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저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특징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바로 '반복'이었다.
"이 책을 쓰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반복'이라는 말이었다. 권력은 반복해서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했다. ... 시민도 반복해서 권력의 한계를 다시 그었다."(268쪽)
권력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하면, 시민이 그 권력을 밀어내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확고한 기준을 갖게 되었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 순간, 수많은 시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로 달려가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 확고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80년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복원의 과정은 그 확고한 기준을 마련하는 경험이자 기억이 되었다.
[특징 둘, 당시 사고방식과 심리를 살피다.]
"그들에게(시민)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교과서 개념이라기보다 훨씬 절박한 생활 문제였다. .... 1987년 시민에게는 민주주의의 가장 현실적인 얼굴이었다."(125쪽)
우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제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1987년 시민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결과 지향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다. 마치 1987년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는 것처럼 오해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시 수많은 시민에게는 대통령 직선제보다 더 큰 동력이 있었다. 바로 분노였다. 국가 폭력에 의해 이유없이 억압받지 않을 자유, 권력이 마음대로 사람을 잡아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우리는 아직 미래를 알지 못하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시위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당시 권력자들의 의도와 함께 당시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특징 셋,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다.]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들은 대개 '완전한 승리'보다 '불완전하지만 결정적인 전진'의 형태로 나타난다."(130쪽)
두 저자는 주요 일곱 장면을 소개하면서 성과와 함께 한계를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경험과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는 동시에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점들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어떻게 보완해 나갈 것인지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명확하다.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 기회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기회들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는 해방 직후 한반도 상황을 가장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능성이 열린 시대'. 지금이 딱 그런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드물게, 여러 길이 동시에 열려 있던 시간에 가까웠다. 그러나 바로 그만큼 충돌도 격렬했다. 모두가 새로운 나라를 말했지만,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합의가 없었다."(239쪽)
광장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진영간의 갈등이 격렬하게 발생하는 지금,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예전에는 다른 선진국의 제도와 방식을 따라가는 해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앞서 나가야 하는, 미지의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해방 직후,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전무했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 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무엇이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켰는지 자세히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