안함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없다면 새로움을 찾을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는 마이클 이스터의 조언이 귓가에 맴도는 듯 하다.

#집중력 #디지털디톡스 #불편함

저자는 디지털 기기가 많아진 지금, 학생들이 더욱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부해야할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메세지를 모두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니 당연히 바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잠시 디지털 기기 사용을 멈추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AI의 빠른 답변을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빠르게 답을 찾는 것에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불확실성을 견디고 향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것이 익숙했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멍하니 앉아 상대를 기다리는 여유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성냥개비로 탑을 쌓거나 휴지로 각종 동물을 접곤 했다. 지금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그런 마음의 여유를 느낄 기회조차 없지 않은가.


"뇌가 불편해지는 경험, 예측이 어긋나는 경험,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83쪽)


대표적인 예가 여행이라고 한다. 낯선 곳에 도착하는 경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험이 우리에게는 매우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경험하기 가장 최적의 조건이 여행이라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 글쓰는 과정 자체가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해서 상대에게 전달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내 생각의 오류 또는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이든 말이든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해보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논술 수업 시간에 홀로 글을 쓰는 것보다 말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명확한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 #비효율


"인간의 고유함은 대부분 이런 비효율 속에서 탄생합니다."(133쪽)


조금은 꼰대 같은 생각이라고 느껴지긴 하지만,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AI를 사용하는 순간에도 이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AI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은 그것을 도구로서 선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읽은 '골드휴먼(2026)'의 내용이 떠오른다. 그 책의 저자는 이미 오랜 세월 내공을 쌓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은 당연히 AI를 자기 수족처럼 부릴 줄 알았다. 목적이나 방향,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가 분명했다. AI의 편리함에 자기 삶이 흔들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AI를 사용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인간의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서 그런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홍진기 교수는 젊은 세대나 학생을 향해 AI 사용을 멈출 것을 권했다. AI가 주는 편리함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또는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두 책 모두 나 같이 적당한 나이에 속한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한 가르침을 준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AI의 편리함이 주는 위험함을 학생들에게 경고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학생들이 이미 경험한 편리함으로부터 멀어져 고통스러운 훈련 과정으로 돌아오려고 할 지 모르겠다.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 학생이 스스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멘트는 너무 '꼰대'의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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