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심리학 - 라이프 스타일 속에 숨겨진 경제행동의 심리
폴 웨블리 외 지음, 김정주 옮김 / 다산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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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 또는 태어나기 전부터 죽은 후에까지 경제 행위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경제’라고 하면 거시적이건 미시적이건 간에 화폐, 시장, 가격, 생산과 소비, 경제적 발전 등이 주제가 되어 기술되어 왔다. 여기에서 경제 행위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연구는 막상 배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학에서 인간은 모두 동일한 정도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를 전제로 하여 그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각기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경제 행위가 그 성격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또한 동일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심리적 상태가 달라지고, 그 달라진 심리적 상태에 따라 경제 행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경제학에서도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특질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고전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을 균질의 배경으로 설정하고 사물의 운동법칙을 기술했다면, 현대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농도가 결코 균일하지 않다는 것을 대입시킨 것에 비견할 수 있겠다. 경제학에서 심리학을 도입하여 기술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각 학문 간에 ‘통섭’을 시도하고 있는 시류와 같이 흘러간다고 파악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각 시기에 따라 중요하게 인식되는 경제적 문제를 각 시기 별 비경제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을 대입하여 기술하고 있다. 비경제적 요소라면, 인종, 사회적 계층, 성별, 부모의 직업,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 등 매우 다양하다.

모든 사람은 일생을 통하여 동일한 경제적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수입과 지출이다. 하지만 일생의 각 시절에 따라 수입과 지출의 항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에는 주로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용돈을 타는 것이 주 수입이고, 간혹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수입을 충당하기도 한다. 지출의 항목도 역시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지나 사회인이 되면 스스로 노동을 통하여 수입을 얻는 것이 대부분이고, 지출도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해진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동일성과 다양성을 각 시기 별, 각 개인의 비경제적 요소에 따른 특이성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700종에 가까운 참고서적은 이 책이 저자들(4명)의 독단적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학계에서 공인된 논문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저자들의 성실함이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다른 참고 서적에서 인용하기 때문에 때때로 나타나는 문단 사이에 문맥 흐름의 단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비교해서 읽는다면 유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138페이지 ‘가족의 돈 관리’에서 보여주고 있는 다섯 가지의 유형을 읽으면서 우리 가족은 어디에 속하나 하고 아내와 같이 읽고 얘기하면서 웃었던 것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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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3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최지향 옮김 / 부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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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한 벌의 청바지라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찾기는 힘들 것이다. 청바지는 세계인의 패션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하지만 청바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과연 너무도 흔해서 전혀 귀해 보이지 않는 청바지에 어떤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밭에서 수확한 목화솜을 조면공장으로 가져가 씨와 잡물을 제거하여 실을 뽑기에 적당한 솜을 만들고, 그 솜을 방적공장으로 옮겨 실을 만든 후, 그 실에 청색의 인디고 염색을 가하여 청색의 실을 만들고, 방직공장에서는 이 실을 가지고 데님이라고 하는 베를 만들고, 이 베를 가지고 디자인에 따라 옷으로 만들면 하나의 청바지가 태어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다가 아니다. 이 과정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물론 수백만 원 이상 가는 고가의 청바지도 있지만, 우리는 보통 단 돈 몇 만 원만 지불하면 마음에 드는 청바지를 살 수 있다. 과연 그 청바지는 정말 그 정도의 가치만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뙤약볕과 먼지 속에서 몇 달러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허리도 펴지 못하고 목화솜을 따는 여인이 있다. 또 솜털 먼지 날리는 공장 안에서 땀을 흘리며 솜을 가공하는 노동자가 있고, 5~60달러의 월급을 벌기 위해 하루 14시간 이상 청바지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가 있다. 우리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의 임금 수준은 그야말로 형편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질 좋은 청바지를 값싸게 사 입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정당한 몫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임금에 노동력을 팔고 있는 노동자의 실상을 느끼게 된다.




목화를 기르기 위해서 맹독성의 제초제,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고, 수확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고엽제를 사용한다. 그 결과 청바지 한 벌에는 평균 0.73파운드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p.89)고 한다. 물론 이 화학물질은 모두 농약에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염색과정에서 역시 수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농민과 노동자는 그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심각한 질병의 가능성을 안고 살고 있다.




지금은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는 세계화 시대이다. 또한 자유무역 시대이며, 무한한 소비가 미덕인 상업주의 시대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소비재가 그렇듯 청바지 역시 이러한 무슨 무슨 시대라는 그물에 걸려 있다.

한 벌의 청바지의 출생을 쫓아가면 얼마나 많은 나라들을 거쳐 왔는지 모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캄보디아에서 청바지를 만들고 있는 두 여성 노동자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캄보디아에서 만들어지는 청바지는 홍콩, 싱가포르, 또는 미국 등지에서 OEM 주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들 두 여성의 삶을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6,70년 대 초기산업 시대에 시골에서 수많은 젊은(또는 어린) 여성들이 도시의 공장으로 가 일하던 모습과 그대로 겹친다. 가난한 시골에서는 도시로 나간 큰딸이 보내온 돈으로 소도 사고, 논도 사고, 집도 고치고 했었다. 이런 모습이 캄보디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만 16세 이하는 공장에서 노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능사일까? 가난한 집에서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어린이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면 과연 이 어린이를 해고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

이 부분에서 전에 인도 등지에서 아디다스 축구공을 바느질하고 있는 어린 노동자가 생각났다. 그때 일반적으로 아디다스를 향해 어린이를 학대하고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디다스가 그들에게 주었을 임금이 우리 기준에서는 아주 적은 돈이지만 그들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돈은 아니었을까?

여하튼 세계 경제와 세계 각지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한다는 것은 너무 섣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는 청바지 한 벌을 200달러에 팔고 있는 ‘에던’이라는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에던은 유기농으로 길러진 목화를 사용해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한 공법을 사용하여 실을 짜고, 데님을 만들며, 안전 장비가 갖추어지고 최대한 쾌적한 공장에서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여 만든 청바지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던에서 200달러 하는 청바지 한 벌의 도매가는 84달러라고 한다. 우리가 20달러 안팎으로 살 수 있는 청바지가 어떤 이력을 지니고 있을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던의 그리핀은 ‘우리가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면 생산-소비 사슬의 저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부담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p.355)라고 말하고 있다. 또 에던의 스콧은 ‘옷의 본질은 원단이나 바느질이 아닙니다. 그 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p.365)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바로 ‘책임 있는 소비’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한 벌의 청바지를 살 때, 또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환경오염을 최대한 줄인 청바지를 사려는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에던은 하나의 실험이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좌절할 것인가?

끝으로 가슴에 와 닿는 글귀를 소개한다.




“생산자를 괴롭히는 가장 끔찍한 악마는 소비자인데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면서 가격 인하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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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초보 탈출 100문 100답 - 김성철 교수의 체계불학
김성철 지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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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이 4세기 말이므로 불교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거의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신라에서부터 고려가 끝날 때까지는 거의 국가 종교로서 기능을 해왔고, 조선 때 비록 억불정책의 피해를 보았지만 민중 속에서 면면하게 그 역할을 다해왔다.

20세기 이후 서양 문물과 문화가 밀물처럼 들어와 우리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 전반이 그전과는 현격하게 달라지기는 했지만, 내면에 불교적 정신세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 책 <불교 초보 탈출 100문 100답>은 김성철 교수께서 인터넷을 통해 올라온 질문을 답해주는 성과물로써 만들어졌다. 우선 최근에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마침 ‘초보 탈출’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선뜻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펴보고 읽어보니 결코 초보적인 질문과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질문 자체가 불학(佛學)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고, 매우 깊이 있는 사고와 고민, 수행을 해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질문으로 올린 것이기 때문에 질문의 취지에 대한 이해부터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답하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비의 역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누천년을 쌓아온 불교의 철학적 심오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윤회(輪回)를 주장하고, 윤회에 구속되어 있는 우리 생명체들의 최종의 목표는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나 완전히 사라지는 적멸(寂滅)이라고 말한다. 살아가는 것은 모든 것이 고통(一切皆苦)이고,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덧없다(諸行無常). 우리는 살면서 많은 번뇌와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번뇌와 고통은 우리가 탐(貪), 진(瞋), 치(癡)라고 하는 삼독(三毒)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윤회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삼독의 함정에 빠져 업(業)을 쌓게 되는데, 그 인과응보(因果應報)로써 연기의 굴레를 쓰고 윤회의 소용돌이를 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윤회는 끝없는 고통을 수반한다.

이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실재(實在)하지 않는다는 공(空)을 깨우치는 것인데, 이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하는데, 비로소 윤회의 고통에서 해탈(解脫)할 수 있게 된다.




불교의 교리는 윤회란 무엇이며, 윤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적멸은 어떤 상태이며, 적멸에 들면 완전히 윤회를 벗어나는 것인가, 이 세상에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연기는 어떤 것이며, 연기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등등 많은 의문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쌓아오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민과 풀이에 대한 이견이 생기면서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밀교를 비롯한 많은 종파로 나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는 교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해탈과 적멸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의 목적은 동일하며, 그 다양한 교리 역시 순간순간의 방편에 불과할 뿐 절대적이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교리가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중생 모두가 해탈의 경지를 희구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완전한 소멸은 오히려 두렵기조차 하다. 이러한 중생에게 불교의 가르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음의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일부는 닫히고 일부는 열린 채 작동하던 생각이란 놈’이 완전히 열리는 것이 공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철학적 종교적 의문이 제기되어도 논리와 말을 통해 그것을 해소시킬 수 있는 능력이 완전히 갖추어진 사람, 또, 세상에 대한 감성적 맺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계(윤리, 도덕)를 잘 지켜서 욕망과 분노를 정화하고, 정(三昧)과 혜(智慧)를 닦아서 연기와 공의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p.218)




이 정도의 경지도 결코 쉽지 않은 경지다. 하지만 비록 불교를 자신의 신앙으로 삼지 않더라도 이러한 경지를 목표로 살아간다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불교도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서 초보를 탈출하는 것이 옳겠고, 불교도가 아니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동양의 심오한 철학적 경지를 답사하면서 탄복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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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경제노트 -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아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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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해를 넘기고도 여전히 불안한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식이나 부동산 등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긴 하지만, 서민 경제를 돌아보면 여전히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온 힘없는 우리 서민들이 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가? 이미 글로벌한 경제 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우리 경제가 미국에서 시작된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기 때문에, 단지 이 하나의 이유 때문에 우리 서민들이 어쩔 수 없이 이 고난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서민들이 처해있는 경제적 곤란이 단지 세계 경제 체제 내에서 일어나는 파급 영향 때문에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다. 이로 인해 검찰에 의해 체포가 되고 구속까지 되었다. 바로 재야의 경제 대통령이라고 별명까지 붙은 ‘미네르바 박대성’이 그 사람이다.




이 책은 미네르바가 작년 6월에서 8월 사이에 인터넷 아고라에 올린 글을 모은 것이다. 미네르바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예고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한국의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려 시도하고 있었고, 이른바 명망있는 경제 전문가나 유명 메스컴에서도 이 기회에 세계적인 투자 은행을 우리도 가져보자고 조동하기까지 했었다. 이때 껍데기만 남은 리먼 브라더스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 바로 미네르바이다. 만약 우리가 끝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했더라면 그 경제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아마도 미네르바가 검찰에 체포, 구속된 것은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보게 되겠지만, 미네르바는 끊임없이 현 정권의 실책을 질타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경제부총리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체포와 구속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생각과 발언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것을 빌미로 체포, 구속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은 ‘한국적 민주주의’가 70년대부터 확립되어 있던 터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지난 10년 동안 ‘본질적 민주주의’가 상당히 뿌리를 내린 탓에 ‘한국적 민주주의’의 영향력이 많이 사라져 미네르바는 석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적 민주주의’가 발호하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암담하게 만든다.




여하튼 미네르바의 주장은 이렇다. 지난 노무현 정권 당시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전에 없이 상승하고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이 상승폭을 완화해서 소비자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달러 당 원화 환율을 900원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수출 주도의 경제 성장 정책, 즉 대기업 프랜들리 정책을 쓰기 위해서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는데, 이것이 수입 물가 상승을 가져오고,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을 유발하여 서민들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또한 고용의 80~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경영난을 가져와서, 이것이 서민들의 실직으로 연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시간이 지난 현재에서 바라보자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오기 때문에 쌀이나 라면 등 생필품을 최소 6개월 분 이상 비축하라고 했지만, 이럴 필요가 있을 정도로 물가가 상승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저자가 얼마나 경제 동향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해서 그것이 맞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서민이 스스로 공부하여 유수한 경제학자와 경제 전문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실제로 그 주장이 사회, 국가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에 있다.

인터넷 시대가 새로운 지식 사회, 지식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몇몇 전문가가 지식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2008년 미네르바와 2009년 미네르바의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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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한민족 : 문화의 시원 -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좋은 삶을 위하여
박해조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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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독특한 책이다. 소설도 아니고, 우화도 아니며, 역사도 아니고, 설화도 아니고, 인류학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하고, 철학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맞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 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장르 구분의 기준을 전혀 적용할 수 없는 책이다.

이 의아함은 책날개에 적혀 있는 저자의 독특한 약력을 보면 조금 풀린다. 20여 년간 오대산에 살면서 생명체와 언어, 문화에 관하여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것을 보고 학문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동안 자신이 깨닫고 이해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쉽사리 알아듣지 못할 것이므로 여전히 자신은 외롭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처음 펼쳐 읽기 시작했을 때 참으로 낯설고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처음의 의심과 낯설음은 차츰 ‘아,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구나!’하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이 책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이 생겨나고 태어나 자라서 죽음이 이르는 과정을 ‘빛 3·1’이라는 저자의 독특한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본래 사람의 영혼은 빛으로 되어 있다. 그 빛은 빨강, 파랑, 초록이라는 삼원색과 매우 극미량의 하얀색으로 되어 있다. 그 빛, 즉 혼이 파동운동을 하다 포화상태에 이르면 여자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물질적인 생명체로 변화한다. 세포분열을 통하여 육체를 갖게 되어 10달 후에는 세상에 나오게 된다.

사람은 태어난 후에도 혼을 갖고 있다. 즉 내면에 빨강, 파랑, 초록이 합해진 빛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각 색깔에는 각각의 성질을 갖고 있는데, 빨강은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며, 파랑은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이며, 초록은 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이 색깔의 편차에 의해 성격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편차라는 것은 60억분의 2 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이지 동물이 아닌 것이다. 만약 그 편차를 벗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있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세 색깔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 문화도 그 균형을 잃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그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빛 3·1’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의 탄생에서 백일, 돌, 성년식, 결혼식, 환갑, 장례식과 제사까지 일생을 ‘빛 3·1’ 법칙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또 사회의 구성까지도 그 법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 발상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이 책 내용이 생명과 이 우주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가부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는 없다. 서양 철학과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론 역시 하나의 상상이 아닌가? 플라톤 철학이 틀리지 않고 가치가 있다면 저자의 상상 역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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