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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복음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0년 1월
평점 :
그리스도교에서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하는 하나님은 순선무잡(純善無雜)한 존재로서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이에 비해 타락천사라고 하는 사탄은 순악무잡(純惡無雜)한 존재로서 인간이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 선과 악이라는 게 무엇인가? 과연 절대적으로 선과 악을 나눌 수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美)나 선함(善)은 ‘지역이나 시대에 갇혀 있는 사회적 개념’이다. 따라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선과 악의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적인 악이란 본래 있을 수 없으며,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을 대표하는 신이나 사탄이라는 존재도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절대선, 즉 신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차마 못할 짓을 저질러 왔는가를 금방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현재 세계의 곳곳에서 자기의 신을 내세우며 악을 멸한다는 명목으로 또한 못할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과연 신이란 어떤 존재이기에 우리 모두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에서는 이런 우리의 순수한 의혹에 대해 해학적이지만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오로지 자신의 종교적 교리만을 절대적인 법칙으로 여기고 있는 그리스도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불경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들은 이 책 속에서 반전의 묘미와 해학과 역설의 즐거움과 근엄한 척하는 자들에 대한 냉소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의 정액에 자신의 것을 혼합하여 마리아가 임신하도록 하여 예수라는 자신의 아들을 만들어낸다. 처음부터 하나님에게 있어서 예수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밖에는 없었다. 그 목적이란 유대인들만의 신에서 벗어나 다른 민족도 숭배하는 신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영역, 즉 나와바리를 넓히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예수 프로젝트’를 꾸민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부정하고 싶어 하고 괴로워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거역할 수 없어 그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이 그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되어 최종에는 모두 알다시피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다.
이 책에서 마리아에게 예수를 수태하였음을 알려주는 거지로 변장한 천사와 예수가 따라다니며 양을 치게 되는 목자는 본래 사탄이다. 그런데 그 사탄은 예수에게 인간이 아닌 동물의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동물을 태워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무고하게 죽어야만 했다. 나중에 예수는 하나님과 사탄의 얼굴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탄에게 더 많은 악행을 저지르라고 주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위는 악이 존재하는 곳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즉 악마의 영토와 하나님의 영토는 똑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과연 선한 신과 악한 사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잃어버린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 이렇게 외친다.
“인간들이여, 하나님을 용서하라. 하나님은 자신이 한 짓을 알지 못한다.”(p.549)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原罪)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 죄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잘못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것을 더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누구이건 어디에 있건, 무슨 일을 하건 죄인이야. 인간을 죄와 떼어놓을 수 없듯이 죄도 인간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지.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유일한 말은 회개다. 모두 유혹에 굴복하고, 악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규칙을 깨고, 크든 작든 범죄를 저지르고, 갈구하는 영혼을 쫓아버리고, 의무를 방기하고, 종교와 그 성직자를 모욕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기 때문이지.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너는 그저,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하고 말하기만 하면 돼.”(p.457)