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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 원석영 옮김 / 열음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굳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자면 가장 큰 차이는 ‘정신’ 혹은 ‘의식’에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며,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고 구별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의식과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면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찰해보면 많은 부분에서 변화와 발전을 해왔지만, 그 가운데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고 확대해 왔던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적어도 문명화된 사회의 현대인 대부분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의 사유 대상이었고, 심리학의 주제였다.
현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수 십 억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물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체의 한 부분인 ‘뇌’ 역시 진화를 통해서 발달한 것이며, 뇌의 현상인 ‘정신’ 역시 진화로 인해 나타난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란 온전히 뇌 활동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며, (저자가 직접 언명하지는 않지만) 인간 정신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도 ‘실재적 존재’가 아니라 ‘이념’이며 ‘환상’일 뿐이다. 따라서 육체와 구별되는, 육체보다 상위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불생불멸의 정신적 실체인 ‘영혼’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종교 역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일 뿐이지 실제로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진화를 통해 생긴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문화’는 인간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모든 행위가 진화의 결과로 생긴 본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문화 역시 본성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문화는 인간 ‘본성적’ 능력의 표현이며, 그 능력은 인간이 수백만 년에 걸쳐 유전자와 환경 요소의 상호 작용을 통해 획득한 것’(p.47)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유의지’가 문화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불리는 것의 실체는 없으며, 이것은 하나의 이념,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과학적으로 이미 다 밝혀졌으며, 단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물학은 정신 현상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물임을 설득력 있게 밝혀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신’과학이 되었다.’(p.114)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선택’한다. 그리고 그 결정과 선택은 오직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랐다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존엄성과 가치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그렇게 ‘자유롭게’ 결정, 선택했다고 하는 것도 결코 자유롭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내면의 본성과 외부의 환경의 상호 영향과 조율에 의해 그렇게 ‘결정되고’, ‘선택되었다’고 말한다. 다만 이미 결정되고 선택되어진 후에 스스로 자신이 자유 의지로 했다고 의식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형법이 자유의지에 대한 이념에 의거해 있다는 사실’(p.27)을 보자.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으므로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에 근거해서 ‘형법’이 존재한다.
현재 법 체계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어린이나 정신이상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만일 ‘정상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강간이나 살인을 저질렀다면 현 법 체계에서는 그에게 그것에 합당한 책임을 묻고 형벌을 가한다.
그런데 만일 자유의지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자신의 범법행위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저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록 그것이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중대한 범죄행위라도 예외는 없다.
그러한 범죄행위도 내적 충동과 외적 상황의 결과일 뿐이지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른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을 사람들에게 묻는 것은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다.’(p.197) 또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문제들을 법률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은 위험을 초래한다.’(p.197)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런 범죄자들을 방치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우리의 ‘사회성’은 도덕과 부도덕의 기본 조건을 제공해준다. 오직 사회적 존재로서만 우리는 책임을 질수 있다.’(p.184)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강간범이나 살인범(도둑 등)에게 어떤 책임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들로부터 괴로움당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p.191) 이 부분에서 저자의 논리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사회성’에 근거한 ‘도덕규범’이나 ‘법체계’에서 제제를 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범죄행위에 대한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묻기 이전에 '그를 압박한 ‘사회적 상황’을 고발해야'(p.199)고 말하는 데 이르며, ‘사형제도’가 왜 부조리한지 설명한다.
그렇다면 ‘자유의지’가 전혀 불필요한 것인가? 자유의지 역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진화를 통해서 발달한다는 것은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도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자유의지의 효용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어떤 사회적 문제를 그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시스템이나 상황을 살펴 따져보려고 하지 않고 손쉬운 방법으로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그 근거로 ‘자유의지’를 핑계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의지가 자유롭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결코 모든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도덕적 행동과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p.209) 또 ‘비록 자유의지가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주관적으로 어떤 감독관청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에 있게 할 것이’(p.212)라고 말하면서 전적으로 자유의지의 효용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범죄행위자’로부터 어떤 ‘형식’을 통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인간의 결정과 선택이 행위 이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위 후에 그 행위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선택했다고 말한다는 결론을 이끈 ‘리벳의 실험’은 다른 책에서 익히 읽었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가지만, 과연 그 실험에서와 같은 단순한 행위를 가지고 인간의 모든 행위에 확대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또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범죄 행위가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충동과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끌려 벌어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것을 우발적 범죄에 적용하는 것에는 긍정하지만, 과연 수년, 수개월 동안 범죄를 계획하고 결국 실행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역시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이 책은 200여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 의식뿐 아니라 관계된 철학, 종교, 진화론 등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서술 형식이 압축적이고 때로는 뛰어넘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코 쉽지 않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독자는 필히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