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이 더 작은 사람에게 삶 자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안다. 하루하루 바뀌기 바쁜 변혁의 시대에서 꿋꿋이 사랑을 논하고 굳이 서로를 택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저절로 미소 지어지는 풋풋함과 지지하게 만드는 견고함이 이 소설을 완성시킨다. 강지나에게 복수하고 목숨을 되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김달과 젤리, 울림간의 단단한 우정과 이룬과 울림간의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장이 <네가 있는 요일>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운이다.
'속마음이 들린다'는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아픔들에 융화되어서, 그들에게 이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오와 유찬, 새별이라는 인물이 어디선가 숨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확신하지 못한 존재들에 안녕을 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절대악이라고 생각하였던 리퍼는 매달 기부를 하면서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인간에게는 대체 어디까지의 악과 선이 존재하는지, 깊이 고심한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악하거나 선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닐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어지럽게 흩뜨려 있는 것만이 진정 인간일 것이다.
탱크에는 교리도, 교주도 없다. 각자 다른 믿음을 짊어지고 어두운 탱크 안에 찾아들 뿐이다. 여기에서 강한 물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나는 탱크라는 존재를 믿을 것인가, 혹은 힐난할 것인가. 책을 단 한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을 때엔 후자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책을 펼치고 인물들의 상실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은 다른 곳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김서해의 문장은 마치 곡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실타래와 같다. 끊김과 이음을 오가는 위태로운 모습과,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황홀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작가가 앞으로 창작할 모든 문장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