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에서 음모론자들의 창궐은 제도적 한계나 교육의 미비가 아니라 정치적 맥락 그 자체에서 태동하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엘리트 정치에 속아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이 정치적 맥락의 핵심이고,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결의가 사람들을 음모론으로 이끄는 동력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음모론은 정치적 비주류들의 반감이 ‘정상’을 거부하는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볼 만하다. - P95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동반 성장은 주권자와 소비자의 정체성을 일체화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수인 것이 유리할 때는 ‘국민의 명령에 따르라’라거나 ‘손님은 왕이다’라고 하고, 부당한 이득의 정당화 등을 위해 소수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는 ‘피해자’를 자처하며 보상을 요구한다. - P96

이러한 대립 구도에는 이전에 등장한 권력을 비정상으로 규정해 자신을 ‘정상’인 존재로 삼자는 의도가 실려 있다. 이러한 진실을 사실상 실토한 것은 박근혜였는데, 그의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표현은 앞서 언급한 모든 ‘반대론’을 종합해 다시 그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 P108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미 ‘앞선 기득권’에 대한 반대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논란에도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냉정히 말해 양쪽에 대한 반대에 기초했다. 일본에 대한 반대와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가 그것이다. 민족주의와 시장주의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 지형도 이 구도에서 기원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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