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문재인 정권에서 소득 주도 성장은 명확한 이론적·실천적 의제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이전 보수 정권에서 추진한 ‘낙수 효과’ 경제에 대한 ‘반대’의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소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 P228

코로나19를 핑계로 한 이러한 전반적 후퇴는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개혁 담론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소득 주도 성장과 분배 강화, 자산시장의 안정 등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정상적 상태’일 때만 거론할 수 있는 ‘정책적 액세서리’였던 것이다. 오히려 사회 안전망 강화와 분배 구조 개선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에 문재인 정권은 그동안 자신들이 적대하는 듯한(적폐 청산의 대상이었던) 기성의 주류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 P243

통치 권력은 하늘에 뜬 별과 같다. 어느 시기, 지구의 어느 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별의 배경은 해가 되기도 하고 달이 되기도 하지만, 각각의 관측 결과는 그 자체로 사실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지구에서 볼 때, 별의 위치를 확정하면 관측자의 위치를 정할 수 없게 되고, 관측자의 위치를 확정하면 별의 위치를 정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별은 한자리에 그대로 있다. 통치 권력의 실체도 이와 같지 않을까? - P246

이 모든 것들이 ‘반대의 정치’라는 하나의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우리 정치의 문제를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상식과 합리’를 회복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그것은 ‘반대의 정치’라는 맥락을 간과한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상식과 합리’는 언제든지 ‘극단주의’로 실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근본적 해답일 수 없다. - P247

보수가 싫어 진보를 지지하다 실망하면 다시 보수를 지지하는 ‘반대의 정치’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정치의 초점을 소비자가 자기 이익에 맞춰 정치 세력이라는 상품을 선택 구매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소유를 바꾸는 일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이 실제로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 공동체를 경영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 P254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갖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사례는 당장은 완벽한 해답처럼 보였던 것도 실제 현실에 적용하면 최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실패는 숙명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가 그 실패를 통해 좀 더 진전된 해법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 P255

같은 실패를 거듭 되풀이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앞서 거론한 해법이 사회운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사회 운동의 성과가 축적되고 실패의 사례가 퇴적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종종 ‘공론장’, ‘시민사회’ 등으로 불리는데,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단지 어떤 담론을 사고파는 시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공간’에는 다수의 시민이 개입하고 통제하면서 이를 ‘통치’의 영역에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하고 제출하며 이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 P258

통치와 참여의 긴장을 단순화해서 보자면 이런 구도로 정리할 수 있다. 통치 구조의 바깥에 있을 때는 통치를 상대로 모든 것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다. ‘참여’는 이 요구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하지만 통치 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참여’는 통치자를 상대로 제기되는 여러 압력 중 하나에 불과하다. (···) 통치 세력이 이러한 상충적인 요구를 조정하는 데 성공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려면 이 모든 요구로부터의 자율성 확보가 필요하다. 이때 대중의 ‘참여’ 요구는 통치 세력의 공간을 늘리기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된다. ‘의지’뿐 아니라 ‘구조’도 문제인 것이다. - P265

중앙과 지역이 줄탁동시 해야 한다. 즉, 참여민주주의를 통치 체계로 강제하는 정치 세력이 중앙과 지방 양쪽 모두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세력은 참여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구현된 이후에도 제도가 애초의 취지에 맞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제도의 수호자로서 자신을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파적 경쟁을 통해서 확대되고 강제되어야 한다. 즉, 현실의 진보 정치 그 자체가 실질적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P269

이러한 상상을 통해 대안적 진보 정치가 현실 정치의 어떤 부분에 반대하면서 그 반대급부의 정치적 이득을 구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대안적 미래를 그 자체로 상상하는 일을 다시 중심에 놓을 수 있다면, 사회구성원 다수가 우리 사회에 대한 실질적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 행위를 당장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278

시험 문제를 누가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어떤 능력은 우대받고 어떤 능력은 평가절하 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평가의 결과가 ‘자격’ 부여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은 능력주의를 통해 구현된 세상이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귀족’의 출현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자체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능력주의의 세상은 그 기준, 즉 출제자의 자격이나 시험 문제의 적합성을 두고 끝없는 분쟁이 촉발되는 곳일 수밖에 없다. - P282

‘진자 운동’의 논리에 따라 ‘민의를 그대로’가 불가능하니 검증된 엘리트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다수의 주장이 된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누구에게 권력을 위임해야 세상이 좋아질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이 통치자가 된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겠는가’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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