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동에 대해 놀라운 통계적 사실들을 배우는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들은 내용을 말해줄 만큼 깊은 인상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세계관이 확실히 바뀐 건 아니다. 심리학 학습 여부를 알아보는 시험은 당신이 새로운 사실을 배웠는지 여부가 아니라 당신이 직면한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통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개별 사례에 대한 우리의 생각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인과적 설명이 덧붙여진 통계적 결과들은 비인과적 정보보다 우리의 사고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확실한 인과적 통계들조차 개인적 경험에 뿌리를 박고 있는 믿음이나 오랫동안 간직했던 믿음을 바꾸지는 못한다. 반면 놀라운 개별 사례들은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심리학 학습에 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따라서 일반인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한 행동에서 놀라운 점들을 발견함으로써 무언가를 배울 가능성이 더 높다. - P248

직관적 예측은 퇴행적이지 않아서 편향적이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하다. - P264

올바른 직관적 예측은 이러한 편향들을 제거하기 때문에 예측들은 참값을 과대평가할 가능성과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똑같을 수 있다. 편향되지 않은 예측을 할 때도 우리는 오류를 저지르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며, 높은 결과나 낮은 결과 중 하나만 선호하지 않는다. - P264

강력한 WYSIATI 규칙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갖고 있는 제한적인 정보가 마치 자신이 아는 전부인양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구할 수 있는 정보로 가장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만일 그것이 좋은 이야기라면 믿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아는 게 거의 없을수록, 즉 퍼즐에 비유하면 맞출 수 있는 조각의 숫자가 적을수록 오히려 정합적 이야기를 만들기 쉽다.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세상이 이해된다는 확신은, 무한대에 가까운 우리의 무지함을 애써 외면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안전한 반석 위에 세워진다. - P276

자신이 과거를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데서 착각의 본질은 그 싹을 틔운다. 이런 생각은 미래 역시 알 수 있다는 뜻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해한다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모른다. 과거든 미래든 말이다. - P277

일반적으로 사후확신 편향과 결과 편향은 위험 회피 성향을 확대하지만, 엄청난 도박으로 승리를 거머쥔 장군이나 기업가처럼 무책임한 위험 추구자들에게 분에 넘치는 보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운이 좋은 리더들은 과도한 위험을 감내한다고 해서 대가를 치르거나 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을 예상하는 재능과 예지력을 갖췄다는 호평을 받는다. 반면 그들을 의심했던 합리적인 사람들은 속 좁고 소심하며 나약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처럼 몇 가지 행운의 도박은 무모한 리더에게 예지력과 담대함이라는 후광의 왕관을 씌워주기도 한다. - P281

판단의 주관적 확신은 그 판단이 옳을 수 있다는 개연성의 논리적인 평가는 아니다. 자신감은 느낌이며, 이 느낌은 정보의 정합성과 정보처리의 인지적 편리함이 반영된 결과이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진지하게 인정해야 현명하지만, 높은 자신감을 피력한 사람은 자신이 머릿속에서 정합적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준다. 다만 그 이야기가 반드시 사실은 아니다. - P291

과거를 이해한다는 착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과신한다. - P300

시끄럽고 복잡한 환경에서 통계적 알고리즘은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들은 인간 판단보다 타당성이 낮은 단서들을 감지해내고, 그런 단서들을 활용해서 일정 수준의 정확도를 일관되게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누구에게라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런 불가능한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올바른 직관의 주장은 기껏 자기 기만적이거나 그보다 나쁜 태도에 불과하다. 만약 당신이 나의 이런 결론을 보고 놀란다면, 여전히 직관이 마술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는 다음 규칙을 기억하라. 환경에 안정적인 규칙성이 없다면 직관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 P318

계획 오류는 만연되어 있는 낙관적 편향의 징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상이 실제보다 더 관대하고, 우리가 가진 특성들은 더 우호적이며, 우리가 세우는 목표는 더욱 달성 가능하다고 여긴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이로 인해서 낙관적인 과신을 갖는다. 결정 결과에 낙관적 편향이 인지적 편향 중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낙관적 편향은 축복이자 위험이다. 당신이 낙관적 기질을 갖고 있다면 감사하는 동시에 경계하라. - P331

과신은 WYSIATI의 또 다른 징후이다. 우리는 어떤 양을 추정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보에 의존하고, 추정치를 타당하게 만드는 정합적 이야기를 만든다.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정보(아마도 몰랐기 때문에)를 허용하기란 불가능하다. - P338

불확실성의 객관적 인정은 합리성의 초석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위험한 환경에서 극단적인 불확실성은 아무 필요도 없다. 또한 걸린 게 많다면 자신이 그저 추측만 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인정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란 더욱 힘들다. 아는 척이 더 좋은 방법일 때도 잦다.
과장된 낙관주의를 뒷받침하는 감정적·인지적·사회적 요인은 가끔 우리가 무서운 결과를 알고 있으면 피했을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경제 분야에서 위험 투자자들이 판돈이 큰 도박에 아주 관심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그들은 단지 더 소심한 사람들보다 위험을 잘 모를 뿐이다. - P340

과신은 누그러뜨릴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시스템 1이 만든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주관적 확신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정합성 때문이지,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정보의 질과 양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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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2는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라고 믿지만 실상은 자동적인 시스템 1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나는 시스템 1을 시스템 2의 분명한 믿음과 의도적인 선택을 유발하는 중요한 출처인, 노력 없이 발생하는 인상과 느낌으로 묘사한다. 놀랍게도 이런 시스템 1의 자동적인 작용은 복잡한 사고 패턴을 창조하지만, 이보다 느린 시스템 2만이 질서정연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 사고를 구성할 수 있다. 또한 시스템 2가 시스템 1의 자유분방한 충동과 연상들을 압도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환경도 있다. - P33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모두 우리가 깨어 있을 때 활성화된다. 시스템 1은 자동으로 작동하고, 시스템 2는 편안한 보통 상태에서는 별 노력을 요하지 않고 역량의 일부만 가동한다. 시스템 1은 시스템 2를 위해서 인상, 직관, 의도, 느낌 등을 지속적으로 제안한다. 시스템 2의 승인을 받으면 인상과 직관은 믿음으로 바뀌고, 충동은 자발적 행위로 변한다. 실제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 시스템 2는 거의 혹은 전혀 수정 없이 시스템 1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느낀 인상을 믿고,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고 양호하다. - P39

시스템 1은 일상의 사건 처리에 매우 뛰어나고, 낯익은 상황에 대한 시스템 모델들도 정확하다. 단기적인 예측 역시 대부분 정확하고, 도전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민첩하고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시스템 1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갖고 있는데, 바로 ‘편향’이다. ··· 시스템 1은 가끔은 받은 질문보다 더 쉬운 질문에 대답할 때가 있고 논리와 통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시스템 1의 또 다른 한계는 바로 그 작동을 잠시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 P40

"이것이 사실이다!"라는 생각을 계속 유지할 경우 논리를 확인하기 어려워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충분히 심사숙고하는 수고를 기울이지 않는다. - P69

우리는 더는 마음이 한 번에 하나씩 일련의 의식적인 생각의 순서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상 기억의 작동 방식에 대한 현재의 시각에 따르면 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활성화시킨 생각이 단순히 다른 한 가지 생각만 일으키진 않는다. 더 많은 생각들을 활성화시키고, 다른 그 생각들은 다시 또 많은 다른 생각들을 활성화시킨다. 이렇게 활성화된 생각들 중 불과 몇 개만 의식 속에 남는다. 연상 기억이 하는 일은 대부분 조용하고, 의식적인 자아로부터 숨어 있다. 마음의 작동 메커니즘에 제한적으로만 접근한다는 개념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즉 우리는 실제로 안다고 느끼는 것보다 자신에 대해 훨씬 더 모르고 있다. - P79

단순한 노출 효과는 낯익음의 ‘의식적’ 경험에 따라서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효과는 반복되는 단어들이나 사진들이 매우 빨리 등장해 사람들이 그걸 봤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자주 제시된 단어나 사진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시스템 1은 시스템 2가 모르고 있는 사건에 관한 인상에 반응할 수 있다. 실제로 단순 노출 효과는 개인이 결코 의식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극일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 P101

급변하는 위협적인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유기체는 새로운 자극에 회피와 두려움을 보이면서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새로움을 의심하지 않는 동물의 생존율은 낮아진다. 그러나 새로운 자극이 안전하다면 처음에 보인 경계심을 낮추게 된다. 자이온스는 자극의 반복적인 노출 이후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 노출 효과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자극은 궁극적으로 안전을 알리는 신호이며, 안전은 좋은 것이다. - P102

행복한 분위기는 시스템 2가 능력에 미치는 통제력을 약화시킨다. 좋은 분위기일 때 사람들은 더 직관적이고 창조적이 되는 반면, 경계를 풀고 논리적인 오류에 빠져들 확률이 높아진다. 단순 노출 효과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관련성은 생물학적 의미를 갖는다. 좋은 분위기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으며, 주변 환경이 안전하고, 경계심을 풀어도 괜찮다는 신호이다. 나쁜 분위기는 일이 잘 되지 않고 있고, 위협이 존재할지 모르며, 경계심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인지적 편안함은 즐거운 기분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 P105

시스템 1의 주요 기능은 당신의 사적 세계의 모델을 유지하고 갱신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당신의 세계 속에서 정상적인 것을 보여준다. 이 모델은 동시에, 혹은 비교적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어느 정도 규칙성을 갖고 함께 일어나는 환경, 사건, 행동, 결과에 관한 생각들을 연결하는 연상에 의해 구성된다. 이 연결들이 형성되고 강화되는 가운데 연상 생각들의 패턴은 살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구조를 반영하게 되고, 그 구조는 현재에 대한 우리의 해석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우리의 기대도 결정한다. - P109

언어를 이해하는 시스템 1은 여러 범주들의 기준에 접근하며, 이 기준은 가장 일반적인 사례들뿐 아니라 타당성 있는 가치의 범주를 구체적으로 정한다. - P114

의식적인 의심은 시스템 1의 레퍼토리에 들어 있지 않으며, 그런 의심을 하려면 동시에 공존할 수 없는 해석들을 마음에 계속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불확실성과 의심은 시스템 2의 영역에 속한다. - P122

시스템 1은 현재 활성화된 생각들을 통합시키는 최상의 가능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뛰어나지만, 갖고 있지 않은 정보를 참작하지는 못한다.
시스템 1의 성공 기준은 창조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정합성이다.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데이터의 양과 질은 별 관련이 없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정보가 부족하면 시스템 1은 서둘러 결론 내리기 위한 기계로 작동한다. - P130

WYSIATI는 정합성뿐 아니라 우리가 어떤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인지적 편안함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우리가 빠르게 생각할 수 있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부분적인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오랫동안 우리가 합쳐 놓은 정합적 이야기는 합리적인 행동을 뒷받침해줄 만큼 충분히 현실적이다. - P133

사람들은 개연성 판단을 요구받을 때 사실상 다른 뭔가를 대신 판단해 놓고 자신들이 개연성을 판단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시스템 1은 어려운 목표 질문들에 접했을 때 이러한 움직임을 취한다. 단, 관련되고 더 쉬운 휴리스틱 질문의 대답이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그렇다. - P148

윌에게 눈으로 보이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행복감을 평가할 때 현재의 마음 상태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P155

‘적은 숫자의 법칙’은 우리가 가진 의심보다 확신을 선호하는 성향을 드러내 준다.
인간은 자신이 보는 것의 지속성과 정합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적은 표본에 대한 연구원들의 과장된 믿음은 후광효과, 즉 우리가 사실상 전혀 모르는 사람을 잘 알고 이해한다는 느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시스템 1은 여러 증거 조작들에 기초해 풍부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사실보다 앞서간다. 서둘러 결론 내리려는 기계는 적은 숫자 법칙을 쉽게 믿으려 할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보면 그것은 과도한 의미를 갖는 현실의 반영을 생산해낸다. - P171

연상 기계는 원인을 찾는다. 우리가 통계적 규칙성(statistical regularities)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기존과 다른 접근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통계적 시각은 당면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위에 집중하기보다는 사건을 그것 대신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과 연결시킨다. 다시 말해 특별한 어떤 것이 사건을 지금처럼 만들었다기보다는 운 때문에 많은 대안적 사건들 중 하필 그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 P172

당신이 받은 인상과 직관을 재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편향들에 빠지지 않게 경계감을 유지하는 게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서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면 그만큼 노력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 P191

아울러 가용성 폭포는 위험 등급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예산의 전반적 규모를 확대하는 효과를 낳음으로써 장기적으로 혜택을 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믿음과 태도를 이끄는 가용성과 감정 휴리스틱이 일반적으로는 올바른 방향을 향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편향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전문가들의 지식과 대중의 감정 및 직관을 아우르는 위험 정책들의 설계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 P209

고정관념은 우리 문화에서는 나쁜 단어로 간주되지만 나는 이 단어를 중립적 의미로 사용했다. 시스템 1의 기본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범주들을 기준과 전형적인 모범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 냉장고, 뉴욕 경찰관들을 생각할 때 기억 속에 이런 각각의 범주에 속한 하나 이상의 ‘일반적’인 구성원의 묘사를 간직한다. 범주들이 사회적 성격을 띨 때 이런 특정 방식의 묘사들은 고정관념이라고 불린다. 어떤 고정관념들은 치명적 오류를 갖고 있고, 적대적인 고정관념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심리적 사실은 피할 수 없다. 즉, 옳고 그른 고정관념은 모두 우리가 범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다.
고정관념을 반대하는 사회적 규범은 문명화되고 평등한 사회 창조에 크게 기여해왔다. 그러나 가치 있는 고정관념들을 무시하면 필연적으로 차선의 판단만 하게 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의도된 주장을 펼 때는 통상적으로 감정 휴리스틱에 의존한다. 우리가 선호하는 입장은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며, 우리가 반대하는 입장은 아무 혜택이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식의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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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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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히 가라앉는 것들. 그 속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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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떴다. 똑딱.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 돌았을 것이다. 또 눈을 감았다 떴다. 똑딱. 그건 딸이 어렸을 때 내게 알려준 거였다. 엄마,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에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나 돈대. 딸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눈을 감았다 뜨곤 했다. 눈 깜빡할 시간. 그 시간에 빛이 지구를 몇 바퀴나 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고민은 하찮게 느껴진다고 했다. - P15

그러자 청년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 땡이에요. 그래서 나도 청년에게 말했다. 자네도 땡. 그러니 이제 집에 가요. - P29

베르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비나 쪽을 바라보며,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도 고귀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고귀하지를, 전혀 고귀하지를 않다고 베르타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 P47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거리며 늘어져 흔들리다 바람이 불면 펄럭이고 바람이 잦아들면 가라앉고 그늘이 드리우면 은은하게 시름에 잠긴 듯한 깃발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리아는 불가해한 아름다움에 전율했고 마치 둘 사이에 어떤 필연성이라도 있는 듯 자연스레 첫아들의 청회색 눈동자를 떠올리곤 했다. - P60

베르타는 비웃듯이 입가를 비틀었다. 조금 전 성당 안뜰에서 그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빅토르의 병원에 달려가 봉사할 듯이, 앞다투어 소피아의 입양을 주선할 듯이 떠들어댔지만 내일이 되면 그들 중 누구도 마리아의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도 믿지 않으면서 무엇을 위해 그런 허튼소리들을 내뱉은 것일까.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P67

한 번 내지르면 다음에는 수월한 법이다. 악을 쓸수록 세상이 고요해지고 평온해지므로 참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비명이 터지기 직전의 기분을 잘 알았다. 가슴에 긴 끈이 걸린 기분. 조금만 캑캑거리면 끈을 쑥 빼낼 수 있을 듯한 기분. 일단 소리가 터지면 괜찮아졌다. 끈이 빠져나오니까. 그런 일이 반복되면 비명을 지르는 건 신발끈을 묶었다 푸는 일만큼이나 간단해진다. - P91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니 자정이 이미 지나 있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그녀는 벤치에 누웠고 느티나무 사이로 수면인 양 찰랑거리는 여름밤을 올려다봤다. 나뭇가지 무늬로 조각났지만 전체이면서 영원으로 가닿는 밤이었다. 시간이 좀더 흐르자 구름 속에 숨어 있던 꽉 찬 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그란 달은 이곳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처럼 보였고, 덕분에 그녀는 이 세계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 P138

길도 없는 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이제 감당하기가 어려워 올해가 마지막, 올해가 마지막, 하며 몇 년을 버텼는데 더는 할 수 없다. 이순일이 마침내 그것을 인정한 게 올초였다. 이순일은 찾아오는 이도 없이 버려진 듯 산속에 남을 묘를 걱정하더니 파묘해 없애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자기가 죽고 나서는 아무도 찾아가지 않을 무덤이니까. - P156

당신은 위대하다.
한세진은 그 메시지를 듣고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그다음엔 미간에 살짝 뿔이 돋는 듯한 느낌으로 화가 났고, 그게 뭐였는지, 왜 그것이 모욕감과 닮았는지, 자기가 왜 그런 걸 느꼈는지를 나중에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한만수의 한국어 때문인 것 같다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한만수는 그것을 영어로 들었을 텐데 그래서인지 말투가 좀 영어였지. 홀을 쥔 왕이 그것을 하사하듯 그애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지. - P168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 P174

키도 다리 길이도 얼굴도 눈빛도, 누가 봐도 열세 살인 승미의 고민은 그것이었다. 자신이 열한 살인 것. 이 년 전부터 계속 열한 살인 것. 언제까지 열한 살일지 알 수 없는 것. - P204

그가 유키코에게서 마음이 정확히 왜, 어떻게 떠났는지는 끝내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눈 오는 풍경처럼 온통 환하고 완벽한, 압도적인 충일함에서 시작하지만 일단 지워지기 시작하면 또 그것이 녹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얼룩이 연쇄되며 진행되니까. 헤어질 무렵 유키코가 했던 오해처럼 유키코의 국적, 출신이 결정적이지는 않았다고 그는 지금도 장담할 수 있었다. 대화하다 일본어도, 영어도, 한국어도 통하지 않을 때면, 그렇게 어떤 한계와 맞닥뜨릴 때면 "그저 티슈 한 장의 차이야"라고 상대에게 말해준 사람은 언제나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 잠깐의 ‘이해할 수 없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유키코는 가족 중 하나가 실패한 연애로 오랫동안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상기하곤 했다. 너는 다르다고 상대 가족들이 말했다고 해, 너의 피에는 더러운 것이 있다고. - P245

그가 유키코에게 마음을 고백한 것도 그곳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그 앞에서 만나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있을 때였다. 배가 고팠는지 한창 섭취에 열중하던 유키코가 손가락으로 멀리 보이는 교내의 숲과 지금 그들의 발 앞에 놓인 땅을 이으며, 날아온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심지 않아도 저 숲에서 자라는 것들이 날아와 여기에 자리잡는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흘에 한 번씩 뒤엎고 갈아가며 필요 이상의 개간 작업을 한 공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이 다시 자라고 있었다. 날아와서, 행로와 목적도 없이 날아와서 여기에. - P257

그는 돌아갈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목격자가 있지 않은가. 여행사에서 만나 도쿄타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 여자가 그의 연락처를 내일이면 유키코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리고 연락이 오면 오는 대로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대로 그의 삶은 어느 방향으로 조금 더 이동할 것이었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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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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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을 독해한다는 건 나에게 새로운 소설을 읽는 행위를 넘어 새로운 취향을 만드는 일. 이번에도 장바구니 옆 숫자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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