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 반대를 앞세워 손익을 셈하는 한국 정치
김민하 지음 / 이데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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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위 선택지내의 예고된 갈팡질팡. 양 끝단으로 더 분열될 반대의 정치를 넘는 진정한 무언가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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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문재인 정권에서 소득 주도 성장은 명확한 이론적·실천적 의제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이전 보수 정권에서 추진한 ‘낙수 효과’ 경제에 대한 ‘반대’의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소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 P228

코로나19를 핑계로 한 이러한 전반적 후퇴는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개혁 담론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소득 주도 성장과 분배 강화, 자산시장의 안정 등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정상적 상태’일 때만 거론할 수 있는 ‘정책적 액세서리’였던 것이다. 오히려 사회 안전망 강화와 분배 구조 개선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에 문재인 정권은 그동안 자신들이 적대하는 듯한(적폐 청산의 대상이었던) 기성의 주류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 P243

통치 권력은 하늘에 뜬 별과 같다. 어느 시기, 지구의 어느 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별의 배경은 해가 되기도 하고 달이 되기도 하지만, 각각의 관측 결과는 그 자체로 사실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지구에서 볼 때, 별의 위치를 확정하면 관측자의 위치를 정할 수 없게 되고, 관측자의 위치를 확정하면 별의 위치를 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별은 한자리에 그대로 있다. 통치 권력의 실체도 이와 같지 않을까? - P246

이 모든 것들이 ‘반대의 정치’라는 하나의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우리 정치의 문제를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상식과 합리’를 회복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그것은 ‘반대의 정치’라는 맥락을 간과한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상식과 합리’는 언제든지 ‘극단주의’로 실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근본적 해답일 수 없다. - P247

보수가 싫어 진보를 지지하다 실망하면 다시 보수를 지지하는 ‘반대의 정치’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정치의 초점을 소비자가 자기 이익에 맞춰 정치 세력이라는 상품을 선택 구매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소유를 바꾸는 일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이 실제로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 공동체를 경영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 P254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사례는 당장은 완벽한 해답처럼 보였던 것도 실제 현실에 적용하면 최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실패는 숙명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가 그 실패를 통해 좀 더 진전된 해법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 P255

같은 실패를 거듭 되풀이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앞서 거론한 해법이 사회운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사회 운동의 성과가 축적되고 실패의 사례가 퇴적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종종 ‘공론장’, ‘시민사회’ 등으로 불리는데,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단지 어떤 담론을 사고파는 시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공간’에는 다수의 시민이 개입하고 통제하면서 이를 ‘통치’의 영역에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하고 제출하며 이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 P258

통치와 참여의 긴장을 단순화해서 보자면 이런 구도로 정리할 수 있다. 통치 구조의 바깥에 있을 때는 통치를 상대로 모든 것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다. ‘참여’는 이 요구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하지만 통치 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참여’는 통치자를 상대로 제기되는 여러 압력 중 하나에 불과하다. (···) 통치 세력이 이러한 상충적인 요구를 조정하는 데 성공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려면 이 모든 요구로부터의 자율성 확보가 필요하다. 이때 대중의 ‘참여’ 요구는 통치 세력의 공간을 늘리기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된다. ‘의지’뿐 아니라 ‘구조’도 문제인 것이다. - P265

중앙과 지역이 줄탁동시 해야 한다. 즉, 참여민주주의를 통치 체계로 강제하는 정치 세력이 중앙과 지방 양쪽 모두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세력은 참여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구현된 이후에도 제도가 애초의 취지에 맞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제도의 수호자로서 자신을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파적 경쟁을 통해서 확대되고 강제되어야 한다. 즉, 현실의 진보 정치 그 자체가 실질적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269

이러한 상상을 통해 대안적 진보 정치가 현실 정치의 어떤 부분에 반대하면서 그 반대급부의 정치적 이득을 구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대안적 미래를 그 자체로 상상하는 일을 다시 중심에 놓을 수 있다면, 사회구성원 다수가 우리 사회에 대한 실질적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 행위를 당장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278

시험 문제를 누가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어떤 능력은 우대받고 어떤 능력은 평가절하 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평가의 결과가 ‘자격’ 부여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은 능력주의를 통해 구현된 세상이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귀족’의 출현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자체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능력주의의 세상은 그 기준, 즉 출제자의 자격이나 시험 문제의 적합성을 두고 끝없는 분쟁이 촉발되는 곳일 수밖에 없다. - P282

‘진자 운동’의 논리에 따라 ‘민의를 그대로’가 불가능하니 검증된 엘리트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다수의 주장이 된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누구에게 권력을 위임해야 세상이 좋아질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이 통치자가 된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겠는가’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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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 정치’에서는 대상을 반대하기 위한 논리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할 뿐, ‘반대’라는 맥락 내의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P147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은 민주당 권력이 기득권인 금융 권력과 결별하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에게 사회문화적 정의를 강요(?)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 백인 기득권의 퇴행적 저항이었다. - P185

이런 점에서 여전히 주류의 통치 구조 자체는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적어도 ‘반대의 정치’는 오직 대립하는 양쪽이 서로를 반대하기 위한 조직 수단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반대의 정치’를 각 진영이 치열하게 전개했는데도 통치의 결과는 대세를 따르는 것으로, 사실상 같은 결과에 도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움직이는 진자의 축이며, 결국 ‘구조’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P200

민주주의의 여부는 단지 피통치자들의 목소리를 통치에 반영하는 것을 넘어, 체제의 원리로서 그러한 일을 보장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즉, ‘민주주의’라는 레토릭이 실제로 민주주의라는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혹은 미치고 있는가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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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음모론자들의 창궐은 제도적 한계나 교육의 미비가 아니라 정치적 맥락 그 자체에서 태동하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엘리트 정치에 속아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이 정치적 맥락의 핵심이고,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결의가 사람들을 음모론으로 이끄는 동력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음모론은 정치적 비주류들의 반감이 ‘정상’을 거부하는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볼 만하다. - P95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동반 성장은 주권자와 소비자의 정체성을 일체화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수인 것이 유리할 때는 ‘국민의 명령에 따르라’라거나 ‘손님은 왕이다’라고 하고, 부당한 이득의 정당화 등을 위해 소수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는 ‘피해자’를 자처하며 보상을 요구한다. - P96

이러한 대립 구도에는 이전에 등장한 권력을 비정상으로 규정해 자신을 ‘정상’인 존재로 삼자는 의도가 실려 있다. 이러한 진실을 사실상 실토한 것은 박근혜였는데, 그의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표현은 앞서 언급한 모든 ‘반대론’을 종합해 다시 그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 P108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미 ‘앞선 기득권’에 대한 반대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논란에도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냉정히 말해 양쪽에 대한 반대에 기초했다. 일본에 대한 반대와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가 그것이다. 민족주의와 시장주의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 지형도 이 구도에서 기원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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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공유하는 정치적 담론이란 서로 속이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치인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속이기 위한 의도이며, 이렇게 속은 것에 대한 복수라는 맥락에서만 설명된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통감하기 어령누 구조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 P70

정치윤리라는 대의명분을 떠나 순전히 손익 관계로만 본다면, 모두가 상대를 속이는 세상에서 정직해야 한다는 원칙의 고수는 손해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상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없고, 현실을 빌미로 이득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제재는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선거는 누가 얼마나 잘 속이느냐의 게임이고, 따라서 댓글 조작은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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