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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귀신과 通하다 - 조선에서 현대까지, 귀신론과 귀신담 ㅣ 조선의 작은 이야기 1
장윤선 지음 / 이숲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이른바 '과학의 시대'에 귀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TV를 틀면 여러 채널에서 미스테리한 체험이나 귀신 들려서 어쨌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요새는 '퇴마사'라고 새롭게 이름 붙여진 '무당'들이 많이 활동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현재 인간 사회에도 귀신은 존재하지 않나 싶다.
요즘도 이런 얘기를 하나 모르겠는데, 예전 고등학교 시절에 회자되었던 귀신 얘기가 하나 생각난다. 공부에 대한 압박 때문에 학교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학생이 귀신이 되어 밤만 되면 학교 복도를 쿵쿵 울리며 배회하는데, 어느 날 한 학생이 혼자 남아 공부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이때 저 멀리에서 쿵쿵 복도를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 학생이 무서워서 책상 밑으로 숨었다. 조금 후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쿵쿵쿵 하는 소리를 내며 그 귀신이 다가왔다. 학생이 눈을 꼭 감고 있다가 궁금해서 눈을 뜨는 순간 귀신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투신할 때 머리가 먼저 땅바닥에 닿아서 죽었기 때문에 귀신이 되어서도 여전히 물구나무 선 자세로 머리를 통통 퉁기며 다니기 때문이다.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은 그 사회 상황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 희망 등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위의 이야기도 대학 입시와 학업에 시달리면서 죽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대다수의 학생과 실제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속출하는 사회 현상을 귀신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은 성리학적 유학에 기반을 둔 나라였다. 유학 자체가 현실주의적이어서 사후 세계나 귀신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공자가 원래 '괴이함과 용력과 어지러운 일들과 귀신의 일을 말씀하지 않으셨다'(p.52)고 하지 않은가? 하지만 <논어>에 보면 '귀신을 공경하되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귀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알 수 없는 일을 탐구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과 정력을 사는 데 쓰라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북송 때 횡거 장재는 귀신을 음양이라는 기의 활동으로 설명하였다. 아마도 유학에서, 특히 성리학에서 귀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장재는 '귀신이란 두 기운의 양능(良能)이다'고 말하였고, 이것을 주희는 '두 기운으로 말하자면 귀(鬼)는 음의 영기(靈氣)이고, 신(神)은 양의 영기(靈氣)이다. 한 기운으로 말하면 이르러서 펴는 것은 신이 되고 반대로 돌아가는 것은 귀가 되니, 실은 한 기운일 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외에도 많은 유학자들이 귀신을 설명하였지만, 막상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에 대한 설명으로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보통 귀신이라고 하면 죽은 사람의 혼령이 활동하는 것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귀신을 정의하여 ‘한 맺힌 기와 비정상적인 귀신’이라고 하였다.
TV의 ‘전설의 고향’ 등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조선의 귀신들 대다수가 이 종류이다. 또한 거의가 여성이라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음양 사상에 의하면 여성이 음이고 귀신도 음기이므로 여성의 기운이 귀신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지만, 이는 조선은 남존여비 사상이 매우 극단적이었던 나라인 까닭에 억압적 상황의 여성들로서는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원망과 한을 가졌을 수밖에 없는 사정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 밀양에서 전해지는 ‘아랑 이야기’는 여성 원귀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 이야기와 비슷한 종류의 귀신 이야기가 많고, 더불어 현대판으로 각색되어 영화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조선 시대의 귀신 이야기가 모두 여성의 원귀 이야기인 것은 아니고, 따로 이 책에서는 ‘조상의 혼령’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조선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특히 중요시하던 사회였기 때문에 어쩌면 조상의 귀신은 일상에서 같이 생활하는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후손들의 행실을 바로잡고 고난을 극복하며 화를 피할 수 있도록 조언을 주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조상의 꿈을 꾸고 나서 복권이 당첨되었다던가, 산삼을 캤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조상 귀신이 우리들의 곁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질문을 한다면,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내가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이학적 방법으로 그것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있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그것의 존재를 믿고 그것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절(寺)로, 무당에게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 또 ‘없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인류 문화사적 관점에서 볼 때 귀신은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귀신과 관련한 산업의 발달이 그것을 증명한다. 비록 그것이 인간의 무의식과 관련되거나 혹 뇌의 변연계와 관련하거나 우뇌와 관련하거나 간에 말이다.
저자는 끝에 귀신도 사랑과 대화를 원한다고 말한다. 귀신이란 타인에게 핍박받고 할 말을 다 못하고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끝으로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귀신이란 결국 삶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존재이다. 귀신은 살면서 겪었던 좋은 일, 괴로웠던 일을 기억하고, 이를 인간과 나눔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려고 한다. 소름끼치는 몰골로 불쑥 나타나고, 흉한 모습으로 손을 내밀지만, 귀신은 결국 생전에 다하지 못한 숙제를 마치고, 이리저리 얽혀 고통스러웠던 인연에서 풀려나기를 원할 따름이다. 바로 그런 원(願)과 한(恨)을 담은 것이 귀신담으로 그것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산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