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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 누가 감히 '한다면 하는' 나라 미국을 막아서는가
아브람 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데이비드 버사미언 인터뷰 / 시대의창 / 2009년 1월
평점 :
임진왜란 후 조선에서는 명(明)에 대해서 왜군을 무찔러서 조선을 망하지 않게 해주었다고 해서 재조지은(再造之恩: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을 베푼 부모의 나라로 숭앙했다. 그런데 500년 후에 그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다만 그 대상이 명에서 미국으로 바뀐 것만 다를 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이란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막아주었고, 경제가 발전하도록 원조해 준 나라이다. 또한 미국은 세계에 정의를 심어주는 경찰국이고 무오류(無誤謬)의 나라, 항상 동경하고 무조건 따라 해야 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과연 미국이란 나라가 그와 같은 존재인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절로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의 주요 수출품으로는 영화, 무기, 달러를 우선 들을 수 있지만 여기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인권과 민주주의’이다.
우리는 그 동안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해왔는가를 잘 알고 있다. 인권 탄압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이른바 ‘독재 정권’을 타파하기 위해서 미국은 참으로 많은 힘을 기울여 왔고, 그 노력은 지금도 쉼이 없다.
다만 문제는 미국이 수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상품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민주주의란 말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게 하는 나라는 민주적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는 비민주적인 것입니다.’(p.80)라고 촘스키는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하게 국민의 지지를 얻어 성립한 정권일지라도 미국의 정책에 따르고 동조하지 않으면 ‘반민주, 독재’라는 딱지를 붙여서 무력으로 직접 침략하거나 뒤에서 쿠데타를 조종하여 그 정권을 전복시켜 그들이 말하는 ‘민주 정부’를 세워놓는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행하고 있는 대외 정책의 핵심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의 지난 대통령 부시는 9.11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고, 있지도 않은 ‘대량학살 무기’의 개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라크와 전쟁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손실된 것은 물론이고, 이라크와의 전쟁은 직접적으로 유가를 상승시키는 원인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의 저항군에게 수많은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 지식을 전수한 것이 바로 미국이었고, 호메이니에 의해 이란 혁명이 성공하자 이라크를 사주해서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이라크에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미국이었다. 이런 모습이 사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미국의 진면모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국민들은 그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정책을 펴는 정권을 지지하는가? 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타국 전쟁터에서 죽어가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 촘스키는 ‘선거제도와 정치체제가 저급한 수준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선거가 없는’ 현 미국 정치 체제는 기본적으로는 ‘독재’라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가 다양하지만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한 것은 바로 ‘핵문제’라고 촘스키는 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나라들이 핵을 개발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도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이것에 대해 촘스키는 ‘핵 확산의 원인은 대부분이 미국에 있어요. 미국의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군국주의가 핵 확산을 조장하는 것입니다.’(p.214)라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미국이 기술을 지원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담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역사적으로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저질러 왔던 온갖 악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세계를 보는 관점이 읽기 전에 비해 전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음을 느낄 것이다.
끝에서 촘스키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미국의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인을 비롯한 세계인 대부분은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악행을 마음대로 저지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촘스키는 ‘미국 권력집단의 진정한 성공은 사람들을 서로 분리시켜놓음으로써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해놓았다는 것’(p.280)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국민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 원리를 알지 못하면 결코 세계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첫째, 투키디데스의 원리로서 ‘큰 나라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들이 시키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둘째, 아담 스미스가 말한 ‘국가 정책의 ‘주요 결정자들’ 즉 ‘상인과 제조업자들’은 영국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를 포함해서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가혹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가 ‘특별히 잘 지켜지도록’ 한다.’(p.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