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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양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불교가 전래된 때가 4세기 말이므로 우리 민족이 불교와 함께 한 지도 1,600년 이상이 되었다. 구, 신교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가 약 200년 정도인 것에 비하자면 참으로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만큼 우리 민족과 불교는 친숙하며, 불교도 여부를 막론하고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불교를 개창한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술한 전기로서, 이 책을 통하여 석가모니의 탄생과 성장, 깨달음과 불교의 창시, 죽음을 시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는 부처가 세상에 오기 전의 전생에 대해 쓰여 있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윤회이기 때문에 개창자의 전생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다 그렇듯 부처의 탄생도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다르다.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를 열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다. 이 책에서는 이 말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三界)
내 마땅히 안온하게 하리라.
역시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다 그렇듯 어린 시절의 부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비범함 그 자체였다. 휘황찬란한 외모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 또한 뛰어나서 당시 가장 유식한 스승들의 능력을 단 시일에 뛰어넘은 것이다. 또 체력 또한 출중하여 무예를 겨루는 자리에서 남들은 당길 수도 없이 팽팽하고 무거운 활을 몇 개나 부러뜨렸던 것이다.
왕자로 태어난 혈통, 준수한 외모, 자비심에 넘치는 심성, 출중한 지적, 육체적 능력을 가지고 남부러울 것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전의 싯닷타는 어린 시절에 충격적으로 본 남루한 차림으로 비비적거리며 걷던 노인의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고민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태어나 자라고 병들로 죽는 것에 대해 살아가면서 가끔씩 한두 번쯤은 아프게 생각하겠지만, 싯닷타처럼 온 정신을 다 바쳐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보통 사람과 대선각자인 부처의 가장 큰 차이다.
생로병사와 우주의 비밀을 깨우칠 기회를 갖기 위해 항상 궁궐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부모와 아내의 만류로 실행하지 못하다가 아들 라훌라가 태어난 스물아홉 살 되던 해에 드디어 출가를 감행하여 호화로운 옷과 금붙이를 벗어버리고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처음에는 당시 수도자처럼 육체에 고통을 주어서 깨달음에 이르려는 방식으로 고행을 하지만, 얼마 후에 이러한 방법으로는 궁극적인 목적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방식을 바꿔 보리수 아래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선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중생들이 무수한 과거 생애를 아는 능력인 숙명통(宿命通)과 중생계의 죽고 태어나는 모습을 낱낱이 알게 되는 천안통(天眼通), 모든 번민과 고통이 사라지고 청정한 삶이 완성되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어서 위대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다. 이 후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세수 80세에 영원한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만들어 출판한 것인 만큼 내용이 구성이 상당히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내용도 불교도뿐만 아니라 비불교도나 불교 교리를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어려운 용어나 깊이 있는 교리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다. 더불어 부처의 생애에 따라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조각 그림들을 간간히 곁들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기에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고, 뒤에 부록으로 붙인 지도는 당시 부처가 활동하던 북부 인도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책을 읽다가 지명이 나오면 찾아볼 수 있게 하였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부처는 2,6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분의 전기가 모두 논픽션이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어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 곧 말하고 걸었다는 것이나 홍수로 넘치는 강물 위를 걸었다는 것이나 가뭄으로 불타는 지역에 발을 들여놓자마다 억수처럼 비가 내렸다는 것 등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마치 아비 없이 태어났다던가 숨이 끊어진지 3일 만에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사실로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 속에는 메타포(;隱喩)가 숨겨져 있다. 이것을 읽어내는 것이 사실 바른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교리는 윤회(輪回)와 연기(緣起)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윤회는 태어나 죽는 것이 반복된다는 것이고, 연기는 시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연기는 인과응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부처는 사람의 삶이 모두 고통이라고 보았다. 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다고 했다. 현재의 행복조차도 미래의 고통의 씨앗일 뿐이다. 그래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역설이다. 영원히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연기의 원인이 되는 업(業)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그 업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모든 것이 무상하고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있다고 했다.
더 이상은 정말로 깨닫기 이전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정말로 끝없는 윤회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먹고 있는 동물의 고기가 윤회를 통해보면 한 때 자신의 부모일 수 있다는 것에서 육식을 금하는 것이라든가, 모든 행위에는 합당한 결과가 있고, 지금의 고통이란 과거에 내가 벌인 업의 결과라는 뜻에서 행동을 바르게 하고 자비를 베풀라는 가르침은 지구의 자원과 환경이 한계에 가까워지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해결의 열쇠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부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 경건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