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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상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평점 :
고려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 이전의 고대사와 조선 이후의 근세사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아온 듯하다. 최근 들어 이 시대의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조금씩 세인들의 관심이 느는 것 같다. 이 같은 때에 고려 왕조 이야기가 책으로 엮여 출판한 것은 참으로 시의 적절하고 다행이라는 감이 있다.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왕가를 중심으로 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추려서 엮은 책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왕명에 의해 <고려왕조실록>을 재편집하여 만들어진 역사서인데, 아쉽게도 <고려왕조실록>은 임진왜란(조일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은 고려 왕조에 대해 역성혁명을 통해 세워진 왕조인데, 우리 역사 상 중화에 대해서 가장 심하게 사대주의를 표방했던 왕조였다. 조선에 비한다면 고려는 국제 정세에 맞춰 송이나 요, 금에 사대를 하긴 했지만 태조 왕건이나 광종 때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세우고, 왕에게 ‘폐하’라는 칭호를 붙이고, 왕자에게 ‘태자’라는 칭호를 붙이는 등 황제국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했다.
아마도 사대주의에 경도된 조선의 선비들은 이 같은 고려의 태도에 대해 참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엮을 때 많은 부분을 첨삭하거나 왜곡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에서 원본의 <고려왕조실록>이 사라진 것이 또 아쉽다.
왕건은 태봉국 궁예의 휘하에 있다가 폐정을 일삼는 궁예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통해 고려를 건국하였는데, 이때가 918년이었다. 당시에 상황을 보면 신라 말 혼란기를 맞아 신라는 경주 부근을 제외하고는 통치력이 거의 미치지 못하고, 각지에서 호족들이 발호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당시 고려의 라이벌은 견훤의 후백제였다. 충청, 호남, 경상북부 등을 지배하고 있던 견훤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호족들을 굴복시키는 것에 반하여 왕건은 혼인정책을 바탕으로 한 유화정책을 위주로 하였다. 결국 신라가 자발적으로 복속해오고, 후백제는 견훤의 장자 신검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멸망하고야 만다. 이로써 왕건은 명실공이 전국을 통일하여 단일 왕조를 세우게 된다. 이때가 936년이다.
왕건은 혼인 정책으로 많은 왕비와 왕자를 갖게 되고, 이것이 사후에 궁중 내에서 피비린내 나는 왕권 싸움의 원인이 된다.
4대 광종 때에 이르러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면서 고려 왕조의 기틀을 비로소 다지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 상 최초로 과거제를 실시하여 관료를 양성하게 된다. 과거제는 정권에서 제시한 일정한 과목을 공부하고, 정권에서 그것을 시행, 평가하므로 중앙집권화를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양성된 관료는 호적이나 공신들의 대항마로서 작용하므로 상대적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려 초기의 국제 정세를 보면 거란족이 발해를 무너뜨리고 요를 건국하였고, 요는 남쪽으로 송을 압박하고 있었다. 고려는 왕건 때부터 거란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결국 거란이 대규모로 침략하게 된다.
3차까지 침략하는 동안 수도 개경이 함락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수난을 당하는데, 3차 침입 때 강감찬은 구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한다(구주대첩). 거란이 고려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국력이 고갈되는데, 이것은 여진족이 만주에서 발호하여 금을 세우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고려는 문반과 무반 양반 체제로 구성되었으나 정치, 경제적 특권과 군사지휘권까지 문신이 장악하였다. 이 때문에 무신들은 박탈감과 소외감에 시달렸는데, 이런 모순이 폭발한 것이 바로 ‘무신의 난’(1170년, 의종24년)이다. 이후 몽골 침략과 몽골 속국이 될 때까지 무신들이 고려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세계적인 대제국을 세운 몽골은 고려를 가만두지 않는다. 몽고와의 전쟁 중에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장기적인 대항에 돌입한다. 당시 무적 군대인 몽골군에 대항하여 30년 가까이 버틴 나라는 아마 고려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이 와중에 전 국토는 몽골군의 군마에 짓밟혔지만.
결국 고려 왕조는 몽골(원)에 투항하고, 근 100년간 속국으로서 기형적인 왕조가 된다. 이때 왕들은 모두 ‘충’으로 시작하는 시호를 가지고 있고, 아버지와 아들이 왕권 다툼을 하여 서로 번갈아 왕을 하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반복된다.
원명 교체기 때 ‘충’자로 시작하는 왕들이 끝나고 공민왕이 등극한다. 공민왕은 모순으로 가득하고 피폐해진 고려를 일신하기 위해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노국공주가 출산 중 사망하자 실의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게 되고, 결국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대부들의 역성혁명을 불러오게 되어 고려 왕조는 끝난다. 이때가 1392년이다.
이 책은 왕을 중심으로 하여 서술하고 있고, 비록 두 권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분량은 많지 않아서 고려 전반의 사회, 경제, 국제 정세 등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고려에 대해서, 특히 고려 왕조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역사 지식이 깊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