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저자는 나름대로 잘나가는 영화평론가이며 안정된 중산층의 중년남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디어 사회’를 살면서 “그 모든 것의 지극한 분주함, 끊임없는 움직임,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동성과 온몸이 차악 가라앉는 듯한 권태, 그리고 욕구 충족의 나지막한 흥얼거림으로 가득 찬 그림자의 골짜기에서, 그 열광적이면서도 음침한, 사는 것 같지 않은 삶 속에서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p.25)고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은 비단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본다.

저자가 느낀 이런 위태로운 삶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써 ‘위대한 책’, 즉 ‘고전 읽기’를 실천하고 그 과정을 기술하여 결과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중간 중간에 고전의 선택이 ‘중산층의 백인 남성’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서양 이외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책도 선정하고, 여성 작가의 책도 더 많이 다루어줄 것을 요구하는 좌파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반박하는 하나의 이유 중에는 고전이라고 해서 단일한 방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다른 주장을 싣고 있어서 서로 전혀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백인 남성’을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산 체계, 사회구조, 문화 형태가 변천하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 가치, 이데올로기 등도 역시 따라서 변해 왔다. 한 때 당시의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자신의 세계의 현재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미래에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위대한 책, 즉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고전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즉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각 시대의 정신을 읽는 것이 고전 읽기의 핵심이며, 이를 통해서 현재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나의 자아를 발견하고, 지성을 확장하는 것이 바로 고전읽기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백인 남성’ 운운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고전에 대해서 “그러한 고전들은 결코 시들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으며, 분명 획인화된 방식이 아닌 급진적인 자기 성찰의 전통을 구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고전 읽기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더 크고 더 유력한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지난한 노력”(p.735)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단순한 재미를 위한 것도 있을 것이고, 어떤 지식을 습득하기 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목적으로는 독서를 통하여 내 자신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것을 ‘사고 훈련’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실상 자신과의 대화야 말로 독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고, 지성과 지혜를 확장시키며, 통찰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훈련’에 가장 좋은 책을 고르라면 단연코 고전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더불어 또 하나의 독서하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므로 언어의 울타리 안에서 작용한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구현되는 상투적 언어 속에서만 사고 한다면 그 사고 역시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그 만큼 다양한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데, 고전이야말고 다양하고 고급스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보고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언어의 문제였다. 그 책들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상투적 어구의 감옥에 갇히고 말 것이다.”(p.138)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은 900여 페이지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고전으로는 고대에 쓰여진 호머의 일리어드에서부터 20세기의 버지니아 울프에 이르기까지 세기가 벅찰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으로 돌아가 학부 과정에 있는 고전 읽기 커리큘럼에 참여하면서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고, 추억하는 여러 가지를 쓰고 있는데, 다분히 자신의 내면적인 흐름에 따라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고 고전이라는 멀고 넓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쓰는 기행문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겠다.

이런 탓에 어쩌면 조금은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고전에 대한 소개와 독법에 대해 쓴 책이라고 생각하고 접하면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같이 그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고,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다만 내 개인적으로 저자의 사회적 위치, 정치적 입장인 유대인이자 보수적 백인 중산층의 미국 남성으로서의 시각이 가끔씩 드러나는 부분이 조금 불편했다. 정전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함하지 못하고 백인 남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비판에 대한 대응을 수긍하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해 은연 중에 비치는 적대감이나, 현재 미국이 제3세계를 좌지우지한다는 비난에 대해서 전혀 그렇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잘라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세계 정세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한쪽 눈을 감아버리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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