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 누가 감히 '한다면 하는' 나라 미국을 막아서는가
아브람 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데이비드 버사미언 인터뷰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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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후 조선에서는 명(明)에 대해서 왜군을 무찔러서 조선을 망하지 않게 해주었다고 해서 재조지은(再造之恩: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을 베푼 부모의 나라로 숭앙했다. 그런데 500년 후에 그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다만 그 대상이 명에서 미국으로 바뀐 것만 다를 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이란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막아주었고, 경제가 발전하도록 원조해 준 나라이다. 또한 미국은 세계에 정의를 심어주는 경찰국이고 무오류(無誤謬)의 나라, 항상 동경하고 무조건 따라 해야 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과연 미국이란 나라가 그와 같은 존재인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절로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의 주요 수출품으로는 영화, 무기, 달러를 우선 들을 수 있지만 여기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인권과 민주주의’이다.

우리는 그 동안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해왔는가를 잘 알고 있다. 인권 탄압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이른바 ‘독재 정권’을 타파하기 위해서 미국은 참으로 많은 힘을 기울여 왔고, 그 노력은 지금도 쉼이 없다.




다만 문제는 미국이 수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상품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민주주의란 말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게 하는 나라는 민주적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는 비민주적인 것입니다.’(p.80)라고 촘스키는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하게 국민의 지지를 얻어 성립한 정권일지라도 미국의 정책에 따르고 동조하지 않으면 ‘반민주, 독재’라는 딱지를 붙여서 무력으로 직접 침략하거나 뒤에서 쿠데타를 조종하여 그 정권을 전복시켜 그들이 말하는 ‘민주 정부’를 세워놓는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행하고 있는 대외 정책의 핵심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지난 대통령 부시는 9.11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고, 있지도 않은 ‘대량학살 무기’의 개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라크와 전쟁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손실된 것은 물론이고, 이라크와의 전쟁은 직접적으로 유가를 상승시키는 원인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의 저항군에게 수많은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 지식을 전수한 것이 바로 미국이었고, 호메이니에 의해 이란 혁명이 성공하자 이라크를 사주해서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이라크에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미국이었다. 이런 모습이 사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미국의 진면모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국민들은 그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정책을 펴는 정권을 지지하는가? 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타국 전쟁터에서 죽어가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 촘스키는 ‘선거제도와 정치체제가 저급한 수준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선거가 없는’ 현 미국 정치 체제는 기본적으로는 ‘독재’라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다양하지만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한 것은 바로 ‘핵문제’라고 촘스키는 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나라들이 핵을 개발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도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이것에 대해 촘스키는 ‘핵 확산의 원인은 대부분이 미국에 있어요. 미국의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군국주의가 핵 확산을 조장하는 것입니다.’(p.214)라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미국이 기술을 지원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담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역사적으로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저질러 왔던 온갖 악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세계를 보는 관점이 읽기 전에 비해 전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음을 느낄 것이다.




끝에서 촘스키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미국의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인을 비롯한 세계인 대부분은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악행을 마음대로 저지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촘스키는 ‘미국 권력집단의 진정한 성공은 사람들을 서로 분리시켜놓음으로써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해놓았다는 것’(p.280)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국민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 원리를 알지 못하면 결코 세계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첫째, 투키디데스의 원리로서 ‘큰 나라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들이 시키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둘째, 아담 스미스가 말한 ‘국가 정책의 ‘주요 결정자들’ 즉 ‘상인과 제조업자들’은 영국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를 포함해서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가혹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가 ‘특별히 잘 지켜지도록’ 한다.’(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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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읽는 중국 역사이야기 2 - 전국시대
박덕규 지음 / 일송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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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에 대해서는 별로 부러울 것도 없는 중국에 대해서 가장 부러운 것이 바로 역사의 사료이다. 특히 우리가 같지 못한 고대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는 참 부럽다.




흔히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합해서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시대는 서주가 견융의 침입으로 망하고 동주시대가 열리는 때(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되는데, 공자가 편찬했다고 하는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와 시대가 거의 겹치므로 이것으로 이름으로 삼은 것이고, 전국시대는 이견은 있으나 대체로 진(晋)이 위, 한, 조 삼국으로 분리되고, 위, 한, 조가 제후로 인정을 받은 시점(기원전 403년)부터 진(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는 때(기원전 221년)까지인데, 한나라 때 유향이 이 시기의 역사를 기술한 책인 <전국책>에서 이름을 따 전국시대라고 한 것이다.




이 책에는 전국시대에 가장 유명한 역사적 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다.

모두 유명해서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왔을 이야기들이지만, 다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서문표가 물의 신인 하백의 색시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무지한 백성들을 착취하는 무당과 관리들을 강물에 던져버리는 대목은 언제 보아도 통쾌하고, 동문수학한 방연의 꾐으로 불구가 되고 목숨이 위태롭다가 미치광이 흉내를 내고 결국 제나라의 군사 참모가 되어 마릉에서 방연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나 범저가 위나라에서 거의 죽을 뻔하다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복수하는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 같다.

종횡가(縱橫家)로 유명한 소진과 장의의 이야기도 재밌다. 초나라에서 화씨옥의 도둑으로 몰려 죽을 만큼 맞은 장의가 자기 아내에게 자신의 혀가 온전한가 하고 묻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온다.

멱라강에 몸을 던져야 했던 굴원의 이야기는 망국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나라의 열사, 의사들이 겹쳐서 비장한 마음이 들게 하고, 연나라 공자 단의 부탁으로 나중에 시황제가 되는 진의 왕을 죽이러 떠나는 자객 형가가 떠나기 전 황하를 보면서 부르는 노래 역시 비장하다.




지금 우리나라에 <삼국지>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삼국지 역시 유익하고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이야기의 시대는 후한 말엽부터 진이 통일하기까지 겨우 100여년 정도 이다. 그 시대만을 열광할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모두 읽어보는 것이 더 많은 교훈과 지식을 얻을 것이다. 또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은 중국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읽고 즐겼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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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 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이은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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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교에서 여성주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낯설다. 왜냐하면 유교하면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서양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계몽주의가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억압해왔고, 그것을 종교적,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통해 공고히 다져왔다. 따라서 이것에 반하여 일어난 여성주의는 당연히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 윤리 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결합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의 모성(母性)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도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욱 더 바람직한 인간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p.166)이라고 말하고, 여성운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은 ‘여성과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성의 신성한 차원을 다시 회복하’(p.167)는 것에 있으며, 이는 결국 ‘세속화’를 넘어선 ‘종교적’ 가치를 지니는 ‘영적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영적 혁명’의 바탕을 한국의 유교에서 찾고 있다.

과연 유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오늘날 현대 종교현상학의 종교 이해는 어떤 구체적인 인격신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나 성직자 체계의 유무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대신 삶의 진행과정에서 경험되는 성(聖)과 속(俗)에 대한 구별 의식을 그 핵으로 본다’(p27)라고 하여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추구하는 유교도 역시 종교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유교는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인(仁)을 주장했다. 인은 그 글자대로 풀자면 두 사람(二人)을 뜻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원래부터 인간의 문제에 착안하였고 또한 공동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유학은 북송의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 주돈이, 장재 등에 의해 발전하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된 성리학(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리학은 그 이전의 유학에 비해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하늘(天)이란 존재는 완전무결하며 이 세상의 가장 본원적 원리인 이(理)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이가 각자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성(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이 도덕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으며, 이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덕성은 곧 인간 사회의 덕목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법이란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 덕목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성(聖)과 속(俗)이 분리 되어 있지 않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법통을 주나라에서 찾았다. 주나라는 이른바 ‘종법(宗法)’에 근간을 둔 제도를 운영하였다. 종법이란 한 집안을 장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통(宗統)을 세우는 것이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제도를 이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도 역시 종법 질서를 따랐으며, 그 결과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여성이 단순히 종속적 위치에 만족하고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는 존재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써 영, 정조 연간에 생존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이라는 두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규중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이었지만, 학문을 연마하고 도덕을 수양하여 당시 남성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고, 이들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 종부로서 역할을 다하여 모든 이들이 존경을 받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매우 역동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다’(p.18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기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은 비록 가정에 머물렀지만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당시 가정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여성주의가 과도하게 사적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다시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p.185)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여성 여성주의가 인간성 상실과 생태적 위기, 과도한 경쟁 원리의 적용과 주관주의에 함몰되는 위험 앞에서 다시 ‘보살핌’의 윤리를 찾고, ‘어머니 되어 주기’의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배려자와 살림꾼으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187)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나가야 할 길은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가’(p.205)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여성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과연 보편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인간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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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기억 - 행성 지구 46억 년의 역사
이언 플리머 지음, 김소정 옮김 / 삼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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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많은 생명체가 지구의 품 안에서 살고 있다. 비록 인간이 지구 밖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달에도 다녀오고는 했지만, 인간 역시 아직은 지구의 품에서 살아가야할 존재이다. 인간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하는 지구의 생성과 변화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지질학’이다.

46억 년이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과거에 태어난 지구가 현재까지 겪어온 역사를 추적한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마치 부족한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어 본래 모습을 찾아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우주에서 지구는 마치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와 같다. 왜 지구는 푸른 보석 같은 아름다운 모양을 갖게 되었고, 그 안에 무수한 생명체를 배태할 수 있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다른 천체들처럼 불덩어리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것이 차츰 식으면서 표면에 지각이 생기고 무거운 철은 중력에 의해 가장 안으로 들어가 핵이 되었고, 그 핵과 지각 사이에는 느린 유동성을 가진 맨틀이 채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절묘한 것은 태양과의 거리이다. 더 멀었다면 얼어붙었을 것이고 더 가까웠다면 금성처럼 뜨거워서 도저히 생명체가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고, 생겨나더라도 고등 생명체로 진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철로 되 핵은 아직 고온, 고압의 상태에서 액체의 형태를 유지하여 순환하여 지구의 자기장을 만들게 되고, 이 자기장이 우주방사성과 태양풍을 막아주어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사실 또한 절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화산과 지진은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가져온다. 대부분 화산과 지진의 활동은 맨틀의 대류에 의한 지각의 이동 때문이다. 현재는 지구가 오대양 육대주로 되어 있지만, 지구 전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이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표의 스냅사진과 같은 것이다. 지금도 지각은 움직이고 있다. 단적인 예로 에베레스트 산은 매년 2센티미터씩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대략 200만 년 전에 탄생되었다고 한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자면 ‘방금 전’에 태어난 것이다. 유인원에서 인간이 분화한 이유도 지질학적 연구가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500만 전에 동부아프리카의 기온이 내려가 열대우림이 초원으로 변하면서 영장류 중 직립하는 종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 상 생명체의 대량 멸종 사태가 몇 번 있었고, 소규모의 멸종은 매우 많았다.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바로 6500만 년 전에 있었던 공룡의 멸종이다. 당시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결코 지금처럼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대량 멸종의 원인은 대부분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경우라고 한다. 지구상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크기의 소행성이나 혜성은 평균 10만 년에 한 번꼴로 지구를 찾아온다고 한다.




요즘 가장 화두가 되어 회자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구온난화’이다. 그리고 그 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석유, 석탄 등 화석 연료이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지구온난화가 온전히 인간 문명의 결과물인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그 주장이 상당히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지구 역사에서 빙하기와 간빙기는 자연스럽게 교대로 나타났기 때문이고, 지금도 그 순환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은 간빙기의 마지막에 해당되어 현재는 비록 기온이 올라가는 상태에 있지만 불원간에 빙하기가 도래할 것이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석 연료를 맘껏 써도 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빙하기를 대비해서 화석 연료를 절약해야 한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를 지질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도 재미있다. 기온이 낮아지면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만연하게 되는데, 이때 인류는 전쟁과 이동이 많았다고 한다. 기온이 낮아지는 원인으로는 소빙하기에 들어갔거나 해류의 방향이 달라졌거나, 거대한 화산 폭발로 먼지가 햇빛을 가렸거나 하는 등이라고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며 이 지구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한 순간 스쳐가는 손님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과연 인간은 앞으로 얼마동안 이 지구상에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도 언젠가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고, 그리고 지구는 인간 문명의 흔적을 그 속에 감추어두었다가 그 후 언젠가는 그것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그 인간의 흔적을 보고 인간 시대의 지질학을 연구할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엄청나고 광대한 지구의 역사를 읽으면서 저절로 겸손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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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한국사 - 동아시아의 참역사를 바로 잡아주는
박선식 지음 / 베이직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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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900여 회의 외침을 받았지만 꿋꿋이 이겨냈으며 결코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민족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었다.

왜 우리 민족은 바보처럼 때리면 맞기만 했을까? 왜 우리 민족은 대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한반도라는 구석지에 옹졸하게 웅크리고 있었을까?




고인돌을 세우고 비파형 동검과 세형 동검을 쓰던 사람들을 우리 조상으로 여긴다면, 그 유물의 분포 영역이 바로 그들의 활동 영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주 대륙과 한반도가 바로 그것이다.

단군이 세운 ‘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문헌 자료가 너무 극소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서술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고조선이 일어났다는 ‘아사달’이 현 만주에 있었는지, 압록강 변에 있었는지, 대동강 변에 있었는지도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고인돌과 비파형, 세형 동검의 분포를 고조선의 영역으로 본다면 우리 민족이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넓은 영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를 통찰해보면, 외침에 의해 나라가 망하거나 영토가 축소되었다가 다시 일어나 외세를 밀어내고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고조선이 한나라에게 망하여 한사군이라는 식민통치체제가 들어섰을 때 고구려가 일어나 그들을 물리치고 영토를 회복하였으며,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 고구려 영토를 잃었을 때 곧 발해가 세워져 회복하였고,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하여 다시 그 영토를 상실하자 고려는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북진 정책을 시행했고, 조선도 그것을 이어받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회복했다. (여기에서 간도가 과연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조선의 영토인가 아닌가는 논하지 않겠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수많은 정벌을 단행했다. 즉 우리 조상들은 ‘한 번도 남을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비록 다른 민족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정도로 침략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 부제목 ‘대외출병으로 본 한민족관계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외세에 의해 침략당한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서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당에 의한 고구려 침략과 멸망, 백제의 멸망, 발해의 멸망, 몽골의 고려 침략,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생략되어 있거나 매우 소략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대신 비록 위와 같은 큰 사건은 아니라서 소홀하게 여겼을 대외출병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쓰여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 조선 네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먼저 상고시대에는 비록 진위논란의 한복판에 있지만 ‘환단고기’와 ‘규원사화’ 등을 인용해서 단군 이전의 ‘치우’를 우리 조상으로 보고 중국인들이 그들의 조상으로 여기는 ‘황제 헌원’과 다툰 ‘탁록대전’을 가장 먼저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정벌 전쟁을 통해 광대한 영역을 경략했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지만, 백제의 동성왕이 중국 대륙에 진출하여 현 북경 지역과 산동 지역, 상해 지역을 경략하여 지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사실이 <삼국사기>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남제서> 등에는 비교적 자세히 쓰여 있다. 이 책을 보면 이 사실을 납득할 것이다. 또 신라가 3, 4세기에 왜의 침입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골머리를 앓았다는 것을 알지만 유례왕 때 일본 본토로 정벌 전쟁을 떠났다는 사실은 거의 모른다. 오늘날 오사카에 가까운 ‘명석포’에 상륙하여 왜를 정벌했던 것이다. 지도를 보면 일본 영토에 매우 깊숙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망하고 ‘통일신라’가 겨우 대동강과 원산을 잇는 선의 이남만을 차지하고 있는 지도를 보면 누구라도 한숨을 쉴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그 위에 ‘발해’라는 거대한 나라가 세워진다. 사실 발해는 조선 후기 ‘실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의 역사로 크게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발해는 분명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다. 발해는 당나라 침략군을 물리치고 고구려의 영토를 전부 회복했으며 전성기에는 그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가졌다. 발해는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오늘날 산동 반도인 ‘등주’에 상륙작전을 시행하였고, ‘마도산’으로 군사를 움직였다.

발해가 거란에 의해 망하자 만주벌판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는 그 등불이 꺼졌다. 그 이후의 역사는 상실한 한반도 북부와 만주 회복 역사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자랑스럽다. 900여 회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남을 침략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거대한 중국 대륙의 옆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독자적 역사와 문화를 성대하게 이루고 가꾸어왔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이다.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이른바 ‘중국’이라는 ‘잡탕반죽’ 속으로 사라져갔던가. 하지만 우리 민족은 결코 그것에 굴하지 않았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멸망시키지는 않았지만 필요할 때는 우리 영토 밖으로 정벌 전쟁도 감행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결코 옹색하게 한반도에 쪼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우리 영토를 지키면서 대륙과 바다를 지향하고 진출했던 역사를 가진 민족이어서 자랑스럽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이 책이 ‘자칫 국수주의자의 열띤 대외팽창론을 나열하는 격’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하였다. 더구나 현 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이 20%에 육박하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민족’이나 ‘역사’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타인을 사랑하고 위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나라와 민족,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으면 남의 민족과 나라도 존중하지 못한다. 우리 역사를 ‘위풍당당’하게 여길 때 오히려 ‘세계화’ 시대에 앞장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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